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집 나간 지 몇 년 되면 자동이혼?"

[아는만큼 보이는 법 ⑨] 이혼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1. '협의'이혼과 '자동'이혼

등록 2009.04.21 17:37수정 2009.04.2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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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평생 한 번뿐인 경사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아예 독신을 고집하는 '비혼'이 늘어나는가 하면 잘 살아보겠다고 결혼했지만 도저히 맞지 않아서 헤어지는 부부도 연간 10만쌍이 훌쩍 넘어섰다. 어떻게 보면 요즘 같은 시대 남녀가 억지로 맞춰 사는 것도 고역일지 모른다.

이혼은 권장할 일은 결코 못되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운 일도, 꺼릴 일만도 아니다. 그런데 항간에 이혼을 둘러싼 오해가 떠돌아 다닌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배우자가 가출한 지 오래 되면 자동 이혼이 된다.
배우자가 재산이 많으면 위자료는 수억 원 받을 수 있다.  
이혼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바로 이혼이 된다.

이혼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그것을 알아보자. (이혼 이야기를 2,3차례에 걸쳐 나누어 게재한다. 이번호에는 주로 협의이혼과 관련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오해 1] 배우자가 집 나간 지 오래 되면 '자동 이혼'?

"마누라가 집 나간 지 1년이 되었거든요. 법원 가면 자동 이혼이 된다고 해서 왔는데요."
"자동 이혼이요? 누가 그런 말을 해요?"
"경찰서에서 들었나? 하여간 그렇다면서요."


가정법원에서 일할 때다. 간혹 '자동 이혼'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배우자가 가출하거나 행방불명된 지 오래 되면 법원에서 자동으로 이혼을 시켜주는 제도가 있단다. 누구는 가출 기간이 6개월이면 된다고 하고, 또 누구는 5년, 10년이 지나야 한다고 알고 있단다. 그런 제도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자동이혼이란 없다. 법을 떠나 상식으로 생각해보자.

남의 남편(또는 아내)이 가출했다는 걸 누가 어떻게 단정할 수 있을까. 설사 가출사실이 인정되더라도 그것이 가정불화 때문인지 생계 때문인지 아니면 또다른 이유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남편이 눈물을 머금고 홀로 외딴 섬으로 떠났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고깃배를 탄 지 몇 년이 흘렀다. 이런 경우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원이 이혼을 시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가정과 자식의 인생이 달린 이혼 문제를 법원이 쉽사리 결정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말이 안된다.

이혼하는 방법은 협의이혼과 재판이혼 2가지뿐

우리나라에서 이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 뿐이다. 바로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이다. 

협의이혼은 부부가 갈라서기로 의견일치를 보았을 때 법원에서 최종 확인을 받는 것이고, 재판상 이혼은 배우자의 폭행, 외도 등 법에서 정한 이혼 사유가 발생했을 때 소송을 통해 이혼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설사 배우자가 바람나서 가출한 지 10년이 됐더라도 그냥 이혼이 되는 법은 없다. 이런 경우 이혼 사유가 될 수는 있어서 소송을 통해 이혼할 수는 있다.

[오해 2] 이혼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바로 이혼?

결혼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외도하다 들통난 남편이 아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화가 난 아내가 서류 한 장을 남편 앞에 던진다. 이름하여 협의이혼 신청서.

아내의 날카롭고도 짧은 한마디가 이어진다.

"더는 못 살아, 여기 도장 찍어!"

영화나 드라마는 대개 여기까지만 보여준다. 그런데, 도장만 찍으면 정말 이혼이 될까. 그렇게만 된다면 이혼, 참 쉽다. 현실은 어떨까.

남편의 경제적 무능과 외도에 지친 ㄱ씨, 드디어 어젯밤 남편에게서 이혼서류에 도장을 받아 냈다. '이제 법원에 내기만 하면 난 자유다'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침 일찍 이혼 신청서를 들고 가정법원을 향했다. 협의이혼 접수창구에 서류를 내미는 순간 담당직원의 말에 당황한다.

(직원) "남편이랑 함께 오셔야 되는데요."
(ㄱ씨) "몰랐어요. 그런데 함께 오기만 하면 되나요?"
(직원) "일단 두 분이 함께 접수를 하신 후, 이혼 안내와 상담을 받으시고 … 남편과 자녀 양육 협의를 하셔서 … 석달 후엔 협의이혼 기일에 함께 출석하고, 그 다음엔…."
(ㄱ씨) "협의이혼이 이렇게 복잡해요?"

영화와 달리 현실에선 도장만 찍었다고 끝이 아니다. 도장을 찍으면서 협의이혼의 절차는 시작될 뿐이다.

우선, 부부가 이혼하기로 합의했다면 협의이혼 신청서를 작성한 다음 두 사람이 함께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

그러면 법원직원이 자녀양육, 재산문제 등에 관한 이혼안내를 해주고 전문가 상담을 권유한다. 그 후로 협의이혼 기일을 정해준다. 통상 석달 뒤(자녀가 없는 부부는 한 달 뒤)로 날짜가 잡힌다.

그동안 부부는 자녀 양육, 친권자문제 등에 관한 협의를 마쳐야 한다. 만일 협의가 되지 않았다면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부부는 협의이혼 기일에 함께 법정에 출석한다. 법원에서 협의이혼 확인서를 받았다면 석달 내에 시청 구청 등에 신고해야 비로소 남남이 된다.

부부가 함께 법정 출석... 자녀양육 협의도 마쳐야 이혼 가능

복잡한 절차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부부가 함께 협의이혼신청서 제출 → 법원, 이혼 안내 및 협의이혼 기일 지정(통상 3개월 후) → 전문가 상담(선택사항) → 자녀 양육 ․ 친권 협의 → 협의이혼 기일에 함께 출석 → 3개월 내에 이혼 신고

현재의 협의이혼 절차는 작년 6월 큰 폭으로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이혼 전 3개월 간의 '숙려기간'을 둔 것과 자녀 양육문제에 관한 협의절차를 도입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당장 이혼하고 싶더라도 몇 달 동안 재산문제, 자녀 양육 문제 등을 정리하고 그래도 이혼해야겠거든 다시 법원에 오라는 말이다.

'홧김 이혼'을 막겠다고 만든 이 제도가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이혼 전에 부부가 자녀 양육문제를 해결하도록 의무화한 부분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작년 한 해 법원에 접수된 협의이혼 신청 건수(이혼 소송 제외)는 13만212건으로 2007년(12만4195건)보다 조금 늘었다. 하루 400쌍, 한 달 1만 쌍 정도의 부부가 이혼 서류를 들고 법원을 찾는 셈이다.

이들 중에는 중도에 이혼을 포기했거나, 아니면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잘 살고 있는 부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혼을 각오하며 법원까지 찾았다면 부부 사이의 앙금은 쉽사리 사라지기 않을 것 같다.

결혼은 정말로 신중해야 한다. 이혼은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는 <이혼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두번째 이야기로 재판상 이혼 사유, 위자료 재산분할 등에 관한 얘기를 사례와 더불어 소개할까 합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에는 <이혼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두번째 이야기로 재판상 이혼 사유, 위자료 재산분할 등에 관한 얘기를 사례와 더불어 소개할까 합니다.
#이혼 #자동이혼 #법원 #협의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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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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