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길 위의 새 길을 따라간 차마고도(茶馬古道)

[중국서남부 오지기행] 세상에서 가장 높고 먼 길을 가다

등록 2009.04.29 16:17수정 2009.04.2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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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가고 있는 시간. 외롭고 쓸쓸하게만 보이는 길.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먼 길을 이렇게 높은 산위에 선으로 그려 놓았다. 그 길 위엔 티베트고원이 만들어내는 지구의 아름다운 상처같은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자연의 풍경과 정신적 풍요로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홀로 그 길을 따라 가는 시간이 결코 외롭지 않음을. 바로 새로운 문화의 키워드로 떠오르는 차마고도(茶馬古道)이다.

 험준산맥을 거스르며 차마고도는 마치 인체의 모세혈관처럼 모든 곳을 연결한다.
험준산맥을 거스르며 차마고도는 마치 인체의 모세혈관처럼 모든 곳을 연결한다.변훈석

옛길 위의 현대판 차마고도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대륙과 유럽을 연결하는 고대 무역로 '실크로드'위에 묻어있는 다양한 문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강렬히 우리를 유혹해왔다. 그 유혹을 뛰어넘어 다크호스처럼 부상하며 중국여행의 키워드로 자리잡은 '차마고도'속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사실 차마고도란 지도상에 하나의 줄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인체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모세혈관 같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티베트 고원의 험준산맥과 협곡사이로 마을과 마을이 연결되는 실핏줄 같은 고원지대의 모든 길이 차마고도이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만한 협곡속 절벽길.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며 굽이굽이 높은 산을
넘다들던 그 길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어왔다. 시대의 흐름과 교통의 발달로 도로가 건설되며 자연스레 그 길위론 야크와 노새가 아닌 대형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달리게 되며 역사의 한 페이지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로 곳곳엔 시간과 그 길을 지난 이들의 거친 호흡소리가 묻어있는 옛 길의 흔적이 남아있고, 아직 현대문명의 바람이 험준협곡에 막힌 오지마을엔 예전처럼의 큰 규모는 아니지만 마을의 물자 수송이나 소규모 무역을 위해 이동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윈난(云南)성의 수도인 쿤밍(昆明)을 출발한 비행기는 구름위를 잠시 날더니 어느새 착륙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쿤밍에서 불과 500여Km 떨어져 있지만 차로는 8시간이나 달려서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는 고원위의 땅에 불과 40여 분만에 쉽사리 데려다 준다.

800년의 역사를 가진 과거 티베트와 통하던 차마고도(茶马古道)의 주요한 요충지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자 나시족(纳西族)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윈난성의 간판 관광도시 답게 고성내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지만 고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완구로(万古楼)엔 북적거림도 요란함도 없는 아즈늑한 고성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리장을 찾을 때마다. 확트인 전경속 수많은 기왓장처럼 저 속에 묻혀있을 수많은 사연들을 상상해보며 이번 차마고도 여행을 시작한다.

샹그릴라(香格里拉)를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이동한다. 새까만 매연을 내뿜으며 곧 멈춰 버릴 것 같은 고물차량으로 그 길을 지났던 3년전 처음 이 곳에 왔던 때. 길 위에서 장렬히 전사한 버스 때문에 발을 동동 굴렀던 일이 생각난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에 적잖이 당황했던 나는 이제는 버스가 길 위에 멈쳐서면 '고장났다 보다'라며 태연히 잠을 청하는 현지인보다 더 현지스럽게 바뀌어져 있음을 느낀 건 그 일이 있고나서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닌듯 하다.


새로 단장한 터미널에 새로 바뀐 신형버스들. 더욱 편리해지는 변화속에서 왠지모를 아쉬움과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이 이는 것은 왜 일까? 삶의 빠른 변화와 발전은 무서울 정도로 많은 것들을 밀어낸다. 너무 아쉬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너무 쉽게 밀려나고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버린다. 그렇기에 우리네 잃어버린 것들이 이리도 그립고 그걸 보고 있자면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일까?

