생계형 도둑, 생계형 신혼부부 집을 털다

[세입자 이야기] 아저씨 때문에 도둑이 우리 집에 들잖아요?

등록 2009.04.02 18:23수정 2009.04.0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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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손으로 지은 마이하우스... 아파트 분양 한번 못받아 봤지만 결혼 16년만에 드디어 꿈 같은(?) 내집을 마련했다. 집 한번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던데 그말이 빈말은 아닌거 같았다.
내손으로 지은 마이하우스...아파트 분양 한번 못받아 봤지만 결혼 16년만에 드디어 꿈 같은(?) 내집을 마련했다. 집 한번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던데 그말이 빈말은 아닌거 같았다. 서정삼

부실한 현관문이 안 그래도 맘에 걸렸었다. 그래도 팔백만 원짜리 반지하지만 방 두 개가 어디냐. 85년 4월 말, 결혼식을 앞두고 강서구 염창동 어디 골목안 단독주택에 신혼집을 구했다. 현관문이자 부엌문이었다. 오른쪽은 안방. 안방에서 부엌을 폴짝 건너뛰면 건너방이다. 화장실은 셋방 세 가정이 공동으로 쓴다. 뭐 아침이면 당연히 된장 푸는 소리에 참으로 기분이 된장 같아진다. 소변은 대충 주방에서, 큰 거는 회사 가서 보는 게 되레 맘편하다.


5월 3일 결혼식을 앞두고 신혼살림은 미리 다 집어 넣었다. 살아 가면서 준비하는 재미도 쏠쏠할 거라는 참으로 거지 코따대기 튀어나오는 소리로  마누라에게 미안함을 웃음으로 때우던 나. 그래도 맘놓고 뽀뽀도 하고 세트로 산 잠옷을 입고 퀸사이즈 침대에 마구 뒹글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에 우리는 마냥 행복해 했다. 이방저방 나잡아 봐라 촐싹거리면 마누라도 덩달아 이방저방 아무리 좋다해도 서방이 최고라는 왕소름이 팍팍 올라오는 이야기도 그때는 입술에 침도 안바르고 잘도 해댔다.

문 꼭꼭 걸어 잠그고 신혼여행 갔다. 제주도에서 조랑말도 타고 갈치조림도 먹고 밤이면 밤마다 잠도 안자면서 우린 열심히 놀았다. 잠잘 겨를이 어디 있던가. 아, 그러나 우리의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신혼방에 도둑이 들었단다. 아니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 연세 드신 장모님이 주인집 연락을 받고 쫓아간 우리의 신혼방은 완전 초토화가 되어 있었단다.

"아이고 서 서방 이걸 우짜는가. 이기 참말로 우짜 이런 일이…."
"장모님 진정하시고 말씀해 보이소. 도둑놈이 어케 들어 갔데요."
"글쎄 그게 현관문을 뽀사삐고 들어 왔는데 뭐 잃어버린 건 없나 모르겠네."

당시 생계형 도둑놈들이 기승을 부리기도 했지만 방송에서 하도 떠들어 유사범죄 또한 많았었다. 어느 간 큰 놈은 이사짐센터라면서 아예 차를 대놓고는 세간살림을 홀라당 싣고간 웃지못할 사건도 있었다. 우리 살림방도 며칠전부터 지켜본 동네놈들이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놈들은 번지수를 잘못 집었다. 왜? 우리는 시골 부모님이 결혼패물로 기껏 시계하나에 금목걸이, 금팔찌 한개 해 준 게 다였던 생계형 신혼부부며 그걸 손에 차고 걸고 신혼여행을 갔으니 훔쳐갈게 뭐 있었겠는가.

하지만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순결한(?) 신혼방에 도둑놈들이 마구잡이 신발로 들어와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다니 얼마나 열받았겠는가. 일정을 하루당겨 서울로 돌아 왔다. 장모님이 대충 치우시긴 했다지만 이놈들이 방안을 방구석으로 전락시켜 놓았다. 침대시트도 다 뒤집어 놓고 향내음 폴폴나는 '빤츠'며 꽃무늬 마누라 속가리개까지 다 흔들어 놓았다. 나원참 귀가 막혀 말이 안나왔다. 반지하방 신혼부부에게 뭘 털어 먹으려 이 난리를 쳐놓았을까.


