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9.04.24 09:06수정 2009.04.24 09:06
'데뷔작'이라고 하면 뭔가 어색한 것이 있다. 치기 어린 감정 같은 것도 있다고 할까? 뒤돌아 생각해보면, 확실히 데뷔작다운 어설픈 것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최근에 추리소설 부문에서 스타작가들의 데뷔작이 연달아 소개됐는데 그 수준이 남다르다.
<살인자들의 섬> <미스틱 리버> 등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데니스 루헤인의 데뷔작 <전쟁 전 한 잔>이나 <폐허>로 작년 한해 큰 인기를 얻었던 스콧 스미스의 <심플 플랜>을 보면 확실히 그것을 알 수 있다.
▲<전쟁 전 한 잔>겉표지황금가지
▲ <전쟁 전 한 잔>겉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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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루헤인의 데뷔작은 사립탐정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는 몇 작품이 소개돼 국내에서도 잘 알려졌는데 정작 첫 작품이 이제야 출간됐다. <전쟁 전 한 잔>은 켄지가 유력 정치인들의 은밀한 의뢰를 받아들이면서 시작한다. 의뢰란 간단했다. 중요한 서류를 갖고 사라진 청소부, 흑인 여성 제나를 찾으라는 것이었다.
켄지는 매력적인 파트너 제나로와 함께 조사를 하던 중에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된다. 갱단 또한 제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혹시 정치인들이 켄지를 믿지 못해 갱단에게도 의뢰를 한 것일까? 켄지는 특유의 수사력으로 갱단보다 먼저 제나를 찾는데 여기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제나가 훔친 서류가 정치인과 갱단을 '파멸'시킬 수도 있을 만큼 묵직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켄지가 제나를 찾았다고 보고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제나는 곧 '제거'당할 것이었다. 켄지는 그것을 알고 제나에게 기회를 준다. 제나 또한 켄지를 믿고 중요한 서류를 건네 도움을 청하려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켄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뢰가 끝났으니 돈을 받고 사라지면 되는 걸까?
그러기에 켄지의 양심은 살아있었다. 제나가 죽었어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사를 계속해간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허울 아래 가려진, 인종차별과 아동 학대 등의 범죄가 점철된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전쟁 전 한 잔>은 줄거리에서 드러났듯 미국의 어두운 면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켄지는 이것들을 어떻게 뚫고 나갈까? 데니스 루헤인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정교한 구성 아래 갖가지 장치들로 스릴감을 조성하면서, 때로는 막무가내처럼 때로는 인간적으로 '악'을 무찌르는 사립탐정으로 정면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통쾌하다고 해야 할까? <전쟁 전 한 잔>은 어떤 '카타르시스'같은 것을 만들어준다. 스릴감 넘치는 '대결' 이 만들어낸 값진 포상인데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그 강도가 세다.
<전쟁 전 한 잔>만큼이나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은 <심플 플랜>도 마찬가지다. <심플 플랜>은 3명의 남자가 숲에 추락한 경비행기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비행기 안에는 시체와 돈 가방이 있었다. 현금으로 무려 440만 달러가 발견된 것이다. 그들은 어찌 할 것인가? 신고해야 한다는 의견과 돈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한다.
그러다가 결국 합의를 본다. 돈을 갖기로 하되, 잠잠해질 때까지 쓰지 말자는 것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돈을 바로 태우자는 약속도 있었다. 간단한 계획인 것 같았다. 눈앞에 나타난 행운에 감사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안다. 특히 돈을 보관하기로 한 주인공 행크는 절실히 깨닫는다. 그 돈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심플 플랜>은 고도의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스콧 스미스는 서로가 서로를 배신할까봐 신경 쓰면서 견제하는, 돈을 지키기 위해 관련 없는 사람까지 죽일 정도로 '악마'화되고 그것에 별다른 죄책감 느끼지 못하는 그들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렸다. 단순히 생생하기만 한가? 아니다. 그것이 펼쳐내는 압권이다. 데뷔작이 아니라 대표작이라고 해도 믿겨질 정도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전쟁 전 한 잔>과 <심플 플랜>에 어울리는 말이다. 데뷔작이라고 해서 만만히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 물론 그렇게 다쳐도 기분은 좋겠지만 말이다.
2009.04.24 09:06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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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 한 잔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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