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가서 고추를 시었어요"

다문화가정 한국어 교육 현장 방문기

등록 2009.05.04 14:10수정 2009.05.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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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정씨가 베트남에서 시집온 A씨에게 한글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김미정씨가 베트남에서 시집온 A씨에게 한글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오문수

"어제 뭐했어요?"
"밭에 가서 고추를 시었어요."
"'시었어요'가 아니라 '심었어요'. 따라 해봐요. 심었어요."
"심었어요."
"옳지 잘하네. 남편은 어디 갔어요?"
"산에서 궝 잡으러 가요."
"산에서가 아니고 산에 꿩 잡으러 갔어요."
"산에 궝 궝 꿩 잡으러 갔어요."
"옳지 잘하네."


위 대화는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어린애와 엄마 사이가 아니다. 호치민에서 버스로 다섯 시간쯤 걸리는 메콩강가의 '건터'에서 여수의 시골 농가에 시집온 A씨와 여성 결혼이민자를 위한 한국어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김미정씨 간의 대화이다. 그녀는 2년 전 한국으로 시집왔다.

서른 살이 됐다는 그녀의 얼굴은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느 여성과 달리 수심에 젖어 있다. 노란 티셔츠에 말총머리를 해 스무 살도 안 돼 보였는데 나이가 많다. 김미정씨의 핸드백과 휴대폰을 열어 옹알이를 하는 기호(가명)는 며칠 있으면 20개월이다. 얼마 전까지 말을 잘 못하고 아빠라는 말을 못해 구박을 받다가 김씨의 도움으로 아빠라는 말을 시작했다.

엄마가 한국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아이도 언어발달 속도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늦어지는 것 같다는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가 '곰 세 마리' 노래를 불러주자 금방 어깨를 들썩이며 발을 흔들고 반응을 보인다.

남편에게 인사라도 하려고 소재를 물었다.

"남편 어디 갔어요?"
"산에 꿩 잡으러 갔어요."
"아니! 왜 일은 안하고?"
"일? 없어요."


마흔이 훨씬 넘은 남편은 시골 출신이지만 여수에 나가서 일용직 근무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일감이 없어 산에 간 것이다.

"아기를 더 낳을 계획은 없어요?"
"없어요."
"베트남에서는 식구가 많잖아요?"
"예, 보통 한 집에 다섯 명 이상 낳지만 하나만 키울 거예요."


표정이 밝지 않으니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은 느낌이다. 김씨가 물었다.

"베트남 사람을 누가 힘들게 했어요?"
"미국."
"미국사람이 힘들게 했어요."
"저는 그런 것도 잘 몰라요."

살고 있는 집은 외형상 번듯한 양옥이지만 살기가 버겁다는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A씨의 말문을 틔우기 위해 계속 질문 한다.

"삼겹살 먹고 싶어요?"
"아니요. 요즘 돼지 아파요."
"어떻게 알아요?"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한참 공부를 하고 있는 데 논에서 일을 마친 시아버지가 돌아왔다. 여든한 살이라는 시아버지는 "손주가 아주 귀여워요. 울지도 않고 혼자 뒹굴면서 잘 놀아요" 한다. 며느리하고 대화는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나는 못 알아 묵는디 자기는 다 알아 묵어요."

노인당에 가겠다며 나서던 그분.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인깨 밥이라도 해 드려라"며 나간다. 참 시골인심이다. 그런데 대화가 안 통함은 가슴앓이다. 그래도 귀여운 손주가 따라다니며 "하비, 하비"하니 오목해진 얼굴에 함박웃음이다.

현재 여수시에 소재하는 다문화가정은 중국·일본·필리핀·태국·베트남·몽고 등 12개국 출신 391명이다. 여수시 가정복지과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여성결혼이민자들이 의사소통문제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교육 내용은 한국어교육·가족교육·직업교육·상담·자조모임운영·다문화인식개선사업 등이다. 다문화가족 방문교육사업도 한 예이다.

방문 서비스 중 하나는 언어소통의 어려움과 함께 집합교육이 어려운 가정을 찾아가는  한국어교육 서비스이다. 이 혜택은 입국 3년 미만의 결혼이민자 가정을 우선 선정한다. 두 번째는 아동양육 지원 서비스로 한국어와 문화 차이 등으로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1세에서 만 12세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가정을 지원한다. 서비스 제공기간은 한 가정에 5개월간으로 방문교육지도사 23명이 184가정을 지원하고 있다.

방문교육지도사 1명당 지원대상가정은 4가정으로 번갈아가며 집을 방문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우선 선정 대상은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 저소득 한부모가정 및 차상위계층, 부모 중 장애인이 있는 가정, 자녀수가 많은 가정, 기타 읍면 동장, 관련 민간단체가 추천하는 가정이 우선 선정대상이다.

여수시 여성문화회관에서는 집합교육이 가능한 여성들을 위한 한국어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레벨테스트 후 초․중․고급 및 시험대비반으로 나뉘어 매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이며 현재 120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내용은 전화·우체국·집안일·물건사기·수리·환불·명절·요리·미용실·옷·드라마·은행·세탁소 등 실생활에 유용한 항목을 골라 강의하고 있다. 기간은 15주.

방문교육지도사인 김씨는 "같은 여자로서 한국까지 왔는데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엄마로서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나침반 역할을 한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또한 열심히 가르쳐서 변화되는 모습을 바라볼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A씨가 가장 어려워하는 발음은 'ㄹ'발음이에요. 그리고 받침 있는 발음이 잘 안돼요. 놀이터를 놀리터, 우리 아들을 우릐로 발음해요. 그들 발음은 혀가 안으로 말려 들어가요."
  
인사를 마치고 혼자 집을 나섰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여전히 한글 교육에 열심이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오동도 갈 거예요."
"아니~ , 오동도에 갈 거예요. 에를 넣어야 해요. 알았지?"
"예."

다문화가정에 들어가기 전 불안했던 마음이 활짝 펴진다. 저렇게 친절하게 가르치면 조금씩 변화를 겪으며 언젠가는 화학적 결합까지 가능하겠지. 우리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어제까지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맑게 개 햇살이 눈부시다. 못자리를 앞둔 논에 물이 찰랑대고 앞산에 녹음이 푸르다. 농로 사이를 걷는데 자운영 꽃이 더욱 아름답다. 그녀의 얼굴에도 밝은 햇살이 비추기를 빈다.

덧붙이는 글 | 남해안신문과 큰 여수 봉사소식지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남해안신문과 큰 여수 봉사소식지에도 송고합니다
#다문화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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