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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7일, 금요일, 큰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비폭력 서약식을 했다. 궁금한데 평일이라 갈 수가 없어 딸에게 비폭력 서약식을 하고 나서의 느낌을 글로 써달라고 부탁 했다. 딸은 바로 엄마의 의도를 알아채고 초부터 친다.
엄마가 원하는 그런 이야기 안 나와?
내가 뭘 원하는데?
그런 거 있잖아. 아이들이 감동하고, 비폭력이 바로 실현될 것 같은, 아주 이상적인 거.
그래? 그래도 네가 느낀 사실 그대로 써봐.
엄마, 나 무지 솔직한 거 알지? 후회 하지마.
난 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 딸도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딸은 엄마가 대안학교에 걸맞는 뭔가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애초부터 자른다. 반면 엄마는 그래도 비폭력 서약식이라는 의미있는 행사에서 딸이 뭔가 감동을 느꼈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내가 딸에게 조금만 덜 솔직하게 쓰면 안되겠냐 물으니, 절대 그럴 순 없단다. 에고, 저 딸이 누굴 닮았나 싶다.
<딸이 쓴 글을 문맥의 흐름이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그냥 싣는다. 중간제목은 읽기 편하도록 필자가 달았다.>
2009년 3월 27일. 금요일, 제천 간디학교 비폭력 서약식 날.
간디학교 4학년 오한길.
비폭력 서약식은 매년 하는 고리타분한 행사?
매년 의례적으로 하는 행사라 난 시큰둥하며 그러려니 한다. 간디에서 4년째 지내고 있지만 1학년 때의 두근거리는 마음을 찾아볼 수 없고, 서약을 해도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3, 4학년부터는 그저 고리타분한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비폭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도 않은데 비폭력이니, 평화니, 뭐니, 하는 것 자체가 웃기기도 하다. 나? 물론 나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서약식은 덤블도어 대신 볼드모트로 잘못 소개된, 언제나 짧고 굵으면서 강하게 와 닿는 양T(양희창 교장선생님)의 말로 시작해 너무나 이상적인 선언문을 읊고, 학년별로 준비한 공연을 보다가 하이라이트인 '자유발언'시간이 왔다. 사실 이것도 사회자가 아무 말도 안나올까봐 애들을 심으러 다니는 걸 보고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처음 한두 명이 나와서 하는 '폭력 나쁘니까 비폭력해요'라거나, '우리 비폭력 학교니까 잘해 봐요', '폭력 나쁘니까 하지 맙시다' 등의 웃기지도 않은 너무나도 번지르하고 단순하며 입에 발린 말들을 들으며 역시나,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분이 나와 자기 아들을 정말 미친 듯이 패고 몇 년 후에 초등학생인 아들과 이야기 하는데 엄마는 나에게 정말 상처를 준 거라는 말을 듣고 많이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그 후로는 절대 때리지 않았다고, 그렇게 진심을 털어놓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번에는 뭔가 나올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마시멜로 이야기'에 나온 아들의 '거짓말을 알고서도 그것을 매로 다스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주며 침묵하는 것으로 뉘우치게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랑으로 포장된 매, 폭력은 일상에서 너무나 흔하다
사실 부모나 선생님들이 사랑으로 포장한 매를 하면서, 절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그저 임시방편밖에 안 되는 가장 손쉬운 매를 들면서 애에게는 너무 큰 정신적인 상처를 주는 게 아닐까 싶다. 좀 더 감싸주고 좀 더 가족이라는 포근함으로 '이런 건 잘못됐다'라는 걸 알려줄 수는 없는 걸까.
폭력은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성적이든 언어적이든 우린 이미 폭력에 물들어 어디에서나 매우 사소한 곳에서도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다. 나이나 돈이 조금만 많아도 바로 차별화되고 위에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모자란다고 생각하며 계속 누르며 인락함을 찾는다(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닥 자유롭지는 않다).
비폭력이 뭘까? 단지 신체적인 폭력을 하지 않는 것? 욕을 하지 않는 것? 비폭력이란 이런 자리가 있다고 해서 비폭력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적어도 자신이 폭력을 진심으로 경험하고 어느 정도 떨어져 봤을 때, 그때 느낌이 올 때, 깨닫고 그때부터 비로소 미숙하나마 비폭력이 실천되는 게 아닐까 싶다.
형식이 아닌, 진실로 폭력에 대한 용서를 구했을 때 미친 듯이 울었다.
(그리고 다시 자유발언으로 돌아와) 그 샘이 진심을 털어놓은 이후로 줄이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그것도 놀랍게도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진심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했다.
