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언론악법 저지, 조중동 재벌방송 저지를 위한 MBC노조 총파업' 집회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본사 로비에서 열리고 있다.
권우성
'언론'에서 큰장이 서다
촛불은 광우병 쇠고기 문제 때문에 촉발되었지만,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니다. 이른바 '1+5 의제'(광우병 쇠고기 + 교육 자율화, 대운하 건설, 공기업 민영화, 물 사유화, 공영방송 장악 기도)를 모두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일찌감치 '언론' 이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촛불이 터지기 전에 예고편으로 <시사저널 사태>가 일어났는데,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활동을 통해 기자들을 지원하고 <시사IN> 창간을 돕는 일을 오랫동안 한 경험 때문이다.
언론문제는 촛불국면에서나 지금이나 매우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촛불시민 측에서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불매운동이 촉발돼 이 신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며 정부 여당 측에서는 재벌의 방송소유나 부자신문의 방송겸영, 방송사 길들이기 등 전방위적인 언론 탄압을 기도하고 있다.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하는 네티즌들은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이라는 시민단체를 결성했는데, 이 과정에 참여해 정책을 개발하는 일과 조선일보와 다투는 일을 했다. 특히 조선일보 등은 자신들의 왜곡보도로 광고불매운동이 일어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애꿎은 언소주 회원들을 고발해 수 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법정공방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상처를 입었고, 언론운동 자체도 큰 타격을 입었다. 법정에서도 언론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지 않아 사면초가에 몰린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위기 때마다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나서 열정을 쏟아 주었기 때문인지 언소주는 여전히 유의미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싸우는 방식의 언론운동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사저널 사태 때 시사저널 본사와 싸우다가 검찰에 의해 기소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던 만큼 '싸움'은 위험부담이 많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참여가 쉽고 포지티브, 네거티브가 적절한 비율로 섞인 언론운동을 찾아 헤매던 중 지금은 <진실을 알리는 시민>(이하 '진알시')에 참여하고 있다.
언소주와 진알시는 모두 전국적인 면모를 갖춘 조직인데, 진알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을 통해 경향, 한겨레 등 정론매체를 배포하는 일을 하는 단체다. 전쟁으로 따지자면 언소주가 '전투병'이라면 진알시는 '보급병'이다. 전쟁의 성패는 '보급선 확보'에 달려 있다.
강남촛불이 진알시의 신문보급을 통해서 내부갈등을 극복하고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사례를 보면, 언론운동·시민운동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과 참언론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하고 있는 언론활동은 '지역언론 만들기'이다. 요즘은 신도시 판교로 내려가 시민들과 아이들을 만나면서 지역의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 기사로 내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미디어악법과 관련해서 국회에서 '해머 사태'가 터진 것을 떠올려 보면, 싸움은 대체로 '거대담론'의 성격이 강하고, 거대담론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이웃의 소소한 문제가 언론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3년간 전개했던 언론운동을 통해서 내가 깨달은 사실이다. 이웃의 이야기가 지금은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전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인간은 상식과 감성에서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웃의 이야기는 단지 조그마한 지역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의 입맛에 대해서는 천하의 사람들이 역아(춘추시대 가장 요리를 잘 만들었던 인물)에게 의존하는데, 이것은 천하 사람들의 입이 서로 비슷해서이다. 귀도 그렇다. 소리에 대해서는 천하 사람들이 사광(춘추시대 음악에 뛰어났던 인물)에게 의존하는데, 이것은 천하 사람들의 귀가 서로 비슷해서이다. 至於味, 天下期於易牙, 是天下之口相似也 惟耳亦然. 至於聲, 天下期於師曠, 是天下之耳相似也. (맹자, 고자편) 마르크스, 스피노자, 셰익스피어 고전읽기와 블로그질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경제'에 대한 이슈가 너무 쉽게 왜곡되고 속아넘어가는 데 대해서 분통이 터져서 경제 교양서를 챙겨 읽기 시작했다. 우석훈, 장하준의 책을 통해 기본기를 익혀갈 즈음 촛불을 맞았는데, 촛불은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이해하라고 요구했다.
10년간 꺼내읽지 않았던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그때부터 읽었다. 마르크스를 읽는 세미나 공간 <새움>이라는 곳에서 대학원생들과 강사, 박사들과 함께 강독을 했다. 자본주의 모순의 실체를 읽지 않으면 촛불에 다가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스피노자나 셰익스피어 같은 때아닌 고전읽기에 몰두했다.
촛불이 만개했을 때 개혁세력, 자유주의 세력, 진보세력, 극우세력 등 정치세력들만 충격에 빠진 것이 아니다. 언론도 당황해 촛불 현장에서 장님 문고리잡듯 방황했다. 촛불이 주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서는 '여중생'밖에 없는 듯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생각이 무르익고 나서야 비로소 의미 있는 '촛불담론'들이 생겨났다. 나는 촛불 직후 6개월 동안에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했던 말들을 믿지 않는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제도언론과 지식인이 미덥지 않다는 믿음이 강화될 뿐이다. 오히려 마치 제도언론은 1인미디어가 대체하고, 지식인은 아고라 필진이 대체하는 것 같은 묘한 흐름이 감지된다. 한 언론인의 말처럼 모든 전문가들이
"계급장 떼고 맞장 뜨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촛불의 형체가 드러날 것이다. 제도권에 오래 머물던 타성으로는 틀에 박힌 사고의 구름만 불필요하게 생기므로 촛불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기 만무하기 때문이다.
촛불이 켜지고 나서부터 블로그질을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리뷰나 신문스크랩 등 제한적인 활동만 했다. 내 목소리를 내고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해 왔다. 블로고스피어라는 개념은 디지털화된 촛불을 이해하는 열쇠다. 댓글이나 트랙백, 공동취재 등 다양한 연합작전이 가능한 공간이 블로그다. 블로그는 공적인 성격과 사적인 성격이 혼재돼 있는 복잡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치 지역의 소소한 이야기가 전세계의 이슈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구조와 유사하다. 블로고스피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고 희열을 맛보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100만명이 넘는 방문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고전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기성세대와 신세대, 기존의 지식과 새로운 지식 등이 자유롭게 섞여있는 촛불의 메시지는 아직도 희미하지만 몸과 마음으로 하는 '나의 촛불읽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촛불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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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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