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불탄일을 맞는 죽림정사의 풍경. 산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찍었다. 매우 소박하면서 아름답다. 사진을 찍으면 가람의 배치가 잘 된 절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안병기
누가 뭐래도 '절간에서 인심 난다'최승호 시인은 '뭉게구름'이란 시에서 말하길 "내 가계엔 구름 숭배자가 없다"라고 했다. 내 가계 역시 본래 지속 가능한 안정을 추구하던 가계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돌연변이처럼 내 몸 속엔 떠돌이 기질이 다분한 인자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내 떠돌이병이 전혀 선천적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 할아버지께선 평생을 지게와 씨름하시다 돌아가셨으며, 아버지 역시 '맨주먹 붉은 피' 하나로 오로지 가족 부양에만 몰두하시다가 세상을 뜨셨기 때문이다.
떠돌이병이 있는 내가 주 목적지로 삼는 곳은 산이다. 때에 따라선 산 자체가 아니라 그 산에 세든 절이 되기도 한다. '너는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왜 절을 찾는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본 적이 있다. 삼국시대 이후 우리 조상으로부터 시작되어 천 년 동안 형성돼 온 내 정신의 유전자가 내 그리움의 근원이 아닐는지. 아무튼 절집에 가면 우선 마음부터 편안해진다. 그렇게 자주 찾아다녔으면 벌써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어 있어야 마땅할 일이다. 그러나 난 여전히 내세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서의 길을 줄기차게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절에 가면 때때로 점심 공양을 얻어 먹을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절밥이 맛 있다"라고 설레발친다. 그러나 마늘·파·부추·달래·흥거 등 자극이 강하고 냄새가 많은 오신채에 길들여진 사바세계 중생인 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마 그 사람이 '산을 오르는데 힘을 너무 쏟아 무척이나 시장했나 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산 혹은 절집에 갈 적엔 될 수 있는 한 도시락을 싸 간다. 절밥이 맛없어서가 아니다. 만약에 절집에서 공양을 얻어 먹게 되면 시간이 아주 많이 지체되기 때문이다. 그리 되면 돌아다니면 구경할 시간이 적어진다. 긴 줄을 서야만 공양을 탈 수 있는 초파일 같은 날엔 특히 그렇다. 게다가 난 절집에서 공양하게 되면, 될 수 있으면 내가 먹었던 밥그릇은 내가 씻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것이 밥을 얻어 먹은 자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에 도시락을 준비해 가는 것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절집 인심도 제각각이다. 어떤 절집은 공양주가 아주 기세등등하게 밥 한 그릇을 주면서 마치 큰 보시라도 베푸는 듯이 주는 야박한 절집도 있고, 안 먹고 그냥 가겠다고 하면 몹시 서운한 표정을 짓는 절집도 있다.
지난 1월에 다녀온 내변산 월명암의 경우가 꼭 그랬다. 월명암의 공양주는 나이 드신 보살이었다. 그런데 암자에 들르는 사람마다 붙들고선 공양을 들고 가라고 성화였다. 나도 그 보살에 잡혀서 어쩔 수 없이 공양 한 그릇을 들고 나왔다. 공양을 어찌나 고봉으로 담아주던지 배가 불러 혼이 났다. "주지 스님은 어디 가셨느냐?"라고 물었더니 오늘 부안읍내에 나가셨다고 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월명암을 떠나오면서 '저런 인심 좋은 보살을 뒀다간 절집 살림이 남아날까?' 싶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하기야 그 밥심으로 가뿐히 산행을 마치긴 했지만 말이다.
언젠가 내가 글에다 '절간에서 인심 난다'라고 썼더니 어느 독자가 댓글을 썼다. "그거 '곳간에서 인심난다' 아니어요?" 맞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 그러나 그 말은 개인 집으로 한정 지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절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온 세상을 대상으로 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아무튼 누가 뭐래도, 세상인심이 제아무리 각박하다 할지라도 아직 절 인심만은 따뜻하게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