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4일 오전 7시. 무창포 앞바다를 떠난 작은 통발어선은 멀리 나가지 않았다. 20여분 달렸을까. 김학철 선장(50)이 배를 멈춘다. 동생 김학근 씨(46)가 뱃머리에서 스티로폼 부표에 매달린 대나무 깃대를 배 위로 들어 올린다. 그러자 부표 아래 굵은 밧줄에 꿰어진 소라껍데기가 줄줄이 엮여 올라온다. 김 선장은 소라껍데기가 엮여있는 밧줄을 뱃머리에 있는 세 개의 도르래에 척척 걸고는 도르래 모터를 돌린다.
지난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어획량
밧줄에 60~70cm 간격으로 하나씩 꿰어진 소라껍데기가 배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올라오는 밧줄을 잡고 소라껍데기를 하나씩 살피던 김학철 선장의 손이, 아니 손에 쥐고 있던 작은 갈고리가 재빨리 소라껍데기 속으로 들어간다. 이내 마술처럼 소라껍데기에서 주꾸미 한 마리가 툭 튀어나온다. 대략 보니 소라껍데기 20개에 한 마리씩 주꾸미가 올라오고 있다.
"5~6개에 한 마리씩 들어 있어야 해요. 이래가지고는 안 돼요."
김 선장은 주꾸미 어획량이 지난해에 비해 턱없이 줄었다고 한다.
"작년에는 한번 나오면 못 잡아도 100킬로그램 씩, 많이 잡는 날은 200킬로그램까지 잡았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많이 잡아야 하루 40~50킬로그램이에요."
그러다 보니 올해 주꾸미 값이 많이 비싸졌다고 한다. 산지 경매가격이 1킬로그램 당 2만5000원선이란다. 지난해 산지 경매가가 1만5000원 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만원 이상 가격이 폭등한 거다.
충남 및 전북도 등 지자체에서는 올해 주꾸미 어획량이 감소한 이유를 '바다 수온 저하'라고 발표한 바 있다. 4월 바다 수온이 8도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올해는 4~5도 안팎이라서 주꾸미가 많이 잡히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나 김학철 선장의 분석은 좀 다르다.
"아무래도 서해 기름유출 사건 때문인 거 같아요. 그 때 물위에 뜬 기름을 걷어내지 않고 유화제를 써서 가라앉혔거든요. 오일볼들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으니 주꾸미들의 산란환경이 훼손된 거지요."
김 선장은 태안 앞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걷어내기보다 눈에 보이는 기름을 가라앉혀 버린 게 정부의 잘못된 대책이었다고 말한다.
"우선 눈에만 안보이면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유화제를 써서 바닥에 가라앉힌 거죠. 일본에서는 절대 안 그런다대요. 그들은 바다가 기름에 오염이 되면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물에 뜬 기름을 일일이 걷어낸다고 합니다. 절대 유화제를 써서 가라앉히지 않는다는 거죠."
주꾸미의 산지 값이 오르면 어민들에게 좋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많이 잡아서 싸게 많이 팔아야 돈이 되지요. 비싸면 누가 사 먹나요?"
어느 경제학자가 김학철 선장의 이 말 한마디보다 더 설득력 있게 실물경제를 설명할 수 있을까.
"소라방으로 잡는 거라야 알 찬 주꾸미"
부표와 부표 사이에 걸린 밧줄에 엮여있는 소라껍데기는 대략 7000~8000개. 1킬로그램이면 주꾸미 마릿수로 대략 10~15마리 정도다. 그렇다면 지금 밧줄 한 가닥에 잡혀 올라오는 주꾸미는 많아야 600마리라는 계산이 나온다.
김학철 선장과 동생 학근 씨가 소라방(소라껍데기를 이용해서 주꾸미를 잡는 방식) 밧줄 한 가닥을 걷어 올리면서 주꾸미를 잡아내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40분 정도. 김학철 선장이 밧줄을 잡아당기면서 소라껍데기 속에 든 주꾸미를 갈고리로 찍어 빼내면, 동생 학근 씨는 뒤에서 밧줄을 풀어내며 다시 바다 속으로 소라껍데기를 던져 넣는다. 2인 1조로 이루어지는 이 작업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두 사람의 손발이 척척 맞지 않으면 일이 더뎌지고, 그만큼 소출도 나지 않는다.
첫 번째 소라방 한 줄을 '털어낸' 김 선장이 다시 배에 시동을 건다. 다음 소라방 밧줄로 이동하는 거다. 여기 무창포에서 주꾸미잡이를 하는 어민들은 각자 자신들의 부표에 세워둔 대나무 깃발의 고유한 색이 있다. 김학철 선장의 부표 깃발은 연두색이다. 연두색 깃발이 있는 부표에서 저 멀리 보이는 다른 연두색 깃발의 부표까지 바닥에 이어진 밧줄을 당겨내면서 주꾸미를 잡아 올린다.
