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정씨가 베트남에서 시집온 A씨에게 한글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오문수
"어제 뭐했어요?""밭에 가서 고추를 시었어요.""'시었어요'가 아니라 '심었어요'. 따라 해봐요. 심었어요.""심었어요." "옳지 잘하네. 남편은 어디 갔어요?" "산에서 궝 잡으러 가요." "산에서가 아니고 산에 꿩 잡으러 갔어요.""산에 궝 궝 꿩 잡으러 갔어요.""옳지 잘하네."
위 대화는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어린애와 엄마 사이가 아니다. 호치민에서 버스로 다섯 시간쯤 걸리는 메콩강가의 '건터'에서 여수의 시골 농가에 시집온 A씨와 여성 결혼이민자를 위한 한국어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김미정씨 간의 대화이다. 그녀는 2년 전 한국으로 시집왔다.
서른 살이 됐다는 그녀의 얼굴은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느 여성과 달리 수심에 젖어 있다. 노란 티셔츠에 말총머리를 해 스무 살도 안 돼 보였는데 나이가 많다. 김미정씨의 핸드백과 휴대폰을 열어 옹알이를 하는 기호(가명)는 며칠 있으면 20개월이다. 얼마 전까지 말을 잘 못하고 아빠라는 말을 못해 구박을 받다가 김씨의 도움으로 아빠라는 말을 시작했다.
엄마가 한국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아이도 언어발달 속도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늦어지는 것 같다는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가 '곰 세 마리' 노래를 불러주자 금방 어깨를 들썩이며 발을 흔들고 반응을 보인다.
남편에게 인사라도 하려고 소재를 물었다.
"남편 어디 갔어요?""산에 꿩 잡으러 갔어요.""아니! 왜 일은 안하고?""일? 없어요." 마흔이 훨씬 넘은 남편은 시골 출신이지만 여수에 나가서 일용직 근무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일감이 없어 산에 간 것이다.
"아기를 더 낳을 계획은 없어요?" "없어요.""베트남에서는 식구가 많잖아요?""예, 보통 한 집에 다섯 명 이상 낳지만 하나만 키울 거예요."
표정이 밝지 않으니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은 느낌이다. 김씨가 물었다.
"베트남 사람을 누가 힘들게 했어요?" "미국." "미국사람이 힘들게 했어요." "저는 그런 것도 잘 몰라요."살고 있는 집은 외형상 번듯한 양옥이지만 살기가 버겁다는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A씨의 말문을 틔우기 위해 계속 질문 한다.
"삼겹살 먹고 싶어요?""아니요. 요즘 돼지 아파요." "어떻게 알아요?""텔레비전에서 봤어요."한참 공부를 하고 있는 데 논에서 일을 마친 시아버지가 돌아왔다. 여든한 살이라는 시아버지는 "손주가 아주 귀여워요. 울지도 않고 혼자 뒹굴면서 잘 놀아요" 한다. 며느리하고 대화는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나는 못 알아 묵는디 자기는 다 알아 묵어요."노인당에 가겠다며 나서던 그분.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인깨 밥이라도 해 드려라"며 나간다. 참 시골인심이다. 그런데 대화가 안 통함은 가슴앓이다. 그래도 귀여운 손주가 따라다니며 "하비, 하비"하니 오목해진 얼굴에 함박웃음이다.
현재 여수시에 소재하는 다문화가정은 중국·일본·필리핀·태국·베트남·몽고 등 12개국 출신 391명이다. 여수시 가정복지과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여성결혼이민자들이 의사소통문제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교육 내용은 한국어교육·가족교육·직업교육·상담·자조모임운영·다문화인식개선사업 등이다. 다문화가족 방문교육사업도 한 예이다.
방문 서비스 중 하나는 언어소통의 어려움과 함께 집합교육이 어려운 가정을 찾아가는 한국어교육 서비스이다. 이 혜택은 입국 3년 미만의 결혼이민자 가정을 우선 선정한다. 두 번째는 아동양육 지원 서비스로 한국어와 문화 차이 등으로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1세에서 만 12세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가정을 지원한다. 서비스 제공기간은 한 가정에 5개월간으로 방문교육지도사 23명이 184가정을 지원하고 있다.
방문교육지도사 1명당 지원대상가정은 4가정으로 번갈아가며 집을 방문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우선 선정 대상은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 저소득 한부모가정 및 차상위계층, 부모 중 장애인이 있는 가정, 자녀수가 많은 가정, 기타 읍면 동장, 관련 민간단체가 추천하는 가정이 우선 선정대상이다.
여수시 여성문화회관에서는 집합교육이 가능한 여성들을 위한 한국어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레벨테스트 후 초․중․고급 및 시험대비반으로 나뉘어 매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이며 현재 120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내용은 전화·우체국·집안일·물건사기·수리·환불·명절·요리·미용실·옷·드라마·은행·세탁소 등 실생활에 유용한 항목을 골라 강의하고 있다. 기간은 15주.
방문교육지도사인 김씨는 "같은 여자로서 한국까지 왔는데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엄마로서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나침반 역할을 한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또한 열심히 가르쳐서 변화되는 모습을 바라볼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A씨가 가장 어려워하는 발음은 'ㄹ'발음이에요. 그리고 받침 있는 발음이 잘 안돼요. 놀이터를 놀리터, 우리 아들을 우릐로 발음해요. 그들 발음은 혀가 안으로 말려 들어가요."
인사를 마치고 혼자 집을 나섰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여전히 한글 교육에 열심이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오동도 갈 거예요.""아니~ , 오동도에 갈 거예요. 에를 넣어야 해요. 알았지?""예."다문화가정에 들어가기 전 불안했던 마음이 활짝 펴진다. 저렇게 친절하게 가르치면 조금씩 변화를 겪으며 언젠가는 화학적 결합까지 가능하겠지. 우리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어제까지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맑게 개 햇살이 눈부시다. 못자리를 앞둔 논에 물이 찰랑대고 앞산에 녹음이 푸르다. 농로 사이를 걷는데 자운영 꽃이 더욱 아름답다. 그녀의 얼굴에도 밝은 햇살이 비추기를 빈다.
덧붙이는 글 | 남해안신문과 큰 여수 봉사소식지에도 송고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