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주기철 목사 전기 <나의 아버지 순교자 주기철 목사>,<한 알의 밀알이 되어>

등록 2009.04.29 16:21수정 2009.04.2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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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표지 <나의 아버지 순교자 주기철 목사>

책 표지 <나의 아버지 순교자 주기철 목사> ⓒ 이명화

▲ 책 표지 <나의 아버지 순교자 주기철 목사> ⓒ 이명화

작은 책, <나의 아버지 순교자 주기철 목사>(대성닷컴/주광조 지음)는 주기철 목사의 넷째아들인 주광조 장로가 쓴 것이기에 다른 전기와 사뭇 다르다. 한국 기독교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민족적 수난기에 일제 군국주의에 타협하지 않고 저항신앙으로 순교한 아버지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좀더 가까이서 지켜보며 쓴 책이다.

 

오늘날의 교회가 시대의 조류에 따라 휘청거릴 때마다 어떻게 신앙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어둠 속 등대불빛 같은 존재요, 등불 같은 존재다. 이 책은 주기철 목사가 생의 마지막 길을 갈 때, 아직 어리고 철이 없었던 막내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기에, 저자가 지켜본 아버지의 삶을 전기로 펴내 증언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 목사들과 성도들이, 일본인들의 잔인한 고문 앞에서 견디다 못해 배도하고 신사참배를 하고 있을 때에도 꿋꿋이 믿음으로 서 있었던 사람, 수 년간의 고문과 고난으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통 앞에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순교의 반열에 들어선 주기철 목사의 순교적 삶을 목도했던 아들의 눈과 마음으로 쓴 책이다.

 

저자는 아버지의 순교현장을 목도하고 실어증에 걸려 3-4년간을 고생하다가 해방 후에 건강을 회복하기도 하였다. 주광조 장로가 쓴 '주기철 목사'전기는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애끓는 인정이 있다. 주기철 목사가 가장 좋아한 찬송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고 한다. 형무소에서의 끔찍한 고문과 고난에 찬 날들이 좀 짧았다면 좋았으련만, 수년 동안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견디다 못해 배도의 길을 간 다른 동료목사들을 보면서 그는 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주기철 목사는 감옥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자신의 육체적 고통보다도 고문에 못 이겨 결국 항복하고 교도소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성도와 목회자) 때문에 가장 고독하고 힘들다고 했다고 한다. 주기철 목사가 순교한 뒤 슬픔으로 우는 사람들을 향해 그의 아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지금은 울 때가 아니에요.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주 목사님은 나약해서, 힘이 모자라서, 무식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말해야 할 때 벙어리가 될 수 없어서, 당연히 가야할 길을 도망치거나 피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당연히 죽어야 할 시간에 살아남을 수 없어서 죽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는 자만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아버지 주기철 목사에 대해, 산정현교회 교인들이 남몰래 도와준 얘기, 아버지가 감옥에 있는 동안 단 한번도 방에서 허리 펴고 자지 않고 차디찬 교회바닥에서 밤낮으로 기도했던 이야기, 또 주기철목사의 굴복을 받아내기 위해 어머니와 아내가 보는 앞에서 고문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반대로 어머니와 아내를 고문하게 하는 등 힘들었던 이야기 등 일반적인 전기에서는 얻을 수 없는 이야기들도 언급하고 있다.

 

주기철목사 순교전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a 책표지 김요나

책표지 김요나 ⓒ 이명화

▲ 책표지 김요나 ⓒ 이명화

일사각오 축소판인 주기철 목사 순교전기 <한 알의 밀알이 되어>(김요나저/도서출판엠마오)는 아들 조광조 장로가 쓴 <나의 아버지, 순교자 주기철 목사>보다는 좀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쓴 책이다. 방대한 분량의 전기인 <일사각오>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선별하여 만든 책으로, 주기철 목사의 어린시절부터 순교하기까지의 전 생애를 다루고 있다.

 

주기철 목사는 1897년 11월 25일, 경남 창원군 웅천면 북부리(현 진해시 웅천1동) 백일부락에서 부친 주현성과 모친 조재선 사이에서 네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은 기복, 후에 기독교를 철저히 믿는다는 뜻으로 '기철'로 이름을 바꾼다. 1906년 웅천 개통학교에 입학, 웅천읍교회에 나가게 된 것은 1910년 12월 25일이었다.

 

1920년 11월, 김익두 목사가 인도하는 사경회에 참석해 신학교를 가기로 결심하게 되고, 1922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면서 목회의 길에 들어선다.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 또한 많다.

주기철 목사의 순교적인 신앙과 인격, 잔학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5년여의 긴 세월동안 다섯 번이나 옥에 갇히고, 참을 수 없는 고문과 고통을 감내하며 신앙의 순결을 지키며 순교하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이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

 

반대로 외롭게 고난 속에서도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옥고를 치르던 그와는 달리,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1942년에 들어서자 일제당국은 태평양전쟁을 기화로 교회를 200개나 더 폐쇄하였고 교회지도자 2000여 명을 투옥하였다. 외국선교사들은 거의 모두 강제 출국시켰다. 이 땅에는 목자 없는 교회가 많았고 교인들은 주일날에도 일을 하게끔 하였고 모든 국가 행사도 거의가 주일에 행하여졌다. 교회의 종은 공출되었고 교회 안에서는 일본의 우상 '가미다나'를 배치하도록 명령했다...(중략)...지난 1943년 5월 5일에 각 교단의 발족 모임에는 신도의 신주가 기독교 목사들을 한강 및 대동강 낙동강으로 데리고 가서 정결케 하는 의식을 베풀었다. 그것은 기독교의 세례와 같은 입교의식으로 일본 개국신 '아마데라스오미가미'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고백을 하고 예식을 행하는 것이다. 이어서 알몸으로 물에 들어가 전신을 물에 잠기게 했다가는 다시 뛰어 나온다. 이렇게 하기를 7번 해야 한다. 이렇게 하고나면 신사의 제관이 된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것은 일제당국의 폭압은 차치하고라도 그것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다름 아닌 같은 동역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주기철 목사한테 도움을 주기는커녕 그를 목사직에서 파면시켰고 매도했다. 주기철 목사가 형무소에 갇혀 사는 동안 그의 가족들은 사택에서 쫓겨나 열한 번이나 이사를 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산정현교회의 성도들과 숨어서 그를 돕는 자들이 또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기철 목사가 끝까지 순교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그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산정현교회 교인들의 신앙과 기도,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한 후 두 번째 아내의 신앙과 기도의 헌신 등 숨은 공로자들이 참으로 많았다는 것을 이 전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신앙의 길은 좁은 길이다. 그래서 찾는 이들이 적은 길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오늘날 이 땅에 일제시대에 순교한 사람들과 6.25동란 때 순교한 그들의 피 흘림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 땅에 복음이 꽃피고 열매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 땅 방방곡곡에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가 자유롭게 주를 찬양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일제 때 순교한 그들의 피의 댓가이며 열매인 것이다. 50여 명의 순교자들과 주기철 목사의 순교는 오늘 이 시대뿐 아니라 오고오는 세대까지 많은 교훈과 귀감이 될 것이다. 고난에 찬 삶을 살다간 주기철목사, 그가 작사한 '영문밖의 길'을 가만히 불러본다.

More Than Conquerors - 나의 아버지 순교자 주기철목사

주광조 지음,
대성닷컴, 2004


#주기철 #순교 #밀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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