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 체불임금 780만원, 그것도 떼먹더라

[아는만큼 보이는 '법' ⑦] 임금·퇴직금 관련 소송 천태만상

등록 2009.04.08 12:22수정 2009.04.08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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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다는 요즘이다. 직장 다니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한 술 더 떠서 "노동자 임금을 삭감하여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우울한 주장까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일을 하고 나서 제때 월급이 나오지 않거나 직장을 그만두면서도 퇴직금을 받지 못한다면 그 고통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최근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받기 위해 법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노동의 대가를 둘러싼 노사간 다툼이 형사사건으로 비화되는 안타까운 사례도 적지 않다. 법원의 사건을 통해 체불 임금·퇴직금 관련 소송의 사연을 들여다보자.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게 1년... 승소해도 돈 받을 길 '막막' 

[사례 1] A씨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그만 둔 것은 1년 전. 당시 사장은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밀린 월급은 한 달만 기다리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던 것이 반년이 훌딱 지나갔다. 더 기다릴 수 없어서 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그러자 사장은 다시 "한 달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결국 A씨는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들과 함께 소송을 냈다. 그러나 사장은 법정에도 나오지 않고 연락도 닿지 않는다. A씨는 "이대로 승소 판결을 받는다 해도 사장이 순순히 돈을 내 놓을지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A씨와 동료들이 받을 돈은 각각 100만원, 200만원에 불과하고, 다 합쳐봐야 1천만 원이 되지 않는다. 

A씨 사건에서 보듯, 체불 임금 사건은 비교적 소액인 경우가 많다. 비슷한 사례의 소송에서 건설 노동자 12명의 체불 임금이 780만 원인 경우가 있었다. 평균 60만 원에 불과한데 그 중 한 명의 임금은 겨우 11만원이었다. 이쯤 되면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는 비유가 딱 들어맞는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업주는 민사 재판이 걸려와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 소송까지 갈 정도라면 사업주가 돈을 지불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승소 판결을 받아도 회사나 사장 이름으로 된 재산이 없으면 임금을 받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서울에서 민사재판을 담당하는 한 판사도 "최근 임금 소송은 사업주가 아예 답변서도 제출하지 않거나, 소재 불명으로 불출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갈 데까지 가보자"... 사업주 압박 위해 형사고소도

 지난 1월 임금체불, 인사 등으로 내홍을 겪은 i일보 노사.
지난 1월 임금체불, 인사 등으로 내홍을 겪은 i일보 노사.한만송

이때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형사 고소다. 고소는 결코 권장할 방법은 못 되지만 사용자를 압박하여 임금을 받아내기 위한 방편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경우 밀린 임금을 받고 형사 고소를 취하하는 선에서 끝나지만 판결까지 가기도 한다. 

한편으론 "사장이 괘씸하다"며 갈 데까지 가겠다는 노동자들도 있다. 근로기준법 등에는 사용자가 14일 이내에 임금·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

[사례 2]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B씨는 졸지에 전과자가 되었다. 그는 C씨를 6개월간 고용하였는데 마지막달 월급 120만원을 주지 않아서 고소를 당했던 것이다.

재판에서 B씨는 "C씨가 나에게 줄 돈을 정산하지 않고 퇴사해 버려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법원은 "C씨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임금 채권은 다른 채권과 정산할 대상이 아니다"라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사업주의 체불 금액이 크거나 고의로 돈을 지불하지 않는 등 죄질이 나쁠 경우 법원은 징역을 선고하기도 한다.

[사례 3] D씨는 컨테이너 운송업자였다. 그는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다른 회사를 인수하였고 그 과정에서 직원 13명을 퇴사시켰다. 그러면서도 D씨는 이들에게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주지 않고 오히려 회사의 재산을 처분하여 개인 이득을 취했다. 그가 노동자 13명에게 지급해야 할 돈은 2억 5천여만 원. 법원은 D씨에게 징역 8월이라는 중형을 내렸다.   

"퇴직금을 월급에 포함시켰다"는 계약은 무효

한편 퇴직금 관련 분쟁도 끊이지 않는다. E씨의 사례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사례 4] E씨와 직장 동료들은 연봉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회사로부터 불리한 제안을 받았다. 회사가 계약 조건으로 "기존의 퇴직금은 매월 월급에서 중간정산받는 방식으로 모두 지급받았다"는 확인서를 요구했던 것이다.

