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사 말고 딴 일 하면 안될까요"

장애인인권영화제에 나온 장애인들의 장래 희망

등록 2009.04.05 22:13수정 2009.04.0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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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4일 오후 4시 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장애인 감독들. 왼쪽부터 <아르바이트>를 찍은 성동학교 미디어반 교사 이상림씨와 학생 오보배·최수지·손미나씨. 맨 오른쪽에 앉아있는 사람이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의 노동주 감독이다.

4일 오후 4시 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장애인 감독들. 왼쪽부터 <아르바이트>를 찍은 성동학교 미디어반 교사 이상림씨와 학생 오보배·최수지·손미나씨. 맨 오른쪽에 앉아있는 사람이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의 노동주 감독이다. ⓒ 권박효원


가수, 댄서, DJ, 클라리넷 연주자, 교사, 간호사, 메이크업 아티스트, 영화감독, 목사, 요리사, 태권도장 사범….

장애인의 장래희망은 다양했다. 비장애인이 그런 것처럼. 지난 4일 오후 4시, 제 7회 장애인인권영화제에는 마침 장애인의 취업과 관련된 영화들이 상영됐다.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는 안마사가 아니라 '교사' '목사' '요리사' '프로그래머' '기계공학과 교수'가 되고 싶은 광주 세광학교 학생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내레이션을 맡은 임한나양의 꿈은 라디오 DJ.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꿈을 이룬 셈이다. 임양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왜 안마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아르바이트>나 <취업이야기, 1년 후 우리는>에서의 장애인 취업 전망은 보다 밝다. <아르바이트>는 엄마 생일선물을 사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각장애인 학생의 이야기. 몇몇 가게에서 "손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하지만, 결국 옷가게에서 판매 일을 하고 선물까지 산다는 해피엔딩.

<취업이야기>는 지적장애인들이 주인공이다. 가수를 꿈꾸는 아영이, 유치원 교사를 꿈꾸는 선영이, 영화감독을 꿈꾸는 슬이, 요리사를 꿈꾸는 들래는 1년 뒤 모습을 상상한다. 카페에 취업한 상상에서 이들은 행복하다. 서빙을 하다가 컵을 깨뜨리지만, 다른 직원의 도움으로 상황은 해결되고 월급도 제대로 받는다.

장애인들이 영화로 그린 취업란은 현실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영화 상영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까지 마친 장애인 감독·배우들을 만나봤다.

한편,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의 영화들인 만큼 진귀한 풍경들도 이어졌다. 극장 의자가 아니라 휠체어에 앉은 관객들이 많은 것은 기본.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만든 <아르바이트>에는 소리가 없었다. 대사는 자막으로 처리됐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자원활동가들이 1:1로 화면설명도 했다. 영화의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자원활동가들의 설명 소리만 소곤소곤 극장을 울렸다. 비장애인에게는 낯설지만, 장애인에게는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소통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언제는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라더니..."


a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의 노동주 감독.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의 노동주 감독. ⓒ 권박효원

<당신이 고용주라면...>에서 비장애인들은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냐"는 질문에 "안할 것 같다"고 답한다. "비장애인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다른 사람들과 융화가 어렵다" "시설도 설치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이들은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이라도 고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실을 보여주고 싶다는 기획의도를 설명하니 대부분 말을 바꿨다. "고용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를 찍은 노동주 감독은 "저도 고용주 입장이 이해된다, 고용주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결책을 고민했는데 찾지 못해서 문제제기만 했다, 좋은 생각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노동주 감독 역시 1급 시각장애인이다. 노 감독은 "'스펙'이 좋아서 필기에 다 붙었는데 면접에서 판판이 미끌어졌다"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환경공학과를 졸업해서 기사자격증도 있었고 토익점수도 좋았다. 학점은 4.5만점에 4.3. 그러나 "우리 회사에 딱 맞는 인재"라고 하던 면접관은 그의 장애를 알고나서 "미안하다, 안되겠다"고 말했다.

노 감독은 "고용의무제 때문에 기업들이 고용하는 장애인들은 아주 증상이 경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각장애인이면 아무 사물도 못 본다고 여겨지는데,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워드 작성, 정보 검색 등은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경제위기라서 장애인 취업이 더 어려워진 것 아니냐"고 질문하니 "그렇지 않다"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경제가 좋든 나쁘든 취업이 안 됐으니까. 그는 "경제위기 전에도 장애인 취업 사례는 못 들어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장애인들에게 한 마디 했다.

