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79)

― ‘여기서 열거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다듬기

등록 2009.04.10 18:29수정 2009.04.1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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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산의 일각

 

.. 여기서 열거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쉽게 생각하면 유리와 돌 정도를 제외하고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사는 제품에는 하나 이상의 화학물질이 첨가되어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  《홍선욱,심원준-바다로 간 플라스틱》(지성사,2008) 96쪽

 

 '열거(列擧)한'은 '늘어놓은'으로 다듬고, "돌 정도(程度)를 제외(除外)하고"는 "돌 따위를 빼고"로 다듬습니다. "하나 이상(以上)의 화학물질이 첨가(添加)되어"는 "하나가 넘는 화학물질이 들어"로 손질합니다.

 

 ┌ 빙산(氷山)

 │  (1) [지리] 빙하에서 떨어져 나와 호수나 바다에 흘러 다니는 얼음덩어리

 │   - 여객선이 빙산에 부딪혀 침몰했다

 │  (2) 불을 때지 아니하여 몹시 찬 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빙산의 일각(一角) : 대부분이 숨겨져 있고 외부로 나타나 있는 것은 극히

 │    일부분에 지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빙산의 일각이야

 │

 ├ 빙산의 일각이다

 │→ 빙산 가운데 한 조각이다

 │→ 작은 조각일 뿐이다

 │→ 아주 작다

 │→ 얼마 안 된다

 │→ 몇 가지 안 된다

 └ …

 

 아주 흔히 쓰이는 상말 "빙산의 일각"을 쓰지 말자고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투가 꼭 들어맞는다고 여기는 분이 많고, 이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다른 상말을 찾아 쓰기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상말을 쓰게 되었는지 돌아보고 싶으며, 우리는 왜 우리 나름대로 우리 말투를 살리면서 받아들이지 못했는가를 헤아려 보고 싶습니다. 우리한테 좀더 알맞거나 걸맞는 말투가 없는지 살피고 싶으며, 우리 뒷사람한테 물려줄 말은 오직 "빙산의 일각"뿐인지 곱씹고 싶습니다.

 

 ┌ 얼음산 / 빙산

 ├ 얼음강 / 빙하

 ├ 어는점 / 빙점

 ├ 얼음과자 / 빙과

 └ …

 

 얼음으로 이루어진 산이면 '얼음산'이고, 한조각짜리라면 '한조각'입니다. 그래서 "氷山の一角" 같은 말투는 "얼음산 가운데 한조각"으로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었으며, 우리들이 흔히 쓰는 다른 말투대로 "작은 조각"이나 "작은 티끌"이라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얼음을 지치는 운동 경기를 두고 '얼음지치기'라 하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오로지 '빙상종목(氷上種目)'이라고 합니다. 얼음으로 굳혀서 먹는 과자는 '얼음과자'일 테지만, 그예 '빙과(氷菓)'라고만 합니다. 일본사람이 쓴 소설 이름도 '빙점(氷點)'이라 하지만, 우리는 우리 말로 '어는점'이나 '어는자리'라 옮겨야 하지 않았으랴 싶어요.

 

 낱말 하나하나 우리답게 풀어내지 않았고, 말투 하나하나 우리 나름대로 엮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느낌을 살리는 말씨가 어떠한가를 돌아보지 않았으며, 우리 생각을 고이 담는 말투가 어떠한가를 가누지 않았습니다.

 

 ┌ 얼음산 한조각

 │

 ├ 빙산의 일각

 └ 氷山の一角

 

 앞으로는 조금이나마 달라질 수 있을까요? "얼음산 한조각"이든 좀더 낫거나 알맞다고 느껴질 다른 말투이든, 우리 뒷사람들은 새롭고 싱그러운 우리 말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냥저냥 써 오던 그대로 쓰게 될까요? 남들도 다 그렇게 쓰는데 굳이 새롭게 써야 할 까닭이 있느냐고 생각하고 말까요? 괜한 데에 마음쓰지 말고 경제 살리기에 마음써야 할까요? 국어사전에도 버젓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실려 있으니, 잔말 말고 이대로 따르기만 해야 할까요?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이든 아니든, 이제는 우리들이 두루 쓰는 말투이니 우리 말투로 굳어졌다고 보아야 할까요? 빵꾸도 오라이도 후카시도 모두 우리 말로 뿌리내렸다고 할 수 있는 만큼. 바이바이 굿바이 땡큐 쏘리 모두 우리 말로 굳어졌다고 할 수 있는 만큼.

 

 어쩌면,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영어도 널리 쓰고 일본말도 두루 쓰며 중국말도 골고루 쓸 노릇인지 모릅니다. 올바르게 펼치는 말과 알맞춤하게 쓰는 글보다는, 세계시민이 되도록 말자랑 글치레가 되도록 마음을 쏟아야 할 노릇인지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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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0 18:29ⓒ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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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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