E씨 등은 어쩔 수 없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중에 변호사의 자문을 얻어 퇴직금 청구 소송을 냈다. 회사 쪽은 연봉에 포함하여 퇴직금을 모두 지급했기 때문에 따로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E씨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퇴직금과 관련, 누구나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법원의 확립된 판례는 '퇴직금을 월급에 포함시키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무효'라는 것이다. 따라서 E씨도 퇴직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퇴직금이란 퇴직이라는 근로관계의 종료를 요건으로 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것으로 근로계약이 존속하는 동안에는 원칙으로 퇴직금 지급의무는 발생할 여지가 없는 것이고, 노사가 매월 지급받는 임금 속에 퇴직금이란 명목으로 일정한 금원을 지급하기로 약정하고 사용자가 이를 지급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은 퇴직금 지급으로서의 효력이 없는 것이다."(대법원 2007도3725 판결 등)

'일당 깎는다'고 주먹다짐...전과자 되는 안타까운 사연도

 지난해 7월 월급을 받으러 갔다가 소주병으로 폭행당한 재중동포 정근학(34·흑룡강성)씨. 중환자실에 입원해 사경을 헤맸으나 다행히도 병실로 옮겨졌다고 했다. 그러나 생명을 건진다고 해도 평생 장애를 앓고 살아야 한다며 어머니 여상금(66)씨는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7월 월급을 받으러 갔다가 소주병으로 폭행당한 재중동포 정근학(34·흑룡강성)씨. 중환자실에 입원해 사경을 헤맸으나 다행히도 병실로 옮겨졌다고 했다. 그러나 생명을 건진다고 해도 평생 장애를 앓고 살아야 한다며 어머니 여상금(66)씨는 눈물을 흘렸다. 조호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찾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노동자가 범죄자가 되는 안타까운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사례 5] 중국 교포인 F씨는 공사장 인부로 일했다. 가뜩이나 적은 일당에 불만이 많던 그는 작년말 공사팀장인 G씨가 일당을 깎겠다고 하자 분노가 치밀었다. F씨가 멱살을 잡자 G씨는 주먹을 날린 것을 시작으로 싸움은 결국 난투극으로 발전했다. 법원은 두 사람 모두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일당 몇 푼을 두고 두 사람이 다툰 결과는 엄청났다.

H씨의 사례도 황당 사건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안타깝다.

[사례 6] H씨는 회사가 월급을 제때 주지 않자 회사 소유의 냉동 탑차를 몰고가 어딘가에 버렸다. 회사가 차량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으나 그는 "밀린 임금을 받기 전에는 반환할 수 없다"며 거부하였다. 회사는 H씨를 고소했고 결국 횡령죄로 처벌받았다.

전문가들은 "사업주가 아무리 괘씸하더라도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손해"라고 조언한다. 노동법에 조예가 깊은 한 판사도 "법을 제대로 활용하여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무조건 '법대로'만 외치고 소송을 남발한다면 세상은 삭막해질 것이다. 최근의 경제상황을 본다면 사업주 입장에서도 제때 임금을 못 주는 사정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임금이 단순한 돈이 아니라 가정의 밥줄이 달려 있는 생계수단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법에 호소하는 노동자의 절박한 사정은 헤아리고도 남는다.  

"퇴직금 언제까지 받아야 하나요?"
문답으로 보는 체불 임금·퇴직금 관련 상식
체불임금 · 퇴직금과 관련한 상식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보았다.

- 회사 퇴사 후 사용자는 임금이나 퇴직금을 언제까지 줘야 하나.

근로기준법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르면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 그 지급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사용자가 제때 지급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단, 당사자간 합의로 지급 기간을 연장할 수는 있다.

- 체불 임금이나 퇴직금은 언제까지 청구할 수 있나.
임금 채권의 시효는 3년이다. 즉, 3년간 체불임금을 달라고 청구하지 않았다면 권리는 소멸한다. 사용자에게 체불임금을 청구했다면 언제까지 얼마를 지급하겠다는 각서나 확인서 등 서류로 근거를 남겨 놓아야 한다.

- 퇴직금은 어떤 경우에 받을 수 있나.
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1년 이상 근로한 노동자에게는 퇴직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설사 노사가 "일당, 월급, 연봉 속에 퇴직금을 포함하여 지급한다"고 계약했더라도 무효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퇴직금은 받을 수 있다.

- 체불임금 문제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노동부 산하 지방노동청에 진정을 내면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체불임금확인을 받을 수 있고, 악덕 사업주의 경우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대한법률구조공단(http://www.klac.or.kr 국번없이 132)에서는 체불임금 소송에 대해 무료 법률구조를 펼치고 있다.

#체불임금 #퇴직금 #법원 #근로기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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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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