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2차선의 소록대교, 거금도와 연결되는 다리가 개통되면 더욱 멋있게 바뀔 듯.
진민용
"차라리 배로 다니던 때가 더 좋았는데..."
영화 벤허에 등장하는 주인공 유다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문둥병'에 걸렸다가,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동시에 기적적으로 치유 받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일명 '저주받은 병'이라는 이 '문둥병'은 과거 '나병'으로 불렸고, 지금은 '한센병'이라는 의학용어로 불리고 있습니다.
전염성이 높은 불치병으로 알려져 집단수용을 했었지만 최근 항생제가 발달하면서 완치도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입술과 얼굴, 그리고 손과 몸에 균이 확산되면서 살이 썩는 냄새가 나고, 보기에 흉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들은 일상 생활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수용시설에 들어가게 됩니다.
전라남도 여수와 고흥에는 국내 대표적인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의료시설이 있습니다. 여수 '애양원'(애양병원)은 지난 1909년 포사이트 선교사가 길에 쓰러진 나환자를 치료한데서 동기가 돼 지금까지 운영을 하고 있고, 고흥군 소록도에는 지난 1916년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해 '소록도자혜의원'이라는 병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환자들의 주거시설과 의료시설을 마련해 놓고 국립병원에서 이들을 지속적으로 치료하고 있습니다.
여의도 면적의 약 1.5배 크기의 소록도는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들이 나환자들을 감금했던 감금실, 시신을 해부하던 검시실과 교도소 등 역사 속 한센인들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시설들과, 당시 심었던 황금편백나무, 삼나무, 팔손이나무, 치자나무로 가꾼 중앙공원이 아름답습니다. 지금은 환자 617명, 병원직원 191명, 자원봉사자 약 20명이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소통하라며 만든 다리, 오히려 더 고립 돼"
▲현재 소록도와 육지를 이어주는 단 하나의 배, 이마저도 이용객이 거의 없다.
진민용
지난 3월2일, 이 소록도와 녹동항을 잇는 길이 1160미터의 해상 현수교인 '소록대교'가 개통을 했습니다. 왕복 2차선인 이 대교는 전라남도가 지난 2001년 연결도로 공사비를 합해 1652억원을 들여 완공했는데, 이 다리를 만든 목적은 소록도 주민들의 보다 자유로운 육지 왕래와 소록도를 활용한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것이라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다리가 오히려 소록도 주민들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건 한센인을 포함한 소록도 주민들의 실상을 모르는 데 따른 결과였습니다.
현재 소록도 주민들의 평균 연령은 73세로, 한센인뿐 아니라 기타 주민들도 주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다리가 생기기 이전의 경우에 녹동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민간인이 운영하는 차도선이 하루 20회, 병원선이 하루 6회등 하루 26차례씩 오가는 배에 휠체어를 타고 오르면 됐고, 육지에 도착해서도 불편함이 없이 장을 보거나 볼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건널 수 없도록 인도가 없다. 갓길로 걸어가는 보행자가 위험해 보인다.
진민용
▲대부분의 주민들과 환자들은 이런 전동휠체어를 이용한다. 이걸 타고 대교를 건너기는 아무래도 무리다. 택시에도 물론 못 싣는다.
진민용
그런데 '소록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 통하던 배는 한센인들의 편의를 위해 병원선이 하루 5회 운항하는 것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휠체어를 타고 대교를 건너야 하지만, 현재 대교에는 인도가 없어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 없도록 했으며, 이에 대책을 요구하는 주민들에게 전남도는 "해상교량의 경우 안전 문제로 인도를 개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주민이 말했습니다. 또 다른 주민은 "단 한 걸음도 딛기 어려운 중증 한센인이 1㎞가 넘는 다리를 건너기는 어렵다"면서 "전남 울돌목 해협에 놓인 484m 길이 진도대교에는 관광객을 위한 인도가 설치돼 있다. 관광객을 위해서는 인도를 만들고, 몸이 불편한 주민을 위해선 돈을 들일 수 없다는 것인지 답답하다"고 토로했습니다.
결국 이들이 육지로 나오기 위해서는 '콜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금도 문제지만 대부분 택시들이 고흥 군내를 운행하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를 꺼려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난 93년간 겪었던 격리와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리가 오히려 격리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른쪽 다리를 건너온 관광버스들이 소록도 주차장에 즐비하다. 평일인데도 많은 관광객들이 들른다. 하지만 정작 소록도는 관광수입이 별로다.
