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준산맥을 거스르며 차마고도는 마치 인체의 모세혈관처럼 모든 곳을 연결한다.
변훈석
옛길 위의 현대판 차마고도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대륙과 유럽을 연결하는 고대 무역로 '실크로드'위에 묻어있는 다양한 문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강렬히 우리를 유혹해왔다. 그 유혹을 뛰어넘어 다크호스처럼 부상하며 중국여행의 키워드로 자리잡은 '차마고도'속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사실 차마고도란 지도상에 하나의 줄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인체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모세혈관 같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티베트 고원의 험준산맥과 협곡사이로 마을과 마을이 연결되는 실핏줄 같은 고원지대의 모든 길이 차마고도이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만한 협곡속 절벽길.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며 굽이굽이 높은 산을
넘다들던 그 길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어왔다. 시대의 흐름과 교통의 발달로 도로가 건설되며 자연스레 그 길위론 야크와 노새가 아닌 대형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달리게 되며 역사의 한 페이지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로 곳곳엔 시간과 그 길을 지난 이들의 거친 호흡소리가 묻어있는 옛 길의 흔적이 남아있고, 아직 현대문명의 바람이 험준협곡에 막힌 오지마을엔 예전처럼의 큰 규모는 아니지만 마을의 물자 수송이나 소규모 무역을 위해 이동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윈난(云南)성의 수도인 쿤밍(昆明)을 출발한 비행기는 구름위를 잠시 날더니 어느새 착륙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쿤밍에서 불과 500여Km 떨어져 있지만 차로는 8시간이나 달려서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는 고원위의 땅에 불과 40여 분만에 쉽사리 데려다 준다.
800년의 역사를 가진 과거 티베트와 통하던 차마고도(茶马古道)의 주요한 요충지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자 나시족(纳西族)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윈난성의 간판 관광도시 답게 고성내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지만 고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완구로(万古楼)엔 북적거림도 요란함도 없는 아즈늑한 고성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리장을 찾을 때마다. 확트인 전경속 수많은 기왓장처럼 저 속에 묻혀있을 수많은 사연들을 상상해보며 이번 차마고도 여행을 시작한다.
샹그릴라(香格里拉)를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이동한다. 새까만 매연을 내뿜으며 곧 멈춰 버릴 것 같은 고물차량으로 그 길을 지났던 3년전 처음 이 곳에 왔던 때. 길 위에서 장렬히 전사한 버스 때문에 발을 동동 굴렀던 일이 생각난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에 적잖이 당황했던 나는 이제는 버스가 길 위에 멈쳐서면 '고장났다 보다'라며 태연히 잠을 청하는 현지인보다 더 현지스럽게 바뀌어져 있음을 느낀 건 그 일이 있고나서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닌듯 하다.
새로 단장한 터미널에 새로 바뀐 신형버스들. 더욱 편리해지는 변화속에서 왠지모를 아쉬움과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이 이는 것은 왜 일까? 삶의 빠른 변화와 발전은 무서울 정도로 많은 것들을 밀어낸다. 너무 아쉬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너무 쉽게 밀려나고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버린다. 그렇기에 우리네 잃어버린 것들이 이리도 그립고 그걸 보고 있자면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