 금사강제1만-고산준봉 사이로 굽이굽이 흘러가는 물줄기가 가로막힌 산봉우리를 돌아 ‘S’자로 선예하며 멋진 자연의 예술을 만들어 놓았다
금사강제1만-고산준봉 사이로 굽이굽이 흘러가는 물줄기가 가로막힌 산봉우리를 돌아 ‘S’자로 선예하며 멋진 자연의 예술을 만들어 놓았다 변훈석

버스는 숨가쁜 오름짓을 힙겹게 하더니 어느덧 겨울의 삭막한 고원위의 땅을 지나 윈난성 최북단 최고 높은 땅을 향해 쉼없이 달리고 있다. 3200m에서 출발한 버스는 2000m의 진샤강 강변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가며 시원스레 강변을 달린다. 고원의 건조한 기후탓에 황량하기만 한 이 곳. 히말라야 조산운동이 만들어낸 거친 산들 사이로 곡예하듯 미끄러져 들어가는 협곡들. 이 곳은 내게 황량함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다.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며 최북단을 향한 여정이 만만치 않음을 경고라도 하듯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얼마전 내린 폭설로 도로 곳곳이 얼어 붙어 있고,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거대한 눈벽사이로 아슬아슬 지나간다. 좁은 미로와 같은 길 속에서 현대판 마방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형트럭과 마주치게 되면 더욱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한다.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그 길을 지나며 펼쳐지는 고원의 설경은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을 길위에서 보내고 있다는 지루함도 힘듦도 잊게 해주는 겨울고원의 선물이었다. 사계절마다 다른 색상으로 표현되는 이 곳. 이 길이 과연 내가 다니던 그 곳이 맞을까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할 만큼 전혀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시간. 옆으로 천길 낭떠러지를 두고 아슬아슬하게 교행하는 겨울철 고산도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시간. 옆으로 천길 낭떠러지를 두고 아슬아슬하게 교행하는 겨울철 고산도로 변훈석

진샤강변에서 시작된 오르막길을 타고 무려 2300m를 쉬지 않고 힘겹게 올라선 해발  300m의 바이망설산 능선길. 윈난성에서 가장 높은 도로이다. 버스도 힘겨워 보이는지 뒷바퀴에선 거친숨을 내쉬며 매캐한 파열내음을 뿜어낸다. 기사에게 물어보니 4000m를 넘어서면 버스의 출력이 현격히 떨어진다고 한다. 하긴 사람도 산소가 부족해 호흡이 어려운 이 곳을 넘는 버스는 오죽할까?

내리막길로 접어들며 버스가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곧 윈난성 최고봉이자 티베트인들의 성지인 메이리설산(梅里雪山:6740m)이 있는 최북단의 도시 더친(德钦)에 도착할 수 있단 기대감에 설레어온다. 장시간의 지루함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버스안에서 다시 한번 감탄사들이 터져 나온다. 몽롱한 정신에 창밖을 내다보니 순백색의 만년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윈난성에 3년 넘게 살면서 이 곳을 얼마나 다녔는지 셀 수도 없지만 처음 이 산을 접했을 때 내 입을 떡 벌어지게 했던 위용은 여전하고, 접할수록 그 신성함은 더욱 깊어가는 듯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산에 조아리는 사람들과의 만남. 지금도 저 산은 여전히 신비롭고 아름답다. 언제 오느냐, 누구와 오느냐. 그 느낌은 언제나 달랐다. 나와 이 곳을 함께 찾은 인연을 저 산은 기억하고 있을테지. 그리고 이 곳을 찾을때마다 저 곳에 묻힌 추억들을 꺼내어 볼 수 있다는 건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분주함속에서 가질 수 있는 나만의 특권이 아닐까?

