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있는 ㅈ대학교 사진학과 ㅂ교수님과 낮밥 약속이 있어 자전거를 타고 찾아갑니다. 사진학과 교수님은 도서관장 일도 맡고 있어 본관에서 뵙기로 했기에, 본관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어디에다 잠가 놓으면 좋을지를 헤아립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ㅂ교수님한테 손전화를 거는데, 학교문에서 지켜서는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거, 어디 가려고 왔어요?" 하고 묻습니다. 뻔히 이 대학교에 볼일이 있어서 온 사람보고 이렇게 묻다니, 아마 제가 양복을 차려입고 까만 자가용을 끌고 왔다면 이런 말투나 말이 나오지 않았겠다고 느낍니다. "여기(ㅈ대학교) 왔어요" 하고 짧게 끊습니다. 그러니 더 묻지 않습니다. 차 댄 자리 끄트머리에 자전거를 댈까 하다가, 사람들 눈에 잘 뜨이는 자리가 도둑 안 맞는 자리임을 생각하며, 본관 들머리 옆으로 길게 나무를 심어 놓은 한켠에 자전거를 묶습니다. 이리로는 걸어다닐 사람이 없어 걸리적거리지 않고, 저로서도 볼일 마치고 나오면 곧바로 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문 지킴이는 다시 다가와 "자전거 거기 세우면 안 돼요" 하고 가로막습니다.
"여기 세우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거기 세우면 안 돼요. 거기 세우면 다른 사람도 오토바이 거기다 세워 놔." "여긴 사람들 다니지 않는 자리인데 여기 세우면 안 될 까닭이 있습니까?" "안 되니까 저기 구석으로 갖다 놔요."
방송국에 가도 신문사에 가도, 또 어느 건물에 볼일을 보러 가도, 건물 지킴이는 자전거꾼한테 푸대접입니다. 때때로 반말을 놓기도 하고 멱살잡이라도 할 듯 우락부락거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워낙 자주 겪어 보았고, 어느 규칙이나 교칙이나 회칙에도 '건물 앞 빈터에 자전거 세우지 말라'는 말이 적혀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 터라, "이거 손대지 마세요. 손대면 신고합니다." 한 마디로 으름장을 놓고 건물로 들어갑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한테 으름장을 놓아야 하니 마음 한켠이 켕기지만, 자전거꾼 권리를 생각한다면 물러설 수 없게 됩니다. 전철을 탈 때에도 이런 일이 흔한데, 나이를 제법 잡수신 분들은 자전거꾼을 밉보거나 뱀눈으로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이 가난한 마음자리를 느낄 때마다, 왜 이분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얕은 우물에 가두려고 하는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마땅히 타니까, 자전거 세울 자리가 마땅히 있어야 하는데, 자동차 세울 자리는 있어도 자전거 세울 자리란 없습니다. 그러면 자전거를 걱정없이 알뜰히 세워 놓을 자리를 찾아볼 노릇이건만, '비싼돈 들여 멋들어지게 지은 건물 옆에 자전거가 비죽이 서 있으면 보기 나쁘다'는 말로 자전거를 못살게 굽니다.
.. 어머니 목소리가 바뀌는가 싶더니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젤 불쌍항 기 너라. 묵을 끼 남아 있어도 묵으락꼬 안 카믄 묵을 줄도 모르고, 형들 안 묵었닥꼬 냉가두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어머니의 누르스름한 조끼를 입었다. 등짝이 넓적한 게 보기 좋다며 어머님이 내 등을 쓸어내리며 좋아하셨다. "내가 죽더라도 이거는 태우지 말고 니가 입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누가 머락카믄 그래야. 우리 어무이 생각나서 어무이 옷 입는닥꼬." .. (224∼225쪽)
퍽 예전 일인데, 아버지가 모는 차를 얻어타고 아버지 살던 동네를 달린 적이 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이었음에도, 길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인라인을 타거나 걸어서 집으로 가는 아이들 앞에서 빵빵거리며 욕을 몇 마디 하시곤 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 교사 된 아버지가 이렇게 하실 수 있나 뒷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라, "아버지, 조금 기다렸다가 가도 되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빵빵거리면 놀라잖아요?" 하고 여쭙는데,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날은 더 빵빵거리지 않으시지만, 다음에 또 얻어탈 때 보면 또 그 빵빵거림을 그치지 않으십니다.
