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의 '자장면'과 개나리와 하늘이 잘 어울린다.
최종명
차이나타운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인천자유공원이다. 오랜만에 공원을 올라가보자. 공원 계단 옆에 정말 재미난 자장면이 보였다. 꽃 접시에 면발과 자장이 섞였으며 콩과 옥수수, 오이채와 계란이 얹혀 있고 젓가락이 살랑 담겼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토양의 자장면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도 자장면이 있는데 그 맛과 모양, 레시피가 사뭇 다른 요리로 알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또 크게 다르지도 않다. 면과 자장 그리고 야채로 혼합한다는데 특별히 다를 것이야 없다.
중국의 자장면은 사실 베이징사람들의 고유한 음식으로 데치거나 삶은 면에다 각종 야채를 섞어먹는다고 해서 데친다는 뜻으로 '작(炸, zha)'을 쓰거나 섞는다는 뜻으로 '잡(杂, za)'이란 말을 붙인다. 그런데 이 두 말의 발음이 다 '자'로 비슷하다.
물론 베이징에서만 먹는 것은 아니고 여러 지방에 독특한 맛의 자장면이 있기도 한데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로 와서 나름대로 한국적 입맛에 맞는 '한국식 자장면'을 개발한 것일 터이다. 자장면 접시 뒤로 우리 기와 벽과 우리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는 개나리가 인상적이라 잠시 앉았다.
벤치에 앉으니 간판이름들이 더 선명하게 들어온다. 연경(燕京), 만다복(萬多福), 청관(靑館), 흥화춘(興和春), 자금성(紫金城), 북경장(北京莊), 중국성(中國城) 등 한번씩 읽어본다. 그리고 이어 중국어로도 읽었다. 옌징, 완둬푸, 칭관, 싱허춘, 즈진청, 베이징좡, 중궈청. 엇비슷하지 않은가.
서로 다른 말과 글을 쓰고 있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글자를 통일한다. 지금의 한자의 고어(古語) 형태였으리라. 전국시대 7개국은 모두 서로 다른 문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라를 통일했으니 당연히 도량형, 마차나 도로 등과 함께 문자도 하나로 통일했으리라. 진(秦)이 쓰던 소전(小篆)을 '수동문(书同文)', 즉 통일문자의 기초로 삼았다. 복잡하기 그지 없는 대전(大篆)을 간략하게 만든 것으로 지금의 전서와 비슷하다. 하지만, 전서가 여전히 복잡해 다시 간단하게 바꾼 것이 지금의 예서인 진예(秦隶)라고 한다.
중앙집권을 시작한 진한(秦汉)시대를 거치며 글자는 점차 통일돼 갔지만 아무리 황제라 해도 지방의 말까지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조선 이래 삼국시대, 고려를 거치면서 우리민족이 고유하게 소통하던 말이 있었으리라. 언제부턴가 기록과 전달을 위한 문자로 한자를 쓰면서 우리 민족은 기존의 말과 중국의 한자음 사이에서 치열한 언어적 다툼을 벌렸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