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잠재적 범죄자 만드는 서울교육청

[주장] 시험감독강화 방안, 새로울 것 없는 '헛발질' 정책

등록 2009.04.20 20:22수정 2009.04.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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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학습 진단평가(일제고사)가 실시된 31일 오전 서울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교과학습 진단평가(일제고사)가 실시된 31일 오전 서울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권우성

서울시교육청(이하 교육청)은 19일 서울 초·중·고 시험 감독을 수학능력시험(수능) 수준으로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교육청이 올 1학기부터 시행하겠다고 내놓은 구체적 내용을 보면 '이게 무슨 시험감독 강화인가'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교육청에 따르면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 교내 시험에서도 감독교사 명단을 시험 당일 공개한다고 한다. 그런데 시험 감독 교사 명단을 시험 당일에 공개하는 것과 하루 전에 공개하는 것이 시험감독 강화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지금도 학생들에게 시험 감독을 공개하는 경우는 없다. 학생들은 교사가 시험지를 들고 교실에 들어오고 나서야 감독 교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한 교실에 가급적 2명 이상의 감독을 두라고 각급 학교에 주문했다. 이것 역시 거의 모든 학교에서 하고 있다. 같은 학년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학년을 서로 섞어 다른 과목 시험을 치기 때문에 한 줄 건너에 같은 학년 학생들이 앉아 있는 것이다. 듣기와 같은 과목이 있어서 부득이 같은 학년이 한 교실에 모여 있어야 하는 경우에는 지금도 감독교사가 2명씩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새로운 방식이라고 호들갑을 떨까?

교육청은 또 다른 방법으로 1개 학급을 2개 교실로 나누어 시험을 보게 하거나, 학부모 보조 감독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것 역시 내가 아는 모든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방법이다. 바쁜 학부모들에게 시험감독을 위해 학교에 와달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이미 많은 학교들에서 이렇게 하고 있다.

시험감독 강화? 이미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아울러 교육청은 과목별 교과협의회를 1년에 4차례 이상 열 것을 권고했다. 과목별 교과 협의회를 1년에 4번 안 하는 학교는 내가 아는 학교 중엔 단 한 곳도 없다. 시험 문제 역시 같은 학년에 들어가는 교사들이 공동 출제하는 것이 원칙이며, 시험 결과에 대한 채점 역시 교차 채점을 통하여 2번, 3번 채점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보면, 교육청이 내놓은 이 '시험감독 강화방안'은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가끔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되거나 출제문제에 오류가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부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험 감독을 강화하고, 교사들은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번 교육청의 시험감독 강화책 발표는 어딘지 생뚱 맞다.


교육청은 '내신 성적을 둘러싼 비리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이번 방안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이런 인식 자체가 내신 성적과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이들의 인식에 따라 해석해보면 학교 내신을 믿을 수 없는 이유는,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많이 하고 교사들이 문제를 엉터리로 내거나 채점을 엉터리로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모든 교사와 학생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학교 내신을 자기 성적을 확인하고 개선점을 찾기 위한 피드백 자료로 쓰는 것이 아니라 등수 매기기로 인한 서열화 자료로 활용하는 천박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아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지 마라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권우성

그리고 이번 발표가 일제고사 성적 조작과 오류로 인한 재채점 파문에 곧이어 나온 것이라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한다. 왜 이 시점에, 이미 거의 다 그렇게 시행하고 있어서 별로 새로운 내용도 없는 것을 호들갑스럽게 발표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보도된 바처럼 서울교육청은 사교육천국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지만,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수능 성적 공개에서도 별로 성적이 높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교육청은 은연중에 이를 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의 문제로 돌리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해서 학교 내신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이런 발표를 통하여 자신들의 책임을 벗어버리고 학교와 학생, 교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상대적으로 감독이 철저하고 오류가 적은 수능을 치켜세우기 위한 의도로도 읽힌다.

시험 감독 교사는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감시도 해야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시험을 잘 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듣기 방송은 제대로 나왔는지, 시험지 인쇄는 잘 되었는지, 답안지가 모자라지는 않는지, 그리고 시험에 불편한 사항은 없는지를 체크해서 이를 해결해 주는 것이 시험 감독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임무다.

축구에서 감독은 선수들이 더 잘 뛸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듯,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교육청이 내놓은 '시험 감독 강화 방안'은 자칫 모든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이 심각하게 시험 부정행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해 학생과 교사들 사이 불신만 더 일으킬 수 있다.

무시험 감독 학교를 꿈꾸는 건 불가능할까

언젠가 핀란드 한 학교에서 시험 답안지를 내는 학생에게 선생님이 '답이 틀렸다, 다시 풀어봐'라고 힌트를 주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충격은 그렇게 하는데도 어느 학생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지금같이 팍팍한 상황에서 아직도 서울의 몇몇 학교들은 무시험 감독을 하고 있다. 이 학교 교사들은 시험지와 답안지만 갖다 주고 혹시 문제점이 없는지만 확인하고 교실을 나온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학생들이 자기들끼리만 시험을 치는데도 부정행위가 일어나거나 재시험을 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무엇이 교육인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부정행위 하여 10점을 올리는 것보다 정직하게 노력해서 1점을 올리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훨씬 이로운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게 진짜 교육이다. "모르는 것 부정행위 하여 맞추는 것보다 틀린 후 찾아보고 알게 되는 것이 진짜 시험을 목적"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배우게 하는 게 진짜 학교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시험 감독 강화보다 무시험 감독 학교를 꿈꾼다. 이게 불가능할까?
#서울교육청 #시험감독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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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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