어쩌면, 자동차를 몰게 되는 분들은 교육자이건 아니건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길에서 차 앞에서 얼쩡거리는 무엇'이라도 있으면 짜증스러워서 이내 빵빵질을 하게 되지 않느냐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차를 몰 때만이 아니라, 여느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습니다.
.. 돌아오는 길에 봉투랑 선물들을 가리키며 내가 "우리 어머니 부자가 되셨다"고 부러워하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날라 댕긴다 칸들 누가 나보고 이런 걸 주건노. 다 니 얼굴 보고 중기지." 공덕을 나에게 돌리고 사리를 분별하시는 어머니 모습은 아침과 비교하면 거짓말 같았다. 절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이 한결같이 어머니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고 음식뿐 아니라 마실 물까지 챙겨다 주며 곁에 와서 일부러 말을 걸면서 정성을 다해 받들어 모시는 것에 어머니의 긴장과 경계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정성스런 모심'이 백 가지 약보다 나았다 .. (84쪽)
자전거한테 빵빵거리는 자동차, 건물 벽에 자전거를 바짝 붙인다고 하여도 '건물 보기 흉해진다'며 손사래치며 자전거를 발로 툭툭 차는 늙수그레한 건물 지킴이들한테 때때로 묻고 싶어지곤 합니다. 아니, 앞으로는 물어 볼 생각입니다. 늙어 허리 굽은 할매 할배가 엉금엉금 기듯 길을 걸어간다고 할 때에도 그처럼 빵빵거리거나 얼른 비키라고 소리를 치실는지를. 당신님들은 앞으로 조금만 더 있으면 저 할매 할배와 같은 나이가 될 텐데, 그때 당신님들한테도 그렇게 못살게 굴면 느낌이 어떠하실는지를.
힘여린 이를 아낄 줄 알고, 힘없는 이를 보듬을 줄 알며, 힘앗긴 이를 사랑할 줄 알아야 참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자전거를 아끼고 어린이를 보듬으며 할매 할배를 사랑할 줄 알아야 비로소 우리들은 바른 사람으로 우뚝 서면서 이 땅 이 겨레와 어깨동무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 계남면에서 장수읍으로 넘어가는 국도를 따라 '에프티에이FTA 결사반대'라는 장수군 농민회의 노란 깃발이 죽 꽂혀 있는 걸 보셨다. "저거는 먹꼬? 새 쫓을락꼬 꼬자 난나?"라고 하셔서 글자를 읽어 보라고 했더니 바람에 펄럭거려서 잘 못 읽으신다. 읽는다 해도 영어를 모르니 '결사반대'만 읽으셨을 것이다. 노인들만 있고 문맹자도 만만찮은 시골길에 농민회에서 만든 영어로 쓰인 'FTA'라는 남의 나라 말 깃발이 참 낯설어 보였다 .. (81쪽)
자전거를 타고 골목마실을 하다가 곧잘 큰 찻길로 접어들어 달리다 보면 거슬러 달리는 할배 자전거를 드문드문 마주칩니다. 무척 아슬아슬한 노릇인데, 할배 자전거가 '역주행'을 몰라서 이리 하실 수 있는 한편, 지난날에는 역주행이고 순주행이고 없이 '길에서는 자전거가 가고픈 대로 달렸다'는 생각으로 그리 달리시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날이라고 해 보아야, 인천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신호등이 놓인 때는 고작 마흔 해밖에 안 되었으며, 마흔 해 앞서 신호등이 놓였을 때에도 북적이는 곳에 한두 곳만 놓였을 뿐, 어디에서도 신호등이란 없이 사람과 자전거가 마음껏 오갔습니다. 이런 지난날 삶자락이 몸에 밴 할배 자전거는 찻길에서 스스럼없이 '거슬러 달리기'를 하십니다. 그래, 이런 할배 자전거질을 몰랐을 때에는 "할아버지! 그렇게 달리면 위험해요!" 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이제는 소리를 치지 않습니다. 뒷거울로 뒤에 차가 있는가 살피며, 제가 찻길 안쪽으로 더 들어가며 할배 자전거가 느긋하게 지나가도록 뒷차를 막아서 빠르기를 늦추도록 하고 왼손을 들어 줍니다.
