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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 꽃향기 가득한 시절입니다. 이즈음 마을 숲 입구에는 양봉업자가 찾아와 진을 칩니다. 소만 절기를 느끼는 또 하나의 진풍경이지요. 아까시 꽃향기만 진한 게 아닙니다. 찔레꽃 향기도 아까시 못지 않지요.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향이 진하지 않아도 곤충이 알아서 찾아오겠지만 이렇게 녹음이 짙어지고 저마다 꽃을 피우는 초여름에는 꽃송이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진한 향기라는 미끼를 던졌겠지요.
곤충들은 진한 찔레 향기에 취해 꿀과 꽃가루를 얻었겠지만, 옛날에는 찔레꽃이 필 이 즈음이 가장 넘기 어렵다는 보릿고개였답니다. 입하에서 소만이 이르는 바로 이 시기지요. 배고팠던 시절, 찔레 순을 꺾어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보지 못했던 제 세대를 넘어 그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보릿고개'를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얘들아, 보릿고개가 뭔지 아니?"
시원스레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지난해 농사지었던 곡식이 다 떨어지고 새 곡식을 추수하기 전까지 대다수의 사람이 굶주리며 칡뿌리나 나무껍질 같은 것을 벗겨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다는 설명에 이렇게 묻습니다.
"쑥 뜯어다가 쑥떡 해 먹으면 되잖아요?"
"쑥떡은 쌀이나 쌀가루가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확인하게 되는 것은 '보릿고개'가 배고픔을 모르는 이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태산보다 높은 보릿고개다.
나락 이삭 끝을 보고는 죽지만 보리 이삭 끝을 보고는 죽지 않는다.
보릿고개에는 딸네 집도 가지 못했다.
사월 없는 곳에 가서 살면 배는 안곯겠다.
삼사월 손님은 꿈에 볼까 무섭다.
소만이 지나면 보리가 익어간다.
소만과 관련된 속담을 찾아보면 대부분 배고픔과 양식이 떨어진 상황에 대한 어려움을 표현한 것들입니다. 보릿고개를 넘기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었기에 태산보다 높다고 합니다. 아무리 반가운 손님이라도 달갑지 않아, 아버지가 딸네집에 들르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오죽했으면 사월 없는 곳에 가서 산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바로 이 시기에 들판에 보리가 익어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희망의 싹입니다. 나락 이삭 끝을 보고는 죽지 않지만 보리 이삭 끝을 보고는 죽지 않는 것은 나락 이삭은 팬지 40일이 지나야 먹을 수 있지만 보리 이삭은 20일만 지나면 보리죽이나 찐보리밥을 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소만' 절기가 지나 보리 익기만을 기다렸던 것이지요.
이런 속담을 찾아보고 속담에 담긴 뜻을 이야기하면서 요즘 아이들 생활과 관련된 새로운 속담을 지어보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소만에도 배고픈 줄 모른다.
소만에 고기반찬 안나온다고 투정한다.
소만에 칠팔월 더위 걱정한다.
소만에 물놀이 생각난다.
소만 더위에 일 못한다.
소만에 냉장고 얼음 동난다.
배고픔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보릿고개 얘기를 듣고 나니, 학교에서 '고기반찬'이 안나온다고 투정했던 것이 생각난 모양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대한 내용입니다. 27도를 웃돌았던 날씨에 벌써 지친 듯합니다.
당장 배를 곯지는 않지만 보릿고개가 아닌 이 시대 음식 문화를 생각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먹을거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온갖 패스트푸드와 화려한 색소와 화학첨가물로 맛을 낸 음식들, 이것에 길들여져 소박한 자연식 밥상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일지 모르지만 마을학교 아이들은 찐감자, 옥수수, 구운 가래떡을 날마다 간식으로 먹으면서도 물려하지 않는 건강한 아이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배 곯지 않게 해 주는 이 시대의 농사꾼에 대한 영상물을 함께 보았습니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부들을 돕는 살아있는 제초제 우렁이, 벼물바구미를 잡아먹는 오리, 땅을 기름지게 하는 실지렁이, 해충을 잡아 먹는 거미, 풀을 못자라게 해주는 개구리밥 같은 다양한 논속 생물에 대해 배운 거지요. 영상을 다보고 나서 아이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실지렁이, 우렁이도 농사꾼! 오리도, 거미도, 많은 생물들도.
여러 생물들이 유기농 농사를 지어주어서 고맙다.
실지렁이 때문에 밥을 먹을 수 있구나!
내가 싫어하는 벌레 때문에 밥을 먹을 수 있다니!
논 속에 사는 생물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생명이 참 소중하다.
농사는 혼자서 하면 안되는구나!
비록 배고픔이 무엇인지, 보릿고개가 어떤 건지 체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싫어하던 곤충들이 모두 농사 짓는 농사꾼이었다는 깨달음 앞에, 농사는 농부 혼자서 짓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앞에, 아이들도 저도 정직하게 서서 감사한 마음으로 밥 한술 입에 넣어 꼭꼭 잘 씹어 먹는 일상의 배움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마을학교 춤추는방과후배움터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잡은 대안학교입니다. 매주 수요일 절기 공부를 하며 우주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절기 공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환경교육현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2009.05.22 09:28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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