이번에 걷어 올리는 소라방 밧줄에는 처음 것보다 더 자주 주꾸미가 올라온다. 소라껍데기 6~7개에 한 마리 꼴로 주꾸미가 들어 있다.
"우와~! 선장님 여기는 아까보다 낫네요. 잘 나오는데요."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배에 오른 내가 다 신이 난다. 그런데 좀 전보다 비교적 많은 주꾸미가 올라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 건 한 달 정도 묵혀뒀던 거예요. 그러니 더 많이 들었지."
머쓱해진 내 표정을 보고 핀잔 아닌 핀잔을 줬던 김 선장도 은근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주꾸미는 그물로 잡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잡은 건 알이 없는 게 많아요. 3~4월에 소라방으로 잡는 주꾸미라야 알이 꽉 차 있어요. 봄에 잡히는 알 찬 주꾸미는 그만큼의 참깨 하고도 안 바꾼다잖아요."
그 정도로 주꾸미가 맛이 있다는 건데, 사실 나는 이때까지 주꾸미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김학철 선장은 주꾸미를 회로도 먹지만 삼겹살, 고추장과 함께 자작자작하게 덖어먹는 '쭈삼불고기'가 제일 낫다고 한다. 이어지는 김 선장의 '쭈삼불고기'의 유래는 짧지 않았다.
"옛날 바닷가에는 해산물이 흔한 대신 육고기(육지에서 나는 고기)가 귀했죠. 삼겹살 한 번 푸짐하게 먹어보는 게 바닷가 사람들의 소원이었던 적이 있었죠.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바로 이 '쭈삼불고기'예요. 흔한 주꾸미를 많이 넣고 약간의 삼겹살과 함께 덖어내면 여러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거든요. 이 요리법은 옛날 우리 어머니 때부터 있었던 거지요."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주꾸미 샤브샤브'니 '쭈삼불고기'니 하는 것들이 최근 개발된 레시피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 무창포 어민들이 옛날부터 해 먹던 요리법이었는데, 최근 들어 주꾸미가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어민들의 주꾸미 요리법도 덩달아 '뜬' 셈이다.
쭈삼불고기는 원래 전통 갯가 요리법
5~6개 소라방을 털어내자 어느덧 정오가 가까워 졌다. 오늘 작업을 끝낼 시각이다. 근해의 주꾸미 잡이는 이렇듯 많은 시간을 들이지는 않는다. 새벽에 나가서 점심 전에 일을 끝내고 들어온다. 그런데 이렇게 김학철 선장이 잡은 주꾸미는 이미 이날 오전 10시쯤 어촌계 위판장에서 경매가 끝나있다. 그러니까 김 선장의 주꾸미 배가 포구에 들어오기도 전에 김 선장의 주꾸미는 가격 흥정이 끝나 있는 거다.
김 선장의 배가 무창포항에 닿자마자 어판장 리어카가 다가온다. 김 선장은 고무다라 한가득 잡아온 주꾸미를 리어카에 실린 노란 바구니에 옮겨 담는다. 이렇게 실려 나간 주꾸미는 오전 경매 시세 2만5000원이 킬로그램 당 매겨져 김 선장의 손에 쥐어진다.
나는 김학철 선장에게 소개받은 근처 횟집에 가서 주꾸미 볶음 요리를 한 접시 주문했다. 무창포에서 주꾸미 잡이 배를 탄 내가 주꾸미 한 마리 맛보지 않고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오래지 않아 벌건 고추장 양념에 미나리, 버섯, 콩나물 등으로 맛을 낸 주꾸미 볶음이 푸짐하게 나왔다. 나는 우선 알이 꽉 들어 차 있는 주꾸미 대가리를 골라 고추장 양념을 듬뿍 묻힌 후 한 입 베어 물었다. 입 안 가득 하얀 밥알이 촤르륵 퍼져 차잘차잘 굴러다니다. 이번에는 주꾸미 다리도 씹어 본다. 낙지나 문어와는 다른 육질이다. 아주 연하다. 함께 따라 나온 소면사리를 주꾸미 볶음 양념에 쓱쓱 비벼 먹다보니 배는 부른데, 젓가락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횟집을 나와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걸어서 무창포 어촌계가 운영하는 근처 어시장에 갔다.
"주꾸미 얼마예요?"
"킬로에 2만 5,000원요."
산지가격 그대로다.
"서울로 가져갈 건데……."
"걱정마세요. 스티로폼 박스에 깔끔하게 포장해 드립니다."
눈대중으로 한 열댓 마리 쯤 될까. 저울에 달아보니 1킬로그램이 훌쩍 넘어가는데도 인심 좋은 아주머니는 그냥 다 쓸어 담아 주신다. 나는 주꾸미를 퍼 담아 주는 아주머니의 손을 보자 '많이 잡아서 싸게 많이 팔아야 돈이 되지'라고 했던 김학철 선장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지금 무창포에는 '주꾸미 & 도다리 축제'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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