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원의 잇따른 판사회의로 사실상 용퇴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에 대해 야당이 탄핵소추발의를 추진하려는 가운데, 대학교로는 처음으로 연세대 총학생회가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장소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정문.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은 예상치 못한 극도의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연세대 총학생회의 '신영철 대법관의 탄핵소추에 동의하며, 신 대법관의 즉각 사퇴를 촉구한다'는 기자회견을 원천봉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먼저 22일 오후 2시 대법원 정문 앞에서는 보수국민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한어버이연합 등 227개 보수단체에서 나온 회원 140여 명(경찰 추산)이 모여 '노무현 낙하산 이용훈 대법원장 퇴진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수단체들이 전에도 이곳에서 다른 단체와 물리적 충돌 등 과격한 행동을 보인 때문인지 이날 경찰 2개 중대(경찰버스 6대)가 대법원 정문 안쪽과 기자회견장 주변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오후 2시 30분에는 연세대 총학생회가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다. 기자회견 시간이 가까워지자 서초경찰서에서 나온 형사들 사이에 '연세대 총학생회' 얘기가 오가며 무전기가 바빠졌다. 이곳에 있던 보수단체 회원들이 학생들의 기자회견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보수단체의 기자회견은 2시 40분경에야 끝났다. 마침 연세대 총학생회 간부 몇 명이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대법원 정문으로 모이기 시작하자 이내 현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충돌을 우려한 경찰과 대법원 경비대의 움직임은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보수단체 회원들은 학생들을 보자마자 신영철 대법관 사퇴를 촉구하러 온 것을 알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며 일순간 험악한 분위기로 변했다.
보수단체, 대법원 정문 앞 연세대 총학생회 기자회견 가로막아
다음은 기자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보수단체 회원들의 말을 기자수첩에 적은 것들이다.
"대가리 피도 안 마른 놈들이 버르장머리 없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왔어. 나도 자식 둔 사람이지만 참 한심하다."
"너희들 까불지 마, 현수막 들면 죽어. 여긴 대한민국이야, 빨갱이 이북이 아냐."
"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 젊은이들이 공부는 안 하고, 뭘 알고 이러는 거야. 이용훈 나오라고 해."
이렇게 보수단체 회원들이 곳곳에서 삿대질을 하며 일순간 퍼붓자,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연세대 총학생회 대표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상황이 순식간에 급변하자 경찰들은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며 충돌을 차단하는 신속함을 보였고, 그제서야 학생들은 안도할 수 있었다.
보수단체 회원들의 목소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신 차려 이놈들아. 나라를 흔들어 놓을 자식들이야 저놈들이. 태극기를 가지고 떳떳하게 말해봐 이놈들아. 태극기에 대한 맹세를 알아? 니들 부모들이 불쌍하다"며 혀를 찼다.
또 "육법전서를 제대로 읽기나 했어, 너희들이 뭘 안다고. 그래 방해 안 할 테니까 뭐라고 하는지 한 번 해봐라. 한번 지껄여봐"라고 다그치기도 했고, "너희들이 노무현한테, 김대중한테 속고 있는 거야. 어른들이 점잖게 얘기할 때 집에나 돌아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3시 15분께 연세대 총학생회는 기자회견을 열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지 않자, 일단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곳을 떠날 때까지 잠시 기자회견을 미루기로 하고 경찰들의 보호 아래 다른 곳으로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정문 앞에 박준홍 총학생회장만이 남고 다른 학생들이 자리를 떠나자,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학생들을 뒤따라가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경찰이 이를 제지해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때 보수단체 회원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라를 생각해야지. 지금 돈 몇 푼 받아먹고 이러는 거냐. 진짜 니들이 김대중하고 노무현한테 놀아나는 거야"라며 자리를 떠나는 학생들에게 삿대질을 했다.
다른 회원이 "쟤네들이 가남. 갔다 다시 오지. 기자들도 여기 있잖아. 다 한패인데. (기자회견 못하도록) 여기서 밤 9시까지 지켜야 해"라고 말하자, "맞아. 여기서 지켜야 해", "여기서 밤 홀딱 새우자"라고 거들기도 했다.
