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전자(자료사진).
김대홍
그리고 며칠 후, 자랑스러운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빤득빤득한 면허증을 발급받게 되었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보다 더 좋았던 것으로 보아 나는 정말 내 인생의 커다란 산을 하나 넘은 뿌듯함에 한껏 충만해 있었다. 그래도 명실 공히 국가에서 발급해준 자격증이 아닌가!
이 기세를 놓칠 수는 없었다. 장롱 면허로 썩히게 되면 정말 평생토록 기회를 잃게 될 것만 같았다. 나는 곧바로 중고차를 구입했다. 그 와중에도 배짱은 커져 있었는지 나는 강사 분들의 권유를 물리치고 당당히 수동 기어가 달린 차를 몰게 된 것이다. 참으로 볼품없는 중고차였지만 내게는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가족들은 물론 축하의 말을 보내주었지만, 막내딸의 허술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버지는 끝내 걱정을 이기지 못한 채 불쑥 올라오셨다. 그리고는 꺼내신 한 마디, "너는 내가 안심이 안 되아서! 이제 아빠랑 좀 연습 좀 해야 되것다, 알것지?" 막내딸 걱정에 새벽 같이 먼 길을 달려온 아버지의 가슴 찡한 성의를 누군들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와 시내 주행 연습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덕분에 아직은 어설프지만 시내 권에선 혼자 힘으로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엔 역시 많이 부족해 보이셨던 모양이다. 얼마 후 아버지는 친정 가족들을 모두 불러내어 내 차에 타기를 권했고, 나는 그 길로 고속도로 주행에 나섰다.
초보운전자에겐 대단한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운전을 마쳤을 때 내 등과 손아귀엔 땀이 그득했고,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은 하나 같이 '이제야 살았구나!' 싶은 표정을 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푹푹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정말 그제서 진정한 독립을 선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줌마! 아이씨, 운전 똑바로 못해?" TV에서만 봤던 장면을...여자인 내가 스틱을 운전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누구보다 남자들이 더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스틱은 명절 같이 정체가 지속되는 경우나 백화점 가는 길, 또는 경사가 높은 언덕에서 반 클러치를 밟아야 할 때가 가장 괴롭다. 발목에 전해오는 떨림과 고통은 수동으로 운전해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차체가 밀리는 느낌이 들거나 시동이 꺼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라도 들면 무작정 비상등부터 켜고 보는 그 불안함은 끝에는 짜증과 불쾌감도 있었지만, '내가 해냈다.'는 안도와 성취감도 밀려왔다. 그리고 기어를 변속하면서 어느 순간 차와 내가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 뿌듯함이란!
달리는 도로 위에서도 나만의 은밀한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기대 이상의 기쁨을 선사해주곤 했다. 잠깐 여유가 생길 때 만끽하는 혼자만의 드라이브가 주는 쾌감과, 싱그러운 날에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상쾌함, 창문을 모두 닫고 음악 소리를 높이며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자유로움까지… 운전이 내게 준 기쁨들이 고마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운전을 포기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여느 날처럼 집 앞에 있는 작은 골목 코너를 돌던 때였다. "쾅!" 커다란 굉음과 동시에 온몸으로 전해오던 통증 때문에 나는 자동적으로 시동을 꺼트리고 말았다.
"아줌마, 아줌마! 아이씨, 운전 똑바로 못해?"상대방 운전자는 금방 잡아먹을 듯한 목소리로 외쳐댔다. TV에서 흔하게 보아왔던 한 장면이 내 눈앞에 생생하게 재연되고 있었다. 통증에 눈을 찔끔 감아 뜨다 겨우 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상황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무조건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그런 내 태도 때문이었는지 상대방의 태도는 금방 누그러지는 듯했고, 다행히도 사고를 원만히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고가 있은 후부터 제법 강해졌다 생각했던 나의 담력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때 일을 떠올리거나 생각에 잠기면 일순간 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현상이 계속 됐다. 점점 운전대를 잡는 것에 용기가 없어졌고, 그 때문인지 특별한 일도 아닌데 멀쩡한 벽에 가서 차를 박거나 찌그러트리는 일이 늘었다. 자연스럽게 내 고물차는 자주 정비센터를 들러야 했고, 차 상태를 지켜본 정비소에서는 끌끌 혀끝을 차며 "차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이다!"라는 말을 농담 삼아 건네곤 했다.
정들었던 고물차여 안녕!내 처지고 속상한 마음만큼이나 차는 점점 더 '쿨럭'거렸다. 그리고 나는 1년 반을 동고동락한 내 고물차를 이제는 그만 쉬게 해주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비소나 폐차를 하러 나온 사람까지 아직은 고쳐서 쓸 만하니 고쳐서 쓰거나 운전을 안 할 거라면 중고차 시장에 내놓을 것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폐차를 선택했다. 사람이 아닌 것, 특히 내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기계에게도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내 손에는 고철 값으로 나온 몇 만 원이 쥐어지고, 그렇게 차와는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정들었던 것을 떠나보내는 서운함도 컸지만, 운전하면서 받았던 크고 작은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기쁨도 함께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평범한 '뚜벅이' 신세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쩌자고 가슴 속엔 봄바람이 이리도 살랑거리고, 또 어쩌자고 도로 위에 쏟아진 차량 행렬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이냐! 그저 소박한 이 설움이 가슴 안에서 잠잠히 지나가길 타일러 보는 수밖에. 그래도 나, 이 뚜벅이는 내일도 오늘처럼 씩씩하게 걸어갈 것이다. 뚜벅뚜벅, 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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