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역에서 남북화해는 시작됐다

소말리아 해적 퇴치에 공동 대처해 남북화해 물꼬 터야

등록 2009.05.05 15:06수정 2009.05.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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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말리아 해역에 파병된 문무대왕함. 사진은 지난 3월 4일 오전 남해 해역에서 훈련을 벌이면서, 헬기가 가상의 해적선을 발견하고 돌진하는 모습이다.
소말리아 해역에 파병된 문무대왕함. 사진은 지난 3월 4일 오전 남해 해역에서 훈련을 벌이면서, 헬기가 가상의 해적선을 발견하고 돌진하는 모습이다.윤성효

봄이 오면 정말 강남 갔던 제비가 박씨를 물고 돌아오나 보다. 오랜만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소말리아 해역에서 말이다. 소말리아 해역에서 우리 해군의 구축함 문무대왕함이 지난 4일 해적선에 쫓기던 북한 선박을 구조했다는 뉴스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5월, 따뜻한 봄날과 함께 찾아온 훈훈한 소식이다. 날씨는 풀렸지만, 따뜻하기는커녕 무겁고 차가웠던 우리들 마음의 냉기가 소말리아 해역에서 불어온 훈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정치도 짜증나고, 경제도 어렵도, 남북관계도 불편한 상황에서, 소말리아 해역의 뉴스는 남북한 모든 국민들에게 감동적이고 멋진 일이다.

우리 해군의 활동은 국민의 군대가 어떻게 하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우리 해군은 세계 평화수호자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의 군대로서, 민족적 동포애의 보루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우리 해군에게 "수고했습니다!"라는 따뜻한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소말리아 해역의 감동적인 장면

우리 해군은 "유엔해양법에 따른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했다"고 밝혔다. 해군의 설명은 전적으로 맞는 말이고, 그 태도는 칭찬받아야할 훌륭한 자세다. 우리 해군의 구조에 대해 북한 선박의 선원들은 손을 흔들며 "감사합니다"는 고마움의 표시를 빠뜨리지 않았다.

"네, 감사합니다. 그냥 우리를 더 보호하겠습니까?"(북한 선박)
"네, 여기는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귀선이 안전할 때까지 계속 대기하고 있겠습니다."(우리 해군)
"네, 감사합니다. 항로 기간 중 계속 (교신) 좀 유지합시다."(북한 선박)
"한 시간만 더 항해하면 되겠습니다."(우리 해군)
"감사합니다. 좀 잘 지켜주십시오."(북한 선박)

소말리아 해역에서 이루어진 우리 해군과 북한 선박의 대화 내용이다. 얼마나 감동적인 현장인가. 인류 보편적 인도주의에 덧붙여 민족적 동포애가 물씬 풍기는 장면이다. 인도주의는 인도주의를 낳는다는 생생한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지나친 이념적 편견을 잠시 제쳐둔다면, 우리 사이에, 남북 사이에는 이처럼 인도주의와 민족적 동포애가 넘쳐흐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에게, 남북 사이에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인류보편주의에 기초한 인도주의와 민족적 동포애다. 그동안 쌓아왔던 남북 교류가 무너지고, 제3의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남북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은 인도주의와 민족적 동포애다. 인도주의와 민족적 동포애를 기반으로 서로의 신뢰를 차근차근 쌓아가면서, 남북 간의 상처를 보듬으며, 다시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우리 해군이 소말리아 해역의 북한 선박 호송 임무도 수행하면 어떨까


우리 해군과 북한 선박의 인도주의와 민족적 동포애가 이미 보여주지 않았는가. 남북한의 신뢰 쌓기와 군사적 긴장완화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이제는 남북대화의 물꼬를 다시 터야 한다.

우리 정부가 이런 제안을 하면 어떨까. 소말리아 해역을 항해하는 북한 선박에 대해서도 우리 해군의 문무대왕함이 안전 항해에 대한 보호임무를 수행해주겠다는 제의다. 남북간에 대화가 열리면, 남북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공동으로 해적을 퇴치하는 다른 방안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문무대왕함은 멀리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되어 우리 상선의 호송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그 해역에서 북한의 비무기 수송 상선의 보호임무를 추가 수행한다고 추가적인 비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설령 어느 정도 비용이 들더라도, 비무장 민간 선박에 대해서는 남북 간에 서로 최대한 안전을 보호해주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고, 남북 간 신뢰 쌓기와 교류 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봄 꽃게철을 맞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싸고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우리 민간 어선들의 예상치 못한 월경사태나, 남북한 함정의 우발적 월경에 따른 무력충돌을 막는 데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10월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 열렸으나, 북한에 대한 보수단체의 삐라 살포문제를 둘러싸고 결렬된 남북 군사회담 재개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남북 서로에게 부족했던 인도주의 자세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지난 1년간 빚어진 남북 교류 중단과 갈등 증폭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외부적으로는 임기 내내 대북 강경책으로 몰아갔던 부시 전 미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의 후유증이 영향을 미쳤지만, 남북한이 좀 더 이성적이고 차분한 자세를 유지했더라면 얼마든지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 교류협력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은 지난해 7월 예상치 못한 사태로 굳게 문이 닫힌 채 아직까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남한 민간 여행자에 대한 북한군의 총격사망 사건 처리과정에서 보여줬던 남북한 당국의 경직된 자세가 초래한 결과는 너무 크다. 문제 해결과정에서 인도주의와 민족적 동포애가 부족했다.

