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판사회의가 전국 법원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잇따라 열린 회의결과도 신영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더욱 강경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압박 수위가 갈수록 거세지는 양상이어서, 신 대법관의 향후 거취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 주목된다.
특히 15일 열린 서울동부지법 단독판사들은 "신 대법관으로 인해 후배판사의 자긍심이 심각하게 훼손됐고, 신 대법관의 사과로는 훼손된 판사의 자긍심을 회복하기에 미흡할 뿐만 아니라, 절대 다수는 신 대법관이 직무를 수행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쐐기를 박아 신 대법관을 궁지로 내몰았다.
주말을 넘기고 월요일부터 여러 법원에서도 단독판사회의가 잇따라 열릴 예정이어서 이번 주말과 다음 주 월요일이 신 대법관의 거취에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서울남부지법 단독판사들이 시작
단독판사회의를 시간차별로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처음 열린 서울남부지법 단독판사 29명은 14일 오후 청사 중회의실에서 이은희 판사(사법연수원 23기) 주재로 단독판사회의를 개최하며 수뇌부를 잔뜩 긴장시켰다.
회의결과 "신 대법관의 행위가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발표처럼 사법행정권 행사의 일환이라거나, 외관상 재판간여로 오인될 수 있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법관의 독립에 대한 중대하고도 명백한 침해행위로서 위법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로 인해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촛불재판 관여'라는 조사결과 발표 후 이용훈 대법원장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고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한 점을 감안하면 외형상은 진상조사단의 결정보다 후퇴한 결론을 내린 윤리위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비칠 수 있으나, 사실상 대법원장도 함께 겨냥한 것이다.
단독판사들은 또 대법원장의 엄중경고와 신 대법관의 사과문 발표에 대해서도 "대법원의 조치와 신 대법관의 사과가 이번 사태로 인해 침해된 재판의 독립과 실추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 부족하다"며 마뜩찮아 했다.
그러면서 "신 대법관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추후 지속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즉, 이들 판사들은 신 대법관의 행위가 위법하다는 분명한 견해을 밝히면서도 거취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말을 아낀 것.
이들은 오히려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자괴감을 느끼고, 개개 법관들이 재판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한다"고 밝히며, "앞으로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한다"고 다짐했다.
이는 신 대법관을 비롯한 사법부 수뇌부를 대신해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통해 우회적인 방법으로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판 목소리 커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서울남부지법의 단독판사회의가 끝난 뒤인 14일 오후 6시 30분께 서울중앙지법 1층 대회의실에서도 단독판사 116명 중 88명이 참여한 가운데 자정 무렵까지 격론이 벌어졌다.
6시간 가까운 마라톤 회의 끝에 내놓은 결과는 "신 대법관이 대법관의 직무를 수행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점에 관해 논의가 있었는데, 다수 판사들의 의견은 부적절하다는 견해였다"는 '깜짝 카드'였다.
앞서 서울남부지법 단독판사들이 내놓은 회의결과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특히, 법관이 다른 법관의 진퇴를 촉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대 여론을 감안해 '표현' 수위를 조절한 것일 뿐 사실상 신 대법관에게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신 대법관의 행위에 대해서도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 시 개별, 구체적 사건에 대한 보석 자제 및 현행법에 의한 처리 독촉 등 일련의 행위가 법관의 재판권에 대한 간섭이라고 결의했다"며 구체적으로 꼬집었다.
또 "신 대법관이 개별, 구체적 사건에 관해 한 임의배당은 사건 배당에 관한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이라고 못 박으며, 신 대법관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의 조치와 신 대법관의 사과가 이번 사태로 인해 침해된 재판의 독립과 실추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데 미흡하다"며 이 대법원장과 신 대법관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신 대법관 '사퇴' 결정판은 서울동부지법 단독판사회의
결정판은 서울동부지법 단독판사회의에서 나왔다. 15일 단독판사 23명 중 16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 동안 열린 회의에서 단독판사들은 공세의 수위를 한층 높여 신 대법관을 거세게 압박했다.
이날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는데, 대표간사를 맡고 있는 이정렬 판사가 회의결과를 공개했다.
내용을 보면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 시 촛불사건 재판에 대해 행한 일련의 행위가 재판권에 대한 간섭이고, 그로 인해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후배 법관들의 판사로서의 자긍심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서울남부지법과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결과보다 신 대법관을 더욱 압박하게 만들고, 아울러 사법부 수뇌부를 경청하게 만드는 문구가 등장한다. 바로 "후배 법관들의 판사로서의 자긍심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주장한 것.
또 "신 대법관의 재판권에 대한 간섭행위를 사법행정권의 행사로 본 대법원의 인식과 그에 따른 조치 및 신 대법관의 사과가 이번 사태로 인해 침해된 재판의 독립성과 실추된 사법부에 대한 신뢰 및 훼손된 판사의 자긍심을 회복하기에 미흡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쐐기를 박았다.
'훼손된 판사의 자긍심을 회복하기에 미흡하다'는 대목 역시 눈에 띈다. 이는 대법원장의 '엄중경고' 조치와 신 대법관의 사과 표명으로는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함량미달'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대법원장을 직접 겨냥했다. 덧붙이자면 경고와 사과 수순으로 이번 사태를 수습하려 했던 수뇌부의 의중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
그러면서 단독판사들은 "우리의 절대 다수는 신 대법관이 더 이상 대법관의 직무를 수행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고, (다만) 신 대법관의 진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경청했다"고 밝혔다.
'신 대법관의 직무 수행 부적절' 부분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은 "대부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서울동부지법 단독판사들은 "절대다수"라는 표현을 쓴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신 대법관을 불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들 판사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뇌부도 겨냥했다. "이번 사태가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발탁제도 등 법원의 관료화를 심화시키는 법관인사제도에서 비롯됐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며 법원 내에서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고법 부장판사 승진발탁제도도 직접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향후 재판권에 대한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침해 및 사법부 관료화의 방지를 위해 대법원이 전국 법관들의 내부의견수렴을 거쳐 시급히 명확한 제도개선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다음 주 월요일 신 대법관 거취 분수령 될 듯
이렇게 단독판사회의가 거듭될수록 신 대법관에 대한 사퇴의 압박 수위가 더욱 거세지고, 이 대법원장도 '세트'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어 신 대법관의 고민은 더욱 깊게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또 주말을 넘기고 월요일부터 여러 법원에서도 잇따라 단독판사회의가 열릴 예정이어서 이번 주말과 다음 주 월요일이 신 대법관의 거취에 최대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편, 서울북부지법 단독판사회의도 15일 오후 5시30분부터 비공개로 열리고 있어 어떤 회의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이 회의에는 법관생활 11차로 침묵했던 판사라고 자신을 밝히며 14일 법원내부통신망에 "사법부를 보호할 든든한 방패로 믿어왔던 대법원장의 신뢰에 큰 금이 오기 시작했다"며 실망감을 표현한 변민선 판사(사법연수원 28기)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