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팡밭북촌사건 당시 주민들에 대한 총살이 자행되었던 곳이다. 지금은 이곳에 <순이삼촌비>가 세워져 있다.
장태욱
1979년 11월 소설집<순이 삼촌>이 출간되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럴 시대였기에 <순이삼촌>이라는 어린 생명의 출산은 산모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었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작가 현기영은 '남산'에서 모진 고초를 당해야 했다. 공안 당국은 몽둥이로 전신을 두들겨 팼고, 멍든 몸 위에 싸릿대를 후려 갈겼고 군홧발로 짓밟았다. 그리고 집시법 위반죄로 20일간 유치장에 가뒀다.
난산을 통해 태어난 작품, 순이삼촌
이듬해 광주의 5월 이후 작가는 다시 학교 수업 도중에 연행되어갔다. 경찰서 대공과에서 4박 5일 동안 수사관에게 시달리며 조서작성에 응하고 나서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 직후 <순이 삼촌>은 경찰의 요청으로 판금되었다.
당국의 모진 탄압에도 불구하고 <순이삼촌>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작품은 60만부 이상이 판매되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고, 이로 인해 할 말을 못하고 땅 속에 묻혀 있는 유골들의 한이 조금씩 세상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순이삼촌>을 통해 제주4.3의 아픔이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나오게 되는 일대 전기가 마련되었다.
<순이삼촌>은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서 벌어진 일명 '북촌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북촌사건은 1949년 1월 7일 당시 함덕에 주둔하던 2연대 3대대 군인들이 500명 가까운 북촌리 주민들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대량 학살한 사건으로, 제주4.3 당시 일어난 사건 가운데 최악의 것으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세계사에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일로 남아있다.
당시 사건은 무장대에 의해 발단되었다. 2연대 3대대 군인 일부가 시찰을 마치고 함덕으로 돌아가는 도중 무장대가 군인들을 기습하여 군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를 심각하게 여긴 마을 원로들은 죽은 군인들의 시신을 들고 함덕에 있는 대대본부로 찾아갔다. 그런데 분노한 군인들은 부대를 찾아온 마을 원로들 10명 가운데 9명을 즉석에서 총살해버렸다. 그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 군인들은 2개 소대 병력을 풀어 북촌마을을 덮쳤다.
북촌사건, 광기와 야만의 증거 군인들은 주민 모두를 초등학교에 집결시키고 마을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운동장을 에워싼 군인들은 총을 장전한 채 주민들의 도주를 차단했고, 현장에서 주민 7~8명을 즉결 사살했다. 그리고는 군경가족이나 민보단 가족을 주민들에서 분리시켰고, 이런 군인들의 조치에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