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연예인·기업인·방송인 중 유명인을 우리대학 강단에'
화려한 대중 스타들의 인기는 대학 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대중스타 모시기 경쟁이 치열한 대학가의 요즘이다. 특히 지방의 중소 사립대학은 물론이고 국립대학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다양한 강의제공과 경쟁력 확보차원이라는 그럴싸한 명목이 따라붙는다.
근무하는 직장이나 활동하는 공간이 주로 지방과는 먼 서울이지만 선뜻 지방대학의 초빙제의에 응하는 이들의 대우는 그러나 정규직 전임 교원보다 비정규직 비전임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학기 초만 되면 대학을 기웃거리는 유명인들의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이유는 뭘까?
'얼굴도 알리고 명함의 공란을 한 줄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교수로 명성을 떨쳐보기 위해' 등의 유추가 분분하지만 어떤 목적에서건 본인의 얼굴도 알리고 대학의 홍보대사 업무도 수행해내는 저렴한 스타교수(?) 채용 제도가 붐을 이루고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말 그대로 상생방안이며, 무엇보다 대학들이 적극 선호하는 추세다. 정규 직업이 따로 있거나 사업체를 경영하는 이들 비전업 교수들을 대학 내에선 '얼굴강사'라고도 부른다.
폴리페서와 프로티션 사이에서 고뇌 깊은 시간강사들
문제는 이들로 인해 생계형 전업 시간강사들의 자리가 비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 교양과목의 절반가량을 담당하면서도 수십 년 동안 교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강의한 시간만큼만 대가를 지불받는 일용직 근로자와 다름없는 생계형 시간강사들의 자리를 이들이 대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뜩이나 까칠하고 '찌질'한 '듣보잡(처음 들어본다는 뜻의 속어)' 강사란 소릴 듣는 생계형 전업 시간강사들이다. 이러한 이들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한 요인이 바로 또 다른 유명 비전업 시간강사들이란 사실은 아아러니한 한국 대학사회의 단면이다. 물론 '얼굴강사'들 가운데는 강의를 열심히 하여 좋은 평가를 받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낯부끄러운 과시용이나 처세용으로 이용하고 있는 이들도 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가에선 폴리페서[polifessor: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들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들이 노출돼 왔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학생들에 대한 교육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갑자기 선거운동에 뛰어들면 그 교수의 공백은 강의의 공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학교를 비우고 국회의원이나 정당요직 활동을 한다면, 장기간 학생들은 수업을 받을 수가 없다. 그만큼 학생들의 교육권이 위협받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시간강사들로 대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역으로 폴리페서들이 비운 강의공백을 또 다른 정치인들로 대체하는 대학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폴리페서와 반대되는 개념을 지닌 이들을 프로티션[protician: 교수(professor)와 정치인(politician)의 합성어]이라고 불러야 맞는 걸까. 폴리페서의 빈자리를 프로티션, 즉 새로운 얼굴강사로 대처하는 대학의 시간강사들은 그들 사이에서 고뇌와 고민이 더욱 깊어만 간다.
최근 지방의 한 국립대학은 "지방의원들을 우리 대학 강단에 서게 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 했다. "초빙교수로 임용해 대학교 학부 재학생은 물론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일정기간 정치·경제·여성·복지·환경 등 사회 각 분야에 대한 교양교육과 더불어 지역현안 및 발전방안 등에 대해 강의를 할 예정"이라며 "학생들에게 좋은 교수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초빙교수, 명예박사 선심 쓰듯 남발...시간강사 문제는 '나 몰라라'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지난 3월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방의원의 겸직 금지를 강화하는 내용의 '지방자치법 개정 공포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날 공포된 개정법률은 지난 3월3일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법률은 정당가입이 가능한 공무원(국회의원 보좌관·비서관·비서, 국회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새마을금고·신협·한국교육방송공사 임직원을 지방의원 겸직금지 대상에 추가하고, 각종 조합의 상근 임직원에서 비상근 임직원까지 겸직금지를 확대했다.
정당가입이 가능한 교원이 지방의원으로 당선되면 임기 중 휴직을 의무화했다. 또 지방의회 의장은 지방의원의 겸직이 품위유지 의무 등을 위반할 경우 사임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하고, 지방의원의 소관 상임위원회 직무 관련 영리행위를 제한했다.
그럼에도 폴리페서와 그 반대 개념인 프로티션이 대학가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4.29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중에도 나타났다. 이 외에도 지방대학들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교수로 임용하는 사례는 많다. 그러나 이들은 말이 교수지 엄밀히 따지면 시간강사나 다름없는 임시직 비전임 교원이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 인사들을 초빙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나 자격검증과 임용절차 등의 투명성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전임 교수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인건비를 들여 유명 인사들에게 교수라는 직함을 나눠주듯 인심 쓰는 대학들이 보여주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유명 정치인과 대기업 CEO들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선심 쓰듯 안겨주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학교 발전기금이나 시설 증축에 필요한 예산 확보를 위해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 보고자 하는 내막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들 대학은 고질적인 문제로 오랫동안 제기돼 왔던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선 '나 몰라라'하며 뒷짐만 지고 있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얼굴강사들...부실강의 피해자는?
무분별한 명예박사학위와 초빙교수 남발은 대학사회의 또 다른 갈등과 반목을 유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 '얼굴교수'와 '실력교수'란 이중 잣대가 횡횡하고 있지 않은가.
