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학습 진단평가(일제고사)가 실시된 31일 오전 서울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권우성
서울시교육청(이하 교육청)은 19일 서울 초·중·고 시험 감독을 수학능력시험(수능) 수준으로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교육청이 올 1학기부터 시행하겠다고 내놓은 구체적 내용을 보면 '이게 무슨 시험감독 강화인가'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교육청에 따르면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 교내 시험에서도 감독교사 명단을 시험 당일 공개한다고 한다. 그런데 시험 감독 교사 명단을 시험 당일에 공개하는 것과 하루 전에 공개하는 것이 시험감독 강화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지금도 학생들에게 시험 감독을 공개하는 경우는 없다. 학생들은 교사가 시험지를 들고 교실에 들어오고 나서야 감독 교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한 교실에 가급적 2명 이상의 감독을 두라고 각급 학교에 주문했다. 이것 역시 거의 모든 학교에서 하고 있다. 같은 학년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학년을 서로 섞어 다른 과목 시험을 치기 때문에 한 줄 건너에 같은 학년 학생들이 앉아 있는 것이다. 듣기와 같은 과목이 있어서 부득이 같은 학년이 한 교실에 모여 있어야 하는 경우에는 지금도 감독교사가 2명씩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새로운 방식이라고 호들갑을 떨까?
교육청은 또 다른 방법으로 1개 학급을 2개 교실로 나누어 시험을 보게 하거나, 학부모 보조 감독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것 역시 내가 아는 모든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방법이다. 바쁜 학부모들에게 시험감독을 위해 학교에 와달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이미 많은 학교들에서 이렇게 하고 있다.
시험감독 강화? 이미 다 그렇게 하고 있다아울러 교육청은 과목별 교과협의회를 1년에 4차례 이상 열 것을 권고했다. 과목별 교과 협의회를 1년에 4번 안 하는 학교는 내가 아는 학교 중엔 단 한 곳도 없다. 시험 문제 역시 같은 학년에 들어가는 교사들이 공동 출제하는 것이 원칙이며, 시험 결과에 대한 채점 역시 교차 채점을 통하여 2번, 3번 채점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보면, 교육청이 내놓은 이 '시험감독 강화방안'은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가끔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되거나 출제문제에 오류가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부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험 감독을 강화하고, 교사들은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번 교육청의 시험감독 강화책 발표는 어딘지 생뚱 맞다.
교육청은 '내신 성적을 둘러싼 비리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이번 방안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이런 인식 자체가 내신 성적과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이들의 인식에 따라 해석해보면 학교 내신을 믿을 수 없는 이유는,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많이 하고 교사들이 문제를 엉터리로 내거나 채점을 엉터리로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모든 교사와 학생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학교 내신을 자기 성적을 확인하고 개선점을 찾기 위한 피드백 자료로 쓰는 것이 아니라 등수 매기기로 인한 서열화 자료로 활용하는 천박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아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