.. "어무이, 오줌 눌 때 안 됐어요? 오줌 좀 누러 가입시다." "오줌? 여따 눠 삐리지 뭐." "예?" "불도 따끈따끈해서 싸도 잘 마르겠네, 하하하하." "안 돼요. 여따 누면 안 돼요! 옷 빨기 힘들어요!" "옷 빨드래도 내가 빠나 니가 빨지!" .. (59쪽)
할배들한테, 또 아이들한테, 자전거를 걱정없이 몸 튼튼히 지키며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분들이 '자동차한테서 당신들 몸을 지키는' 자전거질만 가르칠 노릇이 아니라, 자동차 모는 사람이 먼저 '자전거 타는 사람'을 눈여겨볼 줄 알도록 가르쳐야 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운전면허증을 줄 때에는 길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한테 어떻게 얼마나 마음쓸 줄 아는가를 돌아보면서 주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골목을 걷는 할배 할매와 어린이 앞에서 어떻게 차를 모느냐를 꼼꼼히 살피고 나서야 면허를 주든 말든 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어르신을 모실 줄 알자면 어린이를 받들 줄 알아야 하고, 어린이를 받들 줄 알자면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한테는 우리 스스로 사람됨을 잃어 가는 가르침과 사람됨을 내다버리는 돈벌이만 판치고 있지 않느냐 느낍니다.
(2) 골목길 할매와 할배
ㅈ대학교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자전거머리를 돌립니다. 집으로 돌아가 할 일이 산더미같고, 어제부터 몸살이 돌아 얼른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지만, 오늘처럼 볕이 좋을 때 골목마실을 안 하면 두고두고 안타까워 하리라 생각하면서 버티어 보기로 합니다.
마침 오늘은 바람이 거세게 불어 으슬으슬 추운 몸은 더 고단합니다. 그러나 송림4동을 거쳐 도화3동 골목집 사이사이를 도는 동안, 마음이 활짝 펴고 눈이 맑게 뜨입니다.
틀림없이 이 동네는 말끔하게(?) 밀려 아파트가 될 곳인데, 곧장 내일부터 아파트로 바뀌게 된다 하여도, 이 골목길 사람들은 '헐리고 비어 버린 집터'를 치우고 흙을 고르고 땅을 일구어 텃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야말로 곳곳에, 사람 오가는 길자리를 뺀 모든 '빈 집터'가 골목밭이 되어 있습니다.
.. "나 같은 거는 사람도 아잉기 농띠처럼 죽지도 않고 니 짐떵어리다, 니 짐떵어리." "너 없을 때 내가 그만 칵 죽어 삐리야 이도 저도 안 보고 내가 눈을 감아야 안 보지." "나 땜시 니가 딴 살림 함스로 두벌 고생하는 거 내가 눈을 감아야 안 보지." 자식이 집에서 부모 모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시간이 남아돌 때 하는 것도 아니요, 할 일이 없을 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려도 통하지 않았다. 물론 어머니가 정신을 놓고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본정신일 때 자식 보기 미안하고 똥오줌 범벅인 이부자리가 창피해서 하는 면피용 발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저런 극단의 말씀을 하시는 순간의 심정은 어머니 건강에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어무이, 어무이가 나 어릴 때 기저귀 갈아 채우고 똥걸레 다 빨아 주고 했잖아요. 그것도 몇 년 동안을 그랬잖아요. 제가 이제 그거 어머니한테 갚아 드리는 거예요. 저는 괜찮아요." "애 키울 때는 다 그라지. 앙 그라는 사람 누가 있노." "마찬가지죠, 어머니. 자기 어머니가 나이 잡숫고 몸 아프면 자식이 다 그라능기라요. 오줌 누믄 옷 갈아입히고 똥 묻으믄 빨아드리고요." "요새 세상에 그라는 사람이 오대 있노. 지 밥 묵끼도 바쁜데." "아이 차암, 옷에 똥오줌 누시는 사람보다 그거 빨 수 있는 사람이 몇 배 행복한 거예요. 저 아무리 고생한닥캐도 어머니하고 안 바꿔요, 절대." .. (210∼211쪽)
길그림책에는 '도화3동 20번지'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제 눈앞에 펼쳐진 도화3동 20번지는 딱 한 집만 남고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저는 도화1동에서 태어났으니 도화3동하고는 그리 애틋한 느낌이 없다 할 수 있지만, 제가 태어난 바로 이웃 동네인 까닭에 한참 동안 바람을 맞으며 빈 들녘 아닌 허물어 쓸려나간 집자리에 멀뚱멀뚱 섭니다.