허술한 나무현관문 손잡이 부분을 망치로 깬다음 일을 져질렀다. 우리 네 가구 셋집들은 주인집과는 별도의 출입문으로 다녔으며 세 사는 사람들은 다 직장을 갔으니 대낮임에도 이놈들이 방안에 들어 와서는 한참을 퍼질러 놀다 간 모양이다. 옆집 꼬맹이가 방에서 나오던 도둑놈 두 명을 보고 아저씨 누구냐니까 '이방 아저씨 친구'라며 유유히 사라졌단다.

"아줌마, 현관문을 철문으로 바꿔주이소."
"아니 그걸 내가 왜 바꿔 주는데예."
"아줌마 집 아닌교."
"아저씨가 세들어 왔으니 기한까지는 아저씨 집이니까 알아서 하이소."
"아니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도둑이 들어 왔잖아요. 이 문 때매 겁나서 잠이 오겠습니까."
"철문을 하든지 쇠창살을 하든지 나한테 묻지말고 알아서 하라 안캅니까. 기분 나쁘면 이사 가세요. 여기에 쇠문 달면 도둑놈이 어디로 오겠는교. 다음에는 우리 집으로 온다 이말입니다. 그러니 쇠현관문은 아저씨가 아니라 우리 집에 달아야 하는건데 그 돈 아저씨가 줄랍니까."


헉! 럴수럴수 이럴 수가. 살다살다 이런 '견' 같은 경우가 있나. 이건 뭐야. 아줌마 궤변에 내가 숨 넘어가게 생겼다. 아무리 세입자가 거시기 같다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사흘밤낮 치열한 싸움을 걸었으나 주인 아지매는 난공불락, 눈도 꿈뻑 안한다. 기한 전이니까 방값도 못 빼주겠단다. 일단 알아서 이사를 가고 방 나가는대로 돈은 보내 주겠다니 내가 또한번 거품 물고 뒤집어졌을 뿐이였다.

어쩔수 없이 내 돈으로 창살과 은행금고 같은 쇠로 현관문을 달았다. 에라이, 더러워서라도 집 장만 해야겠다. 전세기한이 다 될 무렵 당연히 우리는 이사를 간다고 통보를 했다. 방보러 온 사람들에게는 창살값과 현관문값을 별도로 달라고 했더니 아무도 계약을 안하고 돌아갔다. 전세 기한이 지나자 나는 주인 아지매 치마자락을 붙잡고 이제 이사 가야되니 돈내 놓으라며 또다시 사흘 밤낮을 싸웠다. 결국 세입자도 못들어 오게 하고 만기가 되던 날 우린 유유히 이사짐을 쌌다. 푸하하~.

그리고는 어디로 갔냐구요? 전세금 800만 원을 가지고 서울 천지 다돌아 다녀 봤지요. 미치겠더군요. 집들은 그리도 많은데 왜 내가 살집은 없나요. 그러다 우연히 들린 과천. 1988년 당시 13평 아파트가  1750만 원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집이 은행에 250만 원 담보가 잡혀 있었으며 만기까지 승계가 가능하고 매우 싸게 나온 집이라는 부동산 이야기에 그만 주머니에 있던 10만 원을 주고는 덜컥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그집, 여기저기 빌린 돈 갚느라 한 2년간 코피 터졌습니다. 셋방살이 한번에 집 장만했으니 성공했나요? 그뒤 지방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 그집을 팔고 다시 전셋집 전전. 몇 년뒤 서울 올라와 그쪽으로 가보았더니 헉! 그 아파트 전세값이 무려 1억이 넘더군요… 이런 된장!

반지하방에서 저녁을 먹고 산책은 목동단지 안 파리공원으로 우아하게 쏘다니던 이젠 20년도 더 지난 신혼시절. 몇 번의 셋방살이가 더 있었지만 도둑놈이 들어온 것도 불에 유황불을 켜고 나를 우습게(?) 깔아보던 주인집도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나고 나면 모든게 추억이 되는건가, 아직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불현듯 그 집, 그 방이 다시 한번 보고 싶다.
#그냥얼떨결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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