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함께 잠시 갤러리 나들이를 나온 춘천의 한국놀이문화연구소의 김문식소장님
이안수
#4
작년 여름이 막 끝나갈 때의 일입니다. 처와 함께 홋가이도의 오타루와 사포르 인근의 캠프장을 둘러보는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위해 신치도세공항에서 항공기를 탑승했습니다. 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은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한 스튜어디스가 제 좌석으로 다가와 다소곳하게 허리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모티프원의 이안수선생님이시지요?"
저는 낯선 곳에서 제 이름까지 기억하는 아리따운 승무원의 인사를 받고 보니 적잖게 당황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의 뇌는 자동적으로 옆에 앉아있는 처에게 오해받을 만한 어떤 여자와의 과거가 있었던가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 승무원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도 저의 기억으로는 도무지 인연을 기억해낼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이 몇 초간 이어졌습니다. 그 사정을 눈치 챈 그 분이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작년, 저는 4명의 친구들과 모티프원을 방문했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는 제가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저희 회사의 승무원 유니폼에 대해 의견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때서야 그 기억을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모티프원을 방문한 네 숙녀들과 잠시간의 수다 중에 한 사람이 제가 간혹 이용하는 항공사의 스튜어디스임을 알게 되었고 저는 무심코 그 회사의 유니폼에 대해 평소에 느꼈던 제 생각을 얘기했던 터였습니다.
"승무원 복장은 승객에게 뽐내려고 입는 것이 아닙니다. 그 디자인은 승객의 입장에서는 너무 도도하고 서비스에 치중해야하는 승무원의 입장에서는 너무 불편할 듯합니다. 스카프는 너무 길고 비녀 핀은 너무 두드러집니다. 재킷과 스커트는 비행시간 내내 격무를 견드야 하는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승무원은 모델이 아닌 만큼 맵시와 아울러 편의성이 고려되어야합니다."
자부심으로 입었을 그 유니폼에 대해 제가 느꼈던 생각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말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당사자의 입장을 생각지 못한 경솔한 처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제가 말을 마친 뒤였습니다.
"사실 좀 불편하긴 해요. 하지만 워낙 유명한 지안 프랑코 페레의 디자인이라……."
그녀가 한 대답은 방어에 비중이 실린 소극적인 한마디였습니다.
"편안한 여행하세요. 다시 뵙겠습니다."
그리고 인천까지의 두 시간 남짓한 짧은 비행 후 착륙이 임박할 때였습니다. 그녀가 다시 다가와 항공기의 큰 면세품 쇼핑백을 내밀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다른 섹터의 담당이라 선생님을 각별하게 직접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 항공기를 탑승해주신 것과 이렇게 다시 대면한 기쁨에 대한 작은 선물입니다. 기내라 특별히 준비 된 게 없습니다."
그녀가 내민 봉투 속에는 작은 모형항공기와 여러 개의 볶음고추장 튜브 그리고 맥주가 서비스될 때 함께 나오는 비스킷과 가공땅콩봉지들이 소복이 담겨있었습니다.
여태 그 고추장튜브와 작은 땅콩봉지가 잊히지 않는 것은 그것이 그녀가 항공기내에서 조달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었고, 그것으로 저는 그녀가 제게 베풀고자하는 정성의 크기와 간절함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대한항공의 염유정 승무원입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자랑삼으면서 모형비행기는 그것에 호기심을 보이는 지인의 자녀에게 선물하고 볶음고추장은 저의 자랑을 인내심을 갖고 들어준 분들께 두세 개씩 선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