남한 민간여행자가 북한의 주장대로 설령 실수로 군사경계지역을 넘어갔더라도, 민간인 사망에 대해 북한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남한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의 사과를 요구하며 오히려 민감하게 반응했다. 남한 역시 북한의 총격이 고의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재발방지책과 교류를 병행하면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었음에도 지나치게 보수 세력을 의식해 유연한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남한 보수단체의 삐라 살포로 일어난 개성관광 전면 중단과 개성공단 폐쇄 위기 상황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남북 교류협력의 문에 완전히 빗장이 걸리는 셈이다. 늦기 전에 대화에 나서야 한다.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결코 해결하지 못할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북한은 무엇보다도 대화의 상대인 이명박 정부에 대한 "역도"라는 등의 노골적인 비방은 중단해야 한다. 서로의 정권에 대한 지나친 비방과 무조건의 적대적 행위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화의 상대는 미우나 고우나 북한은 김정일 정권이고, 남한은 이명박 정부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먼저 현재 한 달 이상 억류하고 있는 개성공단의 현대아산 직원에 대해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중대한 범법행위가 아니라면, 남북 경제교류를 위해 파견된 현대아산 직원에 대해 인도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이 현대아산 직원의 억류를 남북관계의 볼모로 삼으려 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인도주의적이고 민족적 동포애는 남북한 모두가 서로에게 보여줘야 할 기본자세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도 지난 1년 동안의 남북관계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비현실적인 '비핵개방3000 구상'을 폐기하고, 역대 모든 남한 정권들이 남북당국이 맺었던 협정을 인정했듯이 6.15와 10.4 선언을 인정해야 하며, 아무런 실효성도 없으면서 남북관계의 파탄을 불러올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가 정작 필요한 곳은 바로 남북관계다. '실용주의'가 지나친 이념이나 도그마에서 벗어나, 상식에 기초한 공리주의나 실증주의적 프래그머티즘이라면 말이다. 대화는 서로가 의견을 달리 하고,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무슨 대화가 필요하겠는가. 북한이 '비핵개방'을 하면 대화에 나서겠다고 하는 것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오히려 북한의 '비핵개방'을 이끌기 위해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철학과 신념이 있는 야당이라면

우리 정부가 남북대화에 나서도록 국민적 동의를 구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당의 적극적인 역할도 필요하다. 지난 94년 북한 핵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당시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특사파견을 제안해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문제 해결의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했던 사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민족문제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이 있는 야당이라면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모든 책임을 여당에만 떠넘기려는 정략적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 일부 냉전적 보수 세력에 둘러싸인 이명박 정부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도 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족문제에 있어서는 일부 보수 세력에 포위되어 있는 정부여당의 활로를 앞장서 열어주고, 정치적ㆍ이념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고리를 풀어주고,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야당이라고 먼저 차가운 물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런 야당이어야 분단 상황에서 국민적 신뢰를 받을 수 있다.

대화는 서로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때 필요한 것이며, 지난 남북대화의 역사를 되돌아 보더라도 위기 상황에서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 70년대 남북 간 무장공작원 파견과 90년대 북핵 위기 등으로 제2의 한국전쟁 발발이 우려되던 상황에서도 결론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72년 7.4 남북공동성명과 노태우 정권의 91년 남북기본합의서, 김영삼 정권의 94년 북미 제네바 협정, 김대중 정권의 6.15 남북공동선언, 노무현 정권의 2007년 10.4선언은 남북 간 대화의 상징물이다. 남한 정권의 이념적 성향과 상관없이 남북 갈등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남북 당국 간의 직접 대화였다.

소말리아 해역에서 이미 남북화해는 시작되었다

최근 북한은 장거리 로켓발사 시험이후 핵실험 재개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을 경고하고, 남한 정부는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방침으로 맞서면서 위기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남북 간 직접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화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남북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까. 소말리아 해역의 우리 해군과 북한 선박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남북대화의 바람은 저 멀리 소말리아 해역에서 불어오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되고,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지나치고 성급한 기대일까. 그래도 우울한 봄날에 기분 좋은 상상이지 않은가.

그래, 일장춘몽(한바탕의 봄 꿈)이면 어떠랴. 희망과 평화를 불러오는 기분 좋은 꿈인데. 꿈은 언젠가 현실이 되니까. 소말리아 해역의 따뜻한 남북화해에서 희망의 싹을 보았다.
#소말리아 해적 퇴치 #문무대왕함 #남북화해 #남북의 인도주의 #남북군사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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