그러다가 중3의 한 학생이 나왔는데 제일 미안한 사람이 두 명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자기 동생이라고, 정말 너무 미안하다고 털어놓았다. 바로 다음으로 나랑 친한 친구가 나와서 단지 표현을 못하는 거뿐인데 잘 안 해줘서 정말 너무 미안하다고 털어놓는데 이때부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먼저 한 고백에 공감되고, 두 번째 고백에 내 동생도 저렇게 이해해주고 있을까, 어쩌면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싶어서 정말 미친 듯이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에도 수많은 고백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나도 하고 싶어서 버들버들 떨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사회자가 곧 끝낸댄다. 그래서 그냥 관둘까, 하다가 1년에 하루인데 이 자리를 빌어서 하자고, 기회 놓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사회자가 아차, 할 틈에 나가서 예전에 친구들에게 미안했던 일, 동생에게 언제나 착한 언니가 되자 되자 하면서도 계속 실천하지 못한 거, 나중에 계속 후회하면서도 계속 후회할 짓 하는 거 너무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너무 격하게 흐느끼느라 까먹고 말 못했지만 엄마, 아빠한테도 미치도록 속으로 욕한 거 반성한다고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다.
어릴적 받은 상처로 지금도 두렵다
그 후에도 결국 1시간 30분 동안 (예정시간 약 40-60분 초과) 너나 할 것 없이 진심을 털어놓으며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나왔다. 초등학교 때 노래를 정말 좋아했는데 음악T의 무심코 툭 던진 말이 너무 큰 파장이 되어버려 극복 중에 있긴 하지만 10년도 넘게 그 말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거나, 무대에 선다는 게 너무 두려워진다는 아이도 있었고, 간디에 와서 욕을 배웠다거나(나도 공감), 서약식 전 날 나뭇잎에(종이)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를 그리라고 했는데 그걸 보고 영어T가 나와서 평화 스펠링이 piece가 아니라 peace라고 한 말에 다들 박장대소하고 멧돼지도 잡는다는 샘들이 나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유발언이 끝났다.
그리고서는 고등부 맨토 반별로 준비한 연극을 하는데 역시 내공자들,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즐겁게 해줬고, 우리가 한 연극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공연들이 끝나고 나서는 각자가 그린 나뭇잎에 지장을 찍고, 평화가 무엇이냐는 노래를 부르며 '사랑해~'를 날려주며 프리 허그(free hug)를 하며 서약식을 끝냈다.
평화란 그저 생각하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평화일지도...
이번 년도 비폭력 서약식은 준비를 열심히 한 만큼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단지 조금 우려가 되는 건 진심을 털어놓고 단지 털어놓은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다. 뭐 그렇지만 집단효과였다고 해도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고 바뀌는 게 아닐까 싶다. 애초에 사람이 정말 예외적인 경우를 배제하고 한 번에 확 바뀌는 건 힘드니까 말이다.
그렇게 보면 서약식은 비폭력을 약속한다는 의미보다는 비폭력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나도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이 미숙하다). 문득, 샘들이 하는 말 중에 "평화란 없을지도, 그저 평화를 생각하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평화일지도" 라는 말이 떠오른다.
딸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늘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딸이 어느새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표현할 정도로 커버렸다. 나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알아서 잘 큰다.
엄마, 아빠를 속으로 그렇게 많이 욕하셨어요?
아니, 그게… 그래서 반성했잖아~
됐다. 어쩐지 귀가 간지럽더라니! 니 용돈 확 깎는다.
아 진짜!!!!!!!!!!!!
딸의 용기있는 고백을 들으며 많이 부끄러웠다. 어른이면서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아마 숫자로 센다면 헤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며칠전에도 해주가 약간 툴툴댔을 뿐인데 난 화를 버럭 냈다. 화를 내면서 '이건 정말 아닌데' 싶었지만 이미 일어난 내 감정을 어쩌지 못했다. 권위로 억압하는 것이 제일 싫다던 내가 부모라는 이름으로 눌렀다. 물론 오래가지 않아 딸에게 사과했다. 딸은 괜찮다고 울다가 웃어줬지만 난 여전히 내 안의 폭력성에 고민이 된다.
나도 어릴적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지워지지 않은 채 무의식에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보다 약한 이에게 상처주는 일이 어른이 되어서 너무나 쉽다. 어쩌면 또 은근히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한다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안다.
2009년, 나는 비폭력 서약을 한다. 내 안의 폭력성이 불쑥불쑥 치고 올라올 때마다 비폭력 서약을 떠올릴 것이다. 그 어떤 폭력도 나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하지 않겠노라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4.08 10:38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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