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39) 도시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606] ‘심화되어야’와 ‘깊어져야’

등록 2009.04.11 15:24수정 2009.04.1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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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심화되다

 

.. 이 작업은 다음과 같은 더 근원적인 질문으로 심화되어야 한다 ..  《강상중/이경덕,임성모 옮김-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이산,1997) 14쪽

 

 '작업(作業)'은 '일'로 고치면 됩니다. "근원적(根源的)인 질문(質問)으로"는 "뿌리깊은 데까지 물으며"나 "속깊은 물음으로" 같은 말로 다듬을 수 있을까요.

 

 ┌ 심화되어야 한다

 │

 │→ 깊어져야 한다

 │→ 파고들어야 한다

 │→ 파헤쳐야 한다

 │→ 깊이 들어가야 한다

 │→ 속깊이 살펴야 한다

 │→ 차근차근 돌아봐야 한다

 │→ 지긋이 헤아려야 한다

 └ …

 

 "깊어진다"를 가리키는 '심화'인데, 뒤에 '-되다'를 또 붙여서 "깊어져야 한다"는 뜻으로 쓰였구나 싶네요. 그러면 말뜻 그대로 "깊어져야 한다"라 하면 한결 쉽고 단출할 텐데. 이런 글을 읽는 분들한테 쉽고 단출한 말은 '심화되다'일까요.

 

 그런데 앞에 나온 '근원적인'을 생각하면 '심화되어야'는 서로 겹말이 됩니다. '근원적인'은 뿌리깊은 곳, 그러니까 깊은 자리를 살핀다는 소리이고, '심화되어야'는 깊어져야 한다는 소리예요. "깊은 자리를 질문해서 깊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뜻을 가만히 살피면 퍽 엉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일은 다음처럼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 이 일은 다음처럼 더 속깊은 데까지 살펴야 한다

 ├ 이 일은 다음 물음처럼 더 깊숙하게 들어가야 한다

 └ …

 

 문득, "더 깊이 생각하자"라는 말을 이처럼 길게 꾸밈말을 붙여서 늘어뜨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두 마디면 그만인 말을 괜히 머리 썩이면서 어렵게 꾸미지 않았나 싶습니다. 손쉽게 쓸 수 있는 말을 손쉽게 쓰지 못하고, 알맞게 쓸 수 있던 말을 알맞게 쓰지 못하며, 살가이 쓰면 한결 나은 말을 한결 낫게 쓰지 못합니다.

 

 

ㄴ. 도시화하다

 

.. 그러나 현재의 아를은 급격히 도시화하면서 도시 주변에는 과수원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  《사사키 미쓰오,사사키 아야코/정선이 옮김-그림 속 풍경이 이곳에 있네》(예담,2001) 49쪽

 

 "현재(現在)의 아를"은 "지금 아를"로 다듬습니다. '주변(周邊)'은 '둘레'로 손질하고, '급격(急激)히'는 '빠르게'나 '갑작스레'나 '갑자기'나 '-하루 아침에'쯤으로 손질해 봅니다.

 

 ┌ 도시화(都市化) : 도시의 문화 형태가 도시 이외의 지역으로 발전, 확대됨

 │   - 농촌의 도시화가 진전되다 / 농촌의 생활양식이 점차 도시화되고 있다 /

 │     산업화와 함께 이루어진 도시화는 도시 인구의 증대를 가져왔다 /

 │     도시화될수록 환경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

 │     대중 매체의 발달로 모든 지역이 도시화하고 있다 / 농촌을 도시화하다

 │

 ├ 아를은 급격히 도시화하면서

 │→ 아를은 갑작스레 도시가 되면서

 │→ 아를은 너무 빠르게 도시로 탈바꿈하면서

 │→ 아를은 하루가 다르게 도시로 바뀌면서

 └ …

 

 아를이라는 곳이 지난날에는 도시가 아니었다가 도시로 바뀌는데 너무 빨리 바뀐다는 소리일 테지요. 도시 아닌 곳이 도시가 된다면 "도시가 되다"나 "도시로 바뀌"고 있다는 소리일 테고요. 그러니까 '탈바꿈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는 '거듭난다'거나 '새로워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새옷을 입는다'는 이야기인 한편, '새 모습을 갖춘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도시 아닌 곳이 도시로 된다고 할 때에, 반가운 모습으로 도시가 된다면 "도시로 거듭난다"나 "도시로 새로워진다" 같은 말이 어울릴 테지만, 얄궂은 모습으로 도시가 된다면, "도시로 나뒹군다"라든지 "도시 따위가 된다"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 농촌의 도시화가 진전되다 → 농촌이 도시로 바뀌어 가다

 ├ 점차 도시화되고 있다 → 차츰 도시로 되어 가고 있다

 ├ 도시화될수록 → 도시로 바뀔수록

 ├ 도시화하고 있다 → 도시 옷을 입고 있다

 └ 농촌을 도시화하다 → 농촌을 도시로 바꾸다

 

 그나저나, 곰곰이 헤아려 보면 오늘날 우리 삶터는 거의 모두 도시입니다. 도시 아닌 곳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시골이라는 자리 또한 도시 냄새가 듬뿍 나는 가운데, 곳곳에 도시 물결이 넘칩니다. 도시에서 누리거나 즐기는 갖가지 물질문명이 시골을 휘감습니다.

 

 이리하여, 이제는 '도시화'라는 말은 거의 붙일 수 없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가 온통 도시가 다 되어 버렸거나 어디이든 도시라 할밖에 없어요.

 

 ┌ 도시 되기

 ├ 도시로 나아가기

 ├ 도시로 가꾸기

 ├ 도시로 바꾸기

 └ …

 

 도시라는 곳은 얼마나 살기 좋은 터전이기에 우리 모두 도시에서 살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도시 아닌 곳에서 살고픈 사람도 있을 텐데, 이들은 우리 나라에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작은 사람 목소리를 낼 곳은 없는지, 작은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며 살아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도시다움이란 무엇이고 도시가 튼튼하고 싱그러운 곳이 되자면 어찌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우리들 모두 도시에 살고 있는 이즈음, 우리는 우리 삶터인 이 도시를 어떤 모양 어느 흐름으로 돌보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살 만한 우리 삶터인 도시인지, 더없이 아늑하고 사랑스러운 이 나라 도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그대로 생각이 나오고, 우리가 어울리는 몸짓 그대로 말이 되어 나오는데, 우리들 살림살이는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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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1 15:24ⓒ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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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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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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