아직 가까스로 살아남은 나무전봇대를 쓰다듬습니다. 도화3동 나무전봇대까지 하면, 인천 옛 도심지에서 송림1동과 내동과 중앙로2가까지 해서 저로서는 네 번째로 찾아낸 나무전봇대입니다. 조금 거닐다 보니 송림4동에 나무전봇대가 두 군데 더 남아 있습니다. 하루 사이에 나무전봇대를 세 군데나 보게 됩니다.
나무전봇대 살아남은 둘레로도 어김없이 텃밭이 일구어져 있습니다. 고추를 심고 푸성귀를 심었으며, 아직 싹이 돋지 않아 무슨 씨를 심었는지 모를 밭이랑이 그득그득 보입니다.
빈 집자리에 동그랗게 꽃밭을 일구기도 합니다. 버려진 꽃그릇에 한 포기씩 심긴 고추줄기가 싱그럽습니다. 그 위로 다닥다닥 붙은 빨래집게와 빨래줄을 바라보면서, 당신님들 마지막 삶자락 이곳에서 밀려나게 될 마지막 그때까지 '나무 심는 사람'처럼 '골목길 텃밭 일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들 손길을 가슴 찡하게 느낍니다.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바지런히 담으며, 송림4동과 도화3동 둘레에서 대학생으로 배우는 이들이 이 삶터를 꾸밈없이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무엇인가 가슴에 고이 껴안는다면 얼마나 반가우랴 생각합니다.
..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뒤로 밀렸다. 거추장스런 짐덩어리가 되었다. 5월 8일 어버이날은 가슴에 그 잘난 카네이션 한 송이가 대롱거리다 만다. 명절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든여섯의 몸 불편한 어머니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 장례식장에서 울컥울컥 울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실 때 잔치를 하고 싶었다 … 면사무소에 가도 그렇고 병원에 가도 그렇다.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간병인도 그렇고 하물며 우체부 아저씨도 그랬다. 여든여섯인 우리 어머니에게 쉽게 반말을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 어디가 아픈데?" "이거 아니야. 할머니, 주머니 다시 찾아봐요. 다른 도장 없어?" 나이 잡수시고 몸 어딘가가 불편한 노인을 대하는 건강한 사람들의 태도는 단순한 무시를 넘어서 무례에 가까운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호호백발 할아버지 환자에게 반말을 하던 어느 대학병원 간호사는 "친근하게 하느라고 그런다"며 자기들의 반말을 변명했다. "아, 그래? 반말하니까 할아버지도 친근해서 좋다고 그러더냐?" 내가 바로 받아쳤더니 그 간호사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 (150∼151, 155∼156쪽)
곳곳이 허물린 집이라 어찌 보면 으스스한 동네이지만, 길바닥에 자잘한 쓰레기 나뒹굴지 않습니다. 집마다 문간에 쓰레받이와 빗자루가 놓여 있는데, 여느 사람들이 안 보는 때에 골목집 할매와 할배는 부지런히 쓸고 치우고 하셨을 테지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당신 스스로 당신 집을 사랑하고 당신 동네를 아끼는 마음으로.
저잣거리 길바닥장사라도 할 기운마저 남아 있지 않을 듯 구부정한 할매와 할배가 곡괭이를 들고 빈 집자리 돌을 고른다든지, 호미와 괭이로 밭을 일군다든지, 그러면서 푸성귀 몇 손을 거두어들인다든지 하는 모습이란 바로 당신님들 스스로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을 당신님들 딸아들한테 기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당신님 마지막 삶을 알차고 싱싱하게 꾸릴 수 있음을 갖은 몸뚱이로 드러내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 그동안 내가 읽어 온 책들은 좀 건조했다. 《노년기 정신장애》는 치매 중에서도 혈관성치매인 뇌졸증이나 우울증 같은 증상에 대해서는 도움이 될 책이다. 그러나 노년기의 심리변화나 노년기 적응의 과제 등은 너무 도식적이었다. 책 구성이 논문처럼 딱딱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없고 '노인기계'를 관리하고 보수하는 실용서 같았다는 말이다 .. (102쪽)
햇볕에 빨래를 말립니다. 길가 빨랫줄에 빨래를 넙니다. 오가는 이웃이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집마다 문간에 마련한 걸상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지만, 오늘은 바람이 너무 세니 걸상은 모두 비어 있습니다.
