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출판문화도시에서는 마땅한 길알림판이란 없고, 길바닥에 좌판을 죽 벌여놓고 행사 치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최종규
(5/1) (10:43)- 도서관을 열어야 하는 금요일을 맞아, 아침에 신나게 아기 기저귀를 빨아 놓는다. 일산에서 인천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아기 똥기저귀도 빨고 밑도 씻긴다. 밥 한 술을 뜨고 나서 길을 나선다. 바람이 조금 불지만 날이 환하고 따뜻하다.
킨덱스에 조금 못 미칠 즈음 뒤에서 따라붙는 자전거 한 대 보인다. 언제부터 따라붙고 있었을까. 비켜 줄까 그냥 달릴까 하다가, 뒤에 붙은 사람이 어떤 생각인지 모르니 섣불리 비켜 주는 일도 잘하는 일이 아닐 듯. 그냥 내 빠르기를 지키며 달린다. 앞지를 사람이라면 알아서 앞지를 테지. 그렇게 조금 달리자니 뒤에서 두 대가 옆으로 나온다. 이제는 페달질을 멈추고 먼저 지나가라고 한다. 앞질러 가는 자전거 두 대는 경주용. (페달질을 멈추며 기다려 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해 준다. 저분들은 어디부터 달려오고 있었을까. 먼 데서? 가까운 데서?
정발산역 조금 못 미쳐 뒤에서 빵빵거리는 자가용 한 대. 한갓진 때라 넓은 찻길에 다른 차가 거의 없는데 뭐 하러 내 자전거에 대고 빵빵질인가. 알쏭달쏭한 녀석이군. 네가 나한테 빵빵질을 해야 한다면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 다른 차도 모두 빵빵질을 했어야 하지 않니? 나보고 즐겁게 달리라고 하는 인사로 받아들여 주고 싶으나, 네가 자동차 달리는 매무새를 보니, 아무래도 넌 인사가 아니야. 너희는 우리가 모르는 듯 생각하나 본데, 자전거꾼은 누구나 안다고. 나한테 메롱을 하는 놈인지, 나한테 손을 흔드는 분인지 알아챌 수 있다고.
(11:12)- 대곡역 지날 무렵, 미친 택시 하나가 갑자기 자전거 앞으로 쑥 끼어들어 손님을 잡는 척을 하더니, 다시 부웅 하면서 빨리 앞으로 달려나간다. 나보고 저 택시 뒤꽁무니를 들이받으라는 소리인가? 아니면 급발진을 하며 내뿜는 시커먼 차방귀를 옴팡 뒤집어쓰라는 소리인가? 길에 택시 탈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저 택시기사는 손님도 없는 터에 자전거꾼을 갖고 놀자며 저 짓인가 보다. 조금 뒤, 신호에 걸려 이 택시는 내 옆에 서게 되었고, 나는 한동안 택시기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속으로 피식 웃으며 생각한다. '아저씨, 도심지에서는 차나 자전거나 똑같아요. 메롱질을 하고 내빼 보았자 멀리 못 가거든요. 스스로 불쌍한 줄 아셔요.'
어느덧 일산 시내는 다 빠져나온 듯. 어수선할 때가 아니라 잘 모르겠으나, 서울 시내와 견주어 보면, 서울 시내는 높고 낮은 건물이 어지럽게 들어서 있고 일산 시내는 거의 똑같이 생긴 건물이 거의 똑같은 자리에 바둑판처럼 들어서 있다. 언뜻 보기에 일산 시내가 깨끗한 듯 느낄 수 있으나, 이 길도 썩 달릴 만하지는 않다. 어느 도심지가 되든 자전거로 달리는 맛이란 없다. 그저 차막힘이 없고, 밀리는 전철과 버스에서 사람들한테 시달리는 고달픔이 없을 뿐이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이렇게 따분한 도심지를 자가용으로 달리다 보니까, 자가용 모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 마음을 따분하게 갉아먹게 되지는 않을까. 고속도로를 타고 시골길을 가로지른다 하여도 그저 빨리 내달리기만 할 뿐, 창밖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구경하기라도 할 겨를이 있는가. 모두들 앞만 본다. 아니, 앞차 꽁무니만 보면서 내가 먼저 가야지 하고 생각할 뿐이다. 이런 자동차꾼들한테 '자전거와 걷는이를 생각해 주셔요' 하고 바랄 수 없는 노릇 아니랴 싶다. 우리 스스로 자가용을 모는 동안에는 아무리 착하고 얌전하게 몬다 하여도, 차가움과 메마름과 따분함을 몸에 길들여 놓는 셈이 아니랴 싶다.
자전거꾼도 자동차꾼하고 똑같아질 수 있다. 나부터 막몰이(마구잡이로 몰아대며 달리기)를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페달질을 재게 하면서 더 빨리 달리자고 꿈꾸지 말자. 늘 알맞게, 오래오래 즐겁게 달리도록 맞추자. 내가 이 길을 달리는 동안 길 옆으로 어떤 집이 있고 어떤 자연이 있고 어떤 사람이 있는지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