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조선일보의 성고문 보도- 언론도 공정성을 잃었다.
권영숙
제가 개성 있는 아이로 선생님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다 제 일기 덕분입니다. 성당 주보에 실린 글 중에 시사성이 있거나 괜찮다 싶은 글은 일기장에 스크랩하고 그 옆에 제 나름의 생각을 적어놓곤 했었거든요.
스크랩한 글들 중에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인권 회복을 위한 강론 말씀도 있었고,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글도 있었고, 의문사로 죽어가는 대학생들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 등 사회적인 글들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은 일기 검사를 하시면서 사인을 해주실 때 제게 "이것만 읽으마" 하시면서 한참 제 일기장을 들고 읽으셨습니다. 다 읽으신 후에는 알 듯 모를 듯,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계속 해라"라고 하셨지요. 계속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무얼 의미하는지 묻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을 감안하건대 대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커밍아웃... 교장께 보낸 나의 '장문의 편지'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선생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겨레>에 실린 전교조 성명서에 동의하는 사람 명단에서 선생님의 이름을 본 순간 가슴이 찡했습니다. 따뜻하게 웃어주던 그 해맑은 웃음을 다시는 학교에서 볼 수 없는 건 아닌지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고민고민하다 교장선생님 앞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이신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썼습니다. 참다운 스승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시기에 그 학교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분이라고 간곡히 썼습니다. 솔직히 교장 선생님을 엄청 싫어했지만 존경한다고 '뻥'을 쳐가며 열심히 썼습니다. 다행히 선생님은 제 편지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해직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후, 딱 한 번 선생님을 뵙게 되었는데 명동성당 앞 집회에서였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제 두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그때는 스승과 제자가 아닌 함께 길을 가는 동지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날 선생님께서 잡아 주신 두 손의 느낌. 제게 바른 길로 가라고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재작년, 미루고 미루던 숙제를 하듯 전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늘 '한 번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라고 생각만 한 것이 어느덧 스무 해를 훌쩍 넘겼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흔한 이름을 가진 저였음에도 저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20년만에 선생님께 편지를 썼어요"너 학교 옆 권영숙이지? 네 성격에 사회 활동 열심히 하지? 너의 그 밝음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기 바란다."선생님께서는 장난 잘 치던 절 밝고 명랑한 아이로 기억하셨습니다. 나름 진지한 면도 많았는데 말이죠. 저는 선생님께서 권해주셨던 길로 비록 가진 않았지만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떠겠냐는 그 한마디가 제 인생에서 나침반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성적이 아닌 다른 재능을 인정해주지 않을 때 선생님은 학생의 있는 그 모습만 가지고 이해해주셨습니다. 또 인생을 살 때 어떤 삶이 좀 더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탬이 되는 삶인지 선생님의 당당한 모습에서 보고 배웠습니다.
스승의 날입니다. 대체로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이 근사하게 차려입고 학교를 방문하던데 저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출세했으니 명함 들고 한 번 찾아뵐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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