폴리패서의 반대 개념에 선 교수지향적인 정치인들의 유명세를 활용한 초빙교수 제도가 전문성을 학문에 연계시켜 이해를 돋우는 장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자칫 부실한 강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피해는 결국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더 나아가 대학교육의 질을 저하시킨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대학 자체에 마이너스 요소로 성립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재정이 열악하다는 핑계를 들어 일부 지방대가 모교출신 전직 장·차관 및 국회의원, 전·현직 고위 공무원, 지방의원이나 기업인 등을 강단에 세우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는 강의를 성실히 준비하고 후배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얼굴을 좀 더 알리고 명성을 쌓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런가 하면 일부 대학들의 유명 연예인 모시기 경쟁도 치열하다. 초빙교수 또는 겸임교수라는 직함을 주고 있지만 이들 역시 대부분 비전임 그룹에 속한다.
이들은 풍부한 현장경험으로 '생생한 교육'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대학교육의 부실화 및 일부 지방대학의 홍보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고 경험도 부족한 젊은 연예인을 마구잡이식으로 영입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연예인 교수를 영입하는 학교가 대부분 지방에 위치해 있거나 신설학교임을 감안한다면 '실력'보다 '인지도'를 우선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570일 넘긴 국회 앞 천막농성...바뀐 것 없는 시간강사
게다가 바쁜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얼마나 철저하게 사전 강의준비를 했을지도 의문이다. 전업 시간강사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1시간 강의를 위해서는 최소한 4시간 이상을 준비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매일 스케줄에 쫓기는 정치인들과 연예인들이 과연 제대로 강의준비를 해왔겠는가.
부실한 강의로 인한 피해는 결국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또 대학교육의 질을 저하시킨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대학 자체에 마이너스 요소로 성립할 수 있다. 대학의 시간강사들이 "교원 지위를 부여해 달라"고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570일이 넘었지만 바뀐 것은 없다.
결론적으로, 대학교원을 임용함에 있어 단지 정년보장을 받을 수 없는 비정년트랙 교원이나 비정규직, 즉 비전임 교원이라는 이유로 마음대로 직위를 박탈하거나, 업무를 마음대로 부여하고 특정한 자격요건을 요구하면서도 차별적으로 처우한다면 이는 상식적인 위법처사다.
강의평가 결과가 안 좋아도 전임 교원인 교수들은 승진에 약간 제약을 받는 정도지만, 강사들은 강의 위촉이 해지돼 당장 생계에 위협을 가하는 비전임 교원들에게만 가혹한 현재의 강의평가 제도 또한 모순이다.
그렇다고 시간강사들이 죄다 강의를 소홀히 함으로써 평가가 저조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신문> 4월 6일자 '강의평가·성과급 연계 더욱 확산돼야'란 제목의 사설을 보면 오히려 시간강사들의 평가가 전임 교수들보다 낫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동안 대학가에서는 '부실 강의'가 고질병처럼 자리잡아 왔다"는 이 사설은 "서울대 기초교육원이 학생 4만여 명을 상대로 강의평가를 받은 결과 시간강사가 가장 나은 평가를 받은 반면 전임교수가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서울대 시간강사, '연봉제 강의교수' 전환 움직임 초미 관심
이 사설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강의와 연구는 교수의 양대 책무이다. 그런데도 강의는 저 편한 대로 하면서 '철밥통'이나 두드리는 교수가 캠퍼스에 넘쳐 난다면 인재 양성은 기대하기 힘들다"며 "강의평가를 강화해 불성실하고 실력 없는 교수를 퇴출시키는 노력이 대학가에 확산돼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얼굴강사' 모시기 경쟁에 혈안이 된 대학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러한 강의평가 결과 때문이었을까. 서울대에선 시간강사들의 '연봉제 강의교수' 전환 바람이 일고 있어 관심을 끈다. 지난 3월 서울대 시간강사 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온 평의원회 연구팀은 현행 시간강사제도를 강의교수제도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대학신문>은 3월 8일 크게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이 연구팀은 서울대 시간강사 현황과 시간강사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연구결과 시간강사(전임대우 강의교수 포함)는 전임교수 인원의 64% 수준인 1,270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5년간(2003~2007년) 학부에 개설된 교양 교과목의 61%를 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 교양 교과목의 경우 시간강사가 담당한 강좌 수가 전임 교수가 담당한 강좌 수의 2배에 해당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처럼 시간강사가 대학교육에서 기여하는 정도는 큰 데 비해 이들이 받는 처우는 상당히 미흡하다는 것이다. 1977년 교육법이 개정된 뒤 시간강사는 법적으로 교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시간강사들은 적은 액수의 강사료, 불안정한 강의수급, 부족한 연구공간으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팀은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계약제 강의교수제의 제도화를 적극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강의교수제를 통해 현행 시간강사들에게 교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이들을 존중해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다. 전국 각 대학의 시간강사제도의 비합리성을 개선하고 교육을 질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기반이 되기 바란다.
시간강사의 문제는 대학의 문제이자 시간강사들의 인권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화려한 '세계화'를 외치고, 눈에 보이는 시설에만 투자할 것이 아니라 지금 대학 내부에서 함께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하고 그 능력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서울대는 시간강사의 인권, 고급인력의 활용이라는 다각도의 견지에서 시간강사 정책을 선도해줄 것을 간곡히 바란다.
2009.04.11 14:49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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