 메이리설산을 바라보며 '옴마니반메훔'이란 티베트 불교의 육자진언을 돌에 세겨 넣고 있는 현지노인. 이들에게 메이리설산은 '신(神)'이였다.
메이리설산을 바라보며 '옴마니반메훔'이란 티베트 불교의 육자진언을 돌에 세겨 넣고 있는 현지노인. 이들에게 메이리설산은 '신(神)'이였다. 변훈석

메이리설산 전망대인 페이라이스(飞来寺)에 도착해 여정을 풀었다. 잠을 청해도, 숟가락을 들어도... 하루의 모든 행동을 영롱한 만년설을 바라보며 이루어지는 곳.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테라스에 앉아 설산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온다. 한겨울의 건조한 날씨는 시리도록 푸른색의 하늘과 함께 구름한점 없는 화창함을 메이리설산 주변으로 그려놓고 이방인들을 맞아주고 있었다. 자연이 그려낸 아름다운 그림앞에 갑자기 이 곳에 온 목적이 사라지며 모든걸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난 쉽게 만날 수 없는 그 그림속에서 사흘을 허우적대다 겨우 빠져나왔다. 이제 이번 여행의 종착점이자 차마고도 여행의 백미가 될 소금마을 옌징(盐井)을 향해서...

본격적인 비포장길이 시작된다. 이 길은 윈난성의 수도인 쿤밍에서 출발하여 티베트의 망캉(芒康)까지 연결되는 1112Km의 띠엔장공로(滇藏公路)이다. 소금마을까지는 100Km가 안되는 짧은 거리이지만 3시간 이상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덜컹거리는 이 고단함도 이제 곧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이 어드벤쳐 도로도 포장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라 년말즈음엔 깔끔한 아스팔트길로 바뀌어져 있을 것이다.

 우물에서 길어온 소금물은 염전에서 증발되어 소금을 남긴다. 무거운 소금 자루를 이고 나르는 아낙들의 모습에 신기함보단 현지인들의 고단한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우물에서 길어온 소금물은 염전에서 증발되어 소금을 남긴다. 무거운 소금 자루를 이고 나르는 아낙들의 모습에 신기함보단 현지인들의 고단한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변훈석
마을초입의 검문소에 신고를 하고 드디어 옌징에 발을 디딛는다. 옌징(盐井)은 마을에 분포되어 있는 소금우물에서 이름을 얻었고, 또 그 이름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이 곳은 가장 오래된 정통 소금 생산법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오래전부터 티벳지역에서 광범위하게 거래되었고 이름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차마고도에서 운송과 교역의 중요한 물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차마고도 역시 옌징으로 인해 더욱 활기차고, 수 많은 전설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이 곳은 두 개의 큰 대륙판인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그 틈 사이로 바닷물이 올라와 소금우물이 형성되고 란창강변 언덕에 수 백개의 염전 나무틀이 세워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옛 길 위에 새로 놓여진 현대판 차마고도를 따라 다녀온 겨울의 동티벳 샹그릴라. 겨울의 시린 황량함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마음의 눈을 새로이 뜰 수 있었다. 얼어버린 그 땅은 새로운 봄을 위한 분주함이 있을 테고, 새로운 길에 묻혀있는 옛 길의 많은 사연들도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밝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 테지. 많은 것들이 밀려나고 새로워지는 현대문명에서 이들의 삶과 자연이 존중될 수 있길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차마고도와 마방
차마고도와 마방변훈석

차마고도는 지도상에 하나의 줄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인체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모세혈관 같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티베트 고원의 험준산맥과 협곡사이로 마을과 마을이 연결되는 실핏줄 같은 고원지대의 모든 길이 차마고도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엔 분명히 특별함은 있다. 실크로드보다 앞선 고대 무역로라는 단순한 역사적과 사실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고 험준협곡을 통과하고 설산을 넘어야했던 마방들의 모험과 해발 5000m를 넘는 대설산과 험준한 협곡으로 어쩔 수 없이 길을 내어야했기 때문에 그 길 위에서 반대급부로 얻어지는 티벳고원의 스팩터클한 풍경과 더불어 고원지대의 지형적
고립이 가져온 티벳문화의 원시성과 고유성은 충분히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런 호기심은 옛 차마고도 위로 아스팔트로 깨끗이 포장된 도로를 달리며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마방들의 삶과 그들의 이동을 보기엔 우리사회가 너무 발전되어 있다. 마방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직도 험한 지형탓에 도로가 뚫리지 않은 곳엔 여전히 말이 교통수단이자 물품운송을 담당하고 있지만, 이들을 만나려면 상당한 시간과 인내를 요구한다. 차마고도 여행을 떠나기전 자신에게 다시한번 질문해보자. 과연 차마고도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차마고도 #메이리설산 #옌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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