이제 이곳 이 골목이 죄 사라질 판이 되자, 민속학을 한다느니 국문학을 한다느니 지역학을 한다느니 건축학을 한다느니 사진을 찍는다드니 하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할매와 할배한테 '이 동네에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며 부산을 떨곤 합니다. 주말이 되면 인천 골목길은 서울 둘레에서 사진 찍으러 나들이 오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합니다. 다만, 인천역 차이나타운과 배다리 헌책방골목 언저리와 북성포구 둘레에서 맴돌 뿐이지만, 어찌 보면 '사라지거나 없어질 즈음' 되니 뒤늦게나마 한 장쯤이라도 건져 보려고 찾아드는 사람으로 어수선합니다.
할매와 할배는 난데없이 모델이 되고 뜬금없이 무대 앞으로 나오게 됩니다. 할매 이름과 할배 이름을 여쭈던 젊은이가 없었는데, 이제는 할매 나이가 얼마이며 할배 이름이 무엇인가를 여쭈는 젊은이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고작 한두 번 찾아와서 듣고는 끝입니다. 할매 할배 스스로 오래도록 풀어내는 긴 나날을 듣기보다는, 곶감 빼먹듯 알짜가 될 법한 몇 마디만 얼른 듣고 서울로 돌아가려는 몸짓들입니다.
.. 어머니한테 다가갔다. 똥이 발에 밟혔다.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는 어머니 얼굴이 반쪽이었고 훨씬 굵어진 주름들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어머니 곁에서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어머니 눈은 겁을 머금고 있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겁먹은 눈초리. 그것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어머니 어깨를 감싸고 꼭 안았다. 울컥하고 울음이 솟았다. 어머니가 천천히 돌아앉으며 내 팔을 잡았는데 미끈거리는 똥의 감촉이 전해져 왔다. 어머니 얼굴에 볼을 대고 속삭였다. "어무이 똥재이."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우스웠다. 그래서 웃었다. 그러자 눈물이 볼을 타고 굴러 내렸다. "어무이 똥박사∼" 소리를 높여 말하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알아들었나 보다. 어머니 굳어 있던 얼굴이 풀렸다. 어머니도 내 웃음에 감염되었는지 따라 웃었다. "어무이 똥대장∼" 다시 소리쳤다. 우리는 서로 똥 묻은 상대를 손가락질해 가며 마구 웃었다. 불을 환히 밝히고 보니 여기저기 발린 똥덩이들이 몇 년 잘 묵은 된장 같았다 .. (49쪽)
골목마실을 하면서 옆지기와 아기를 생각합니다. 골목마실을 하는 동안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우리 옆지기와 아기가 우리 삶터인 골목길을 몸으로 마지막으로 부대낄 요 몇 해를 생각합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와 형을 낳아 길렀을 그 옛날 이 골목길 자취를 떠올립니다.
할매 할배와 저하고는 아무런 사이가 아닐지 모르나, 어쩌면 이웃 사이였을는지 모릅니다. 골목마실을 하며 할매 할배한테 고개숙여 인사를 하기는 하지만 일부러 말을 섞지 않습니다. 저절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나눌 뿐입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제가 이 동네에서 태어났을 때 이쁜 아기가 태어났다며 기뻐해 주었을는지 모르고, 제가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졌을 때 '저런!' 하면서 일으켜세우고 빨간약을 발라 주었을는지 모릅니다.
한 목숨은 늙어 쭈그렁뱅이가 되었습니다. 한 목숨은 아기에서 '아기 낳아 기르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3) <똥꽃>이라고 하는 이야기책은
시골에서 농사짓는 전희식님이 농사짓는 이야기가 아닌 어머니 돌보는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냅니다. 아니, 어머니를 돌보는 이야기라기보다,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라 해야 옳겠구나 싶습니다. 늙어서 죽을 날을 코앞에 둔 어머니 똥오줌을 치우고 밥해 먹이고 '좋은 데' 찾아 함께 놀러 다니는 이야기라고 해야 맞겠구나 싶습니다.