"비장애인들이 보기에는 '우리도 취업하기 어려운데 너희까지 일하려 하냐, 그냥 집에 있어라' 그럴 수 있다. 물론 요즘에 어렵다. 제 주변 비장애인 친구들도 다 비정규직이고 인턴이고, 그나마도 취업이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늘 겪어오던 어려움이다. 이렇게 어려울 때 같이 이겨나가면 좋지 않겠나."

백수이던 시절 노 감독도 결국, 영화 배경이 된 광주 세광학교에서 안마를 배웠다. 그러나 안마사가 되기는 싫었다. 딱 하루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퇴폐업'의 이미지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안마사 자격 위헌 논란과 관련, 노 감독은 "시각장애인들도 안마사만 되려고 하면 안된다, 어떤 직업에서든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젊은 장애인 특히 여성들은 죽어도 안마사 하기 싫다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노 감독이 생각하는 시각장애인의 '유망직종'은 상담사. 시각장애인들이 대화를 많이 나누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일반 사무는 물론 비장애인이 하는 일은 다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 역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영화를 촬영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찍었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교육을 많이 받았고 원거리 촬영은 친구들 도움을 받았다, 비장애인보다 10배·20배는 더 많이 찍었고 (비장애인 스태프가) 편집을 잘해주셨다"면서 "시각 이미지가 머릿속에 있어서 (선천적 시각장애인보다) 수월했다"고 말했다.

이번이 첫 작품인 그는 "관객들을 만나보니까 많이 부끄럽다, 앞으로는 다른 전문가들에게 맡길 생각"이라고 전했다. 다음 작품은? "돈을 조금 더 벌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상업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업중이다. 구상하는 작품은 '멜로', 내용은 비밀이다. 그는 "장애인 문제만 다루면 수익이 안 난다, 비장애인 얘기를 통해서 장애인 얘기도 담아낼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비장애인도 취업하기 어려운데, 왜 집에서 나오냐고요?"

 위에서부터 <아르바이트>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 <취업이야기, 1년 후 우리는>

위에서부터 <아르바이트>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 <취업이야기, 1년 후 우리는> ⓒ 장애인인권영화제

<아르바이트>를 만든 성동학교 미디어반 손미나·오보배·최수지씨는 "실제로는 이렇게 알바 자리 못 구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가장 선호한 아르바이트는 '서빙'. 오보배씨는 "서빙을 하고 싶은데, '농아인 알바' 하면 전단지 아니면 설거지 같은 단순작업 밖에 없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최수지씨도 "주문이 제대로 안 된다고 사람들이 저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영화에 대해선 만족했을까? "콘티를 짜고 촬영할 때는 재미있었는데 부족한 게 많아서 아쉽다"고 말했다. 주연을 맡은 최수지씨는 "연기력이 아주 부족하다"고 말했고, 오보배씨도 "앞뒤 상황 연결이 잘 안 됐다"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성동학교에서는 직업교사가 공예, 수예(여학생), 기계조립, 세차(남학생) 등을 가르치고 직업훈련도 한다. 3학년부터 공장에서 실습을 하면서 취업 연계활동을 하는데, 빠르면 2학기 때부터 채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교사들이 직접 채용을 연결하고 졸업한 뒤에도 2년간 추후지도를 한다.

미디어반을 담당하는 이상림 교사는 "인도에는 청각장애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이 있는데, 간단한 생활수화나 메뉴 그림이 테이블에 붙어있어서 비장애인도 부담없이 요리를 시킬 수 있다"면서 "그런 방식도 좋고 전광판 통역, 휴대폰 수화통역 서비스 등으로 의사소통 방식만 개선하면 우리 아이들도 일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강조했다.

손미나씨는 지난해 영화를 찍고 올해 학교를 졸업해 직장인이 됐다. 하는 일은 휴대폰 조립. 그러나 아직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는 모르겠고, 일단 지금 생활에 충실하면서 더 찾아보겠다는 생각이다. 지금 하는 조립 업무는 기계 속도가 너무 빨라서 못 따라잡을 때가 있다. 조장 언니에게 혼나고 실수를 만회하려고 청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최수지씨의 장래희망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인데, 학원비가 너무 비싸서 배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오보배씨는 국어교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에 다니겠다는 생각이다. 이들이 장래희망을 이룰 수 있을까.
#장애인 취업 #장애인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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