진민용
"소록도가 쓰레기장이여?"소록도 주민들의 하소연은 이뿐 아닙니다. 다리 개통으로 관광객들은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현재 소록도에는 관광객들이 돈을 쓰고 갈 만한 곳이 별로 없습니다. 기껏 기념품 가게 한두 군데와 슈퍼 몇 개를 제외하면 식당도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관광객들은 소록도 기념전시관이나 중앙공원의 나무 정원, 그리고 교회나 성당 등을 둘러보고 가는 게 전부고, 일부 관광객들은 현재 주민이 살고 있는 집에 찾아와 신기한 듯 방을 둘러보고 가기도 한다는군요.
이에 대해 한 주민은 "우리 집이 무슨 동물원인가? 낮잠 자고 있는데 불쑥 문을 열고는 신기한 듯 쳐다보고 미안하다는 소리도 없이 가 버리고..."라며 화를 냅니다. 그는 또 "그리고 말이지 지금 관광버스 타고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정작 돈을 쓰지는 않고 쓰레기만 버리고 가니까 골치 아파 죽겠어" 라며 하소연 했습니다.
주민의 말이 사실인지 소록도 입구에 있는 관리사무소에 들러 확인해 본 결과 다리가 개통되기 전에는 일주일에 1톤 차량 두 대 분량의 쓰레기를 수거했지만, 지난 3월 한 달 동안은 하루에 한 대 분량의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록대교는 소록도뿐 아니라 녹동항도 고립시키고 있다"
▲소록대교 육지쪽에서 본 녹동항 전경, 다리만 없었다면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어민들도 실망이 크다.
진민용
소록대교는 소록도와 녹동항(구항)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다리가 생기면서 뱃길이 끊어졌고, 이 때문에 항구 주변의 식당과 숙박업소 등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인들은 손님이 없어 울상이라고 합니다.
특히 소록대교는 고흥 시내 쪽에서 녹동항을 거치지 않고 소록도로 이어지기 때문에 일부러 녹동항을 찾아오지 않는 이상은 항구에 들러서 머물 기회는 없습니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조업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녹동항 어민들과 주변 상인들은 관광객들마저 발걸음을 끊으면서 2중으로 고초를 겪는 실정입니다.
평생을 고립돼 살아온 '한센인'들은 어쩌면 '소록대교'의 개통을 가장 반겨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들에게 '소록대교'는 육지와 소통하는 통로가 아닌, 오히려 육지의 '구경거리'로 전략하는 다리가 돼 버린 듯해서 씁쓸합니다. 전라남도도 소록도 경제를 위해서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소록대교의 야경, 아름다운 외향 만큼이나 빨리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진민용
한센병이란? |
한센병은 구약성서에서 천벌로 묘사되거나 한국의 경우 문둥이라는 말이 전라도나 경상도 지방의 욕설일 정도로 옛날부터 멸시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멸시는 근대에도 계속되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한센병 환자들을 소록도에 강제 수용했으며, 불임수술, 강제노역 등으로 그들의 인권을 짓밞았다.
심지어는 당시 병원장이 언론에서는 환자들을 보살피는 선행을 베푼다고 미화되었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한센인들을 강제노역, 여성과 남성의 분리, 불임수술 등으로 못살게 굴다가 환자에게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
특히 일명 물방이라고 하는 독방에 가두기도 했는데 방의 구조가 문턱이 굉장히 높고 방에 고의로 물을 채워넣은 구조로서 이는 나병환자를 하루라도 빨리 죽이기 위해서 특별히 고안되었다고 한다. 이 물방에 갇힌 나병환자들은 겨울이 되면 물방의 얼음이 얼어붙는 바람에 얼어죽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도 비토리섬이라는 곳에서는 토지소유문제로 분쟁이 발생 지역주민들에게 학살당하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한센인들은 비극의 역사를 걸어왔다. 이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된 것은 1965년 당시 소록도국립병원장이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병 환자들을 배려, 과수업, 양돈업 등으로 자립을 할 수 있게 하면서였다.
병원장은 한센인들을 위한 축구팀도 만들어서 한센인들이 몸만 불편할 뿐, 비환자들보다 못한 게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병원장의 활약은 소설가 이청준이 쓴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 잘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도 고령환자들의 경우 가족들이 있는데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이들의 인권개선문제는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숙제중 하나이다.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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