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 흰고무신 던지기, 이거 체육대회 맞아?

면민체육대회 현장...농촌이 늙어가고 있어요

등록 2009.04.11 18:24수정 2009.04.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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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젊은이가 없다는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정말 없습니다. 11일 경남 사천시 곤양면 '면민 체육대회'를 다녀왔습니다. 면민 체육대회는 면 행사 중에 가장 큽니다. 모든 면민이 다 함께 모여 자기 동네 명예를 위해 온 힘을 쏟습니다.

 

하지만 출전 선수들의 나이를 보면 50~60대입니다. 간혹 40대 청년(?)이 있지만 가뭄에 콩 나듯 있는 것이 주축 선수들은 50대 이상입니다. 아마 몇 년이 지나면 60~7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체육대회를 열 것입니다.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도 체육대회를 할 수 있지만 줄다리기, 이어달리기, 씨름을 하기에는 힘이 부칠 것입니다.

 

 면민 체육대회 전경
면민 체육대회 전경김동수
면민 체육대회 전경 ⓒ 김동수

 

종목을 보면 이 분들 나이를 알 수 있습니다. 씨름과 줄다리기를 빼놓고 '신발 멀리 차기' '윷놀이' '투호' 종목이 있습니다. 체육대회에 무슨 '하얀 고무신 차기' 종목이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하얀 고무신'을 5미터 앞에 있는 동그라미 안에 차 넣습니다.

 

멀리 차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동그라미 안에 정확하게 차야 합니다. 발로 하는 사격(?), 양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기에는 쉽지만 차는 분마다 동그라미를 벗어납니다. 동그라미 가장 안쪽에 하얀 고무신을 차 넣어 10점 만점을 받은 분은 없었습니다.

 

 신발 멀리 보내기 경기
신발 멀리 보내기 경기김동수
신발 멀리 보내기 경기 ⓒ 김동수

 

한 쪽에는 윷놀이가 벌어졌습니다. 윷놀이가 정말 '체육'에 포함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윷놀이를 '체육대회' 종목에 포함시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내 생각일 뿐, 윷놀이에 참가한 선수들은 열심입니다. 몸으로 하는 경기가 아니라 머리싸움이 치열한 경기입니다.

 

 윷놀이
윷놀이김동수
윷놀이 ⓒ 김동수

 

이제는 '투호' 경기장으로 갔습니다. 보기보다 어려운 것이 '투호'임을 잘 알 것입니다. 속 좁은 사람,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은 투호를 잘 할 수 없다는 말들이 오고갔습니다. 집중력과 감각이 필요한 경기입니다. 한 팀이 15개를 던졌는데 겨우 1개 들어갔습니다. 고향 동네입니다. 마음 속으로 이기기를 바랐지만 15개 중 1개 성공하는 것을 보고 내가 했다면 더 많이 넣었을 텐데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투호 경기 모습
투호 경기 모습김동수
투호 경기 모습 ⓒ 김동수

 

하얀 고무신 차기, 윷놀이, 투호는 '체육대회'라기보다는 '민속경기'에 가깝지만 씨름과 줄다리가 있어 체육대회라 불러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천하장사 부럽지 않았습니다. 샅바 싸움 때문에 잠시 경기가 중단될 정도로 씨름은 치열했습니다.

 

샅바 싸움뿐만 아니라 선수 때문에 논란도 있었습니다. 출전 선수가 워낙 부족하다보니까 본적지는 곤양면인데 주소지는 서울과 부산, 진주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면민 체육대회'인데 어떻게 곤양면이 아닌 사람이 출전할 수 있느냐는 사람, 본적이 곤양면이면 된다는 사람이 논쟁을 벌였습니다. 결국 본적과 주소가 곤양면이면 출전이 가능하다는 본부석 '유권해석'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씨름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씨름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김동수
씨름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김동수

 씨름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씨름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김동수
씨름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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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랏차차 씨름 멋진 씨름 ⓒ 김동수

▲ 으랏차차 씨름 멋진 씨름 ⓒ 김동수

 

줄다리기는 대부분 세 판 경기인데 나이가 많아 한 판으로 경기를 끝냈습니다. 한 경기를 끝낸 동네는 힘들어 다음 경기를 포기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씨름은 젊은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가능하지만 줄다리기는 남자 10명, 여자 5명으로 한 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60대 어르신도 참가하는 일이 벌어지니 힘에 부칠 수밖에 없습니다.

 

 줄다리기
줄다리기김동수
줄다리기 ⓒ 김동수

 

하지만 다들 신명났습니다. 예순 살이 넘었다고 줄다리기를 못하는 법도 없습니다. 작은 힘을 모아서 온 동네가 즐겁고 신명나게 놀면 됩니다. 종합우승을 하면 중송아지 한 마리가 상품으로 지급됩니다. 비록 황소나 차가 아니지만 송아지가 어디입니까? 50-60대 어르신들이 힘이 부치면서도 동네 명예를 위하여 하루 종일 땀을 흘린 결과 송아지 한 마리를 상품으로 받으면 부러울 것 하나 없습니다.

 

 종합우승 동네에게 주어지는 송아지 한 마리
종합우승 동네에게 주어지는 송아지 한 마리 김동수
종합우승 동네에게 주어지는 송아지 한 마리 ⓒ 김동수

 

힘에 부쳐 줄다리기를 포기하는 동네, 출전 선수가 없어 서울과 부산에서 사람을 데려와야 하는 동네, 체육대회에 윷놀이와 하얀 고무신 차기 종목이 있다는 것은 고향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늙어가는 고향,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함께 했습니다. 어울렸고, 즐거워하면서 늙어가는 고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살아있는 면민 체육대회였습니다.

2009.04.11 18:24ⓒ 2009 OhmyNews
#면민체육대회 #투호 #씨름 #줄다리기 #윷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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