.. 어머니를 보면서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다. 노인이 되면서 정신을 살짝 놓은 덕분에 저렇게 남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자식 흉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것이다. 맨정신이라면 저럴 수 없을 것이다. 분노는 더욱 내면화되고 화석처럼 굳어져 병을 키울 것이다 .. (138쪽)
전희식님은 당신이 어린 날 어머니가 당신 똥오줌을 치워 주고 먹이고 키웠기 때문에 어머니를 모시지 않습니다. 전희식 님 또한 늙은 할배가 될 줄을 알고 어머니를 보듬지 않습니다.
그저 똑같은 한 목숨으로서 어머니를 사랑할 뿐입니다. 어디 먼 데에서 나누는 사랑이 아닌, 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할 사랑이 무엇인가를 느꼈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살아갈 뿐입니다.
.. "빼뿌재이 나왔네. 저거 생주리 해 묵어도 좋고 삶아서 된장 끓여 묵어도 된다." "이거 질경인데요?" "빼뿌재이라. 내가 빼뿌쟁이도 모륵까이!" 이 외에도 '나시래이(냉이)'나 '질금다지(빌금다지)' 등의 봄나물 이름도 익혀 나갔다. 어머니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자신 있는 것은 도시의 세련된 집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각종 전기제품과 거기에 딸린 리모컨들은 귀신 붙은 방망이였고, 가스레인지나 진공청소기, 믹스기도 만지기가 무서웠다 .. (70쪽)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나날이 새로움을 봅니다. 날마다 새로움을 배웁니다. 그리고 늙은 어머니도 젊은 아들한테 새로운 모습을 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배웁니다. 서로서로 새 세상을 보고, 서로서로 새 날을 맞이합니다. 저마다 눈물과 웃음이 범벅이 되는 하루를 맞이하고, 같이 얼싸안으면서 시골살림을 꾸립니다.
.. 아이들도 어른 한 사람 몫을 톡톡히 해낼 수 있는 것이 시골일이고 생태 집짓기다. 도시일과 달리 힘이 세건 신체조건이 열악하건 다 조건에 합당한 일거리가 있는 게 시골일이다. 그래서 누구도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자부심과 어른들의 뿌듯함은 최대치가 된다 … 자다가 오줌 누러 가려면 총총한 별도 봐야 하고, 얼어붙는 겨울바람도 쐬야 한다. 손빨래를 하면서 빨랫감 하나하나에 얽힌 내력들을 되새겨 보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이 된다 …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목표 중심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짓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버려진 것들을 주워 모아서 다시 되살려내겠다는 원칙이다 … 일을 서두르거나 일정을 빠듯하게 세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이 일이다. 기다려야 하고 느긋해야 한다 … 귀도 멀고 똥오줌도 잘 못 가리는 어머니가 계실 곳은 결코 서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더구나 사시사철 두 평 남짓한 방에서만 지내면서 밥도 받아먹고 똥오줌도 방에서 해결하는 것은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편할지 모르지만, 여든여섯 노쇠한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가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 드리고 바위와 나무, 비나 눈, 구름도 보여 드리려고 한다. 어머니가 철따라 피고 지는 꽃도 보시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곡의 바람결도 느끼시고 크고 작은 산새들이 처마 밑까지 와서 노닥거리는 것도 보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 (24∼25, 32쪽)
섣부른 목소리로 '늙은 어버이 모시자'고 외치는 <똥꽃>이 아닙니다. 늙은 어버이 똥은 꽃과 같다고 내세우려는 <똥꽃>이 아닙니다. 억지스러운 아름다움을 빚어내려는 <똥꽃>이 아니요, 못난쟁이는 못난쟁이대로 즐겁다는 이야기를 값싸게 팔아치우려는 <똥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저마다 참살길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선 자리에서 찾아내기를 바라는 <똥꽃>입니다. 내 몸과 마찬가지로 내 이웃 몸과 내 식구들 몸과 내 동무들 몸을 사랑할 슬기로운 길을 찾자는 <똥꽃>입니다. 낮은 목소리도 아니요 높은 목소리도 아닌 <똥꽃>입니다. 어울리는 삶, 땅에 발을 디딘 삶, 하늘을 우러를 줄 아는 삶을 조곤조곤 나누어 보고픈 <똥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9.04.22 20:50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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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꽃 -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전희식.김정임 지음,
그물코,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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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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