또 다른 회원은 경찰을 향해 "경찰들도 잘못이야. 쟤네들이 이렇게 하게 놔둬선 안 되는데"라며 혀를 끌끌 차고는 "다~ 니들이 걱정돼서 이러는 거야. 알기나 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회원들은 더욱 격앙된 목소리로 "노무현하고 김대중 잡아 죽여. 법관들이 쟤네들 말 들으면 법관자격이 없는 거야. 판검사들 다 나오라고 해. 판사나 검사 죄다 구속시켜 버려"라고 흥분했다.
한 회원은 혼자 남아 있던 박준홍 총학생회장에게 "여기 모인 사람들은 최하가 75세가 넘었다. 이런 거 하지 마"라고 그중 점잖게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던 박 총학생회장은 다른 곳으로 가 있던 간부들과 전화연락을 취하고 기자회견 장소를 옮기는 방안도 고려하며 분위기를 살폈다. 경찰도 보수단체와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 학생들에게 대법원 동문으로 조용히 옮겨 기자회견을 여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박 총학생회장은 당초 계획대로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고, 간부들에게 긴급 연락을 취했다. 3시 45분께 학생들이 정문 앞으로 다시 돌아오자 보수단체 회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경찰도 학생들을 보호하기 시작했고,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려 했던 9명 중 5명이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신영철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촉구한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펼치자 보수단체 회원들은 "총학생회가 전부 이거야. 아이구 낯짝들이 있어야지, 연세대가 창피하다"며 야유를 보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이 확성기를 잡고 기자회견을 시작하자, 보수단체 회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와~, 야~"라는 함성에 찬 야유를 보내며 기자회견을 방해했다. 박 회장 등 3명은 마이크를 돌아가며 잡고 기자회견 배경과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15분가량 진행된 기자회견을 마친 학생들은 경찰과 대법원 경비대의 보호를 받으며 현장을 빠져 나와 다행히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을 피했다. 이때 한 보수단체 회원은 뒤따라오며 "니들 연세대학생 맞아. 학생증 있냐. 내놔봐라"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오후 4시경 보수단체 회원 수십 명에 둘러싸여 욕설과 야유까지 받으며 긴장감 속에 진행된 기자회견을 마친 학생들은 현장을 빠져나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학생들은 예상치 못했던 보수단체 회원들의 거센 방해를 겪은 후, 마치 홍역을 무사히 치른 것처럼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기자는 학생들과 함께 대법원 동문으로 이동해 박준홍 총학생회장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 경찰과 대법원 경비대원들은 보수단체 회원들과 물리적 충돌 없이 학생들이 무사히 귀가할 수 있도록 끝까지 보호해 줘 눈길을 끌었다.
박준홍 총학생회장 "대법원장이 명확히 사태에 책임져야"
기자와 따로 만난 박준홍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기자회견 배경에 대해 "신영철 대법관의 이번 사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부 전체의 독립성을 저해하고 침해하는 심대한 사안이라고 생각해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가로막은 것에 대해 "약간 당황하긴 했는데 그래도 기자회견이 잘 진행된 것 같아 다행"이라며 "다소 마찰이 있었던 것은 아쉽지만 대학생들이 이런 사안에 대해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생들이 신 대법관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 것은 저희가 처음"이라며 "앞으로 다른 대학들과 연계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특히 "신 대법관이 각 재판부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아직까지 즉각 자진 사퇴하지 않는 것은 명백하게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위"며 "윤리위에서 어떤 직접적인 대책이나 징계가 없었던 것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명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러면서 "야당에서 탄핵소추안 발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신 대법관이 즉각 자진사퇴하는 것이 옳다"며 "이용훈 대법원장이 좀 더 명확하게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같이 지는 것이 옳고, 일단은 신 대법관이 즉각적으로 자진사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연세대 총학생회 "국민 여론과 야당에 탄핵되기 전에 자진사퇴"
연세대 총학생회는 기자회견에서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할 때 촛불집회와 관련해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 연세대 총학생회는 심각한 유감을 표함과 동시에 신 대법관의 즉각 사퇴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신 대법관의 압력행사는 사법부 정의와 각 재판부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로, 이는 나아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인 삼권분립의 원칙마저도 무너뜨릴 수 있음이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또 "신 대법관은 판사들에게 기본적으로 보장돼야 할 평등과 독립의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했고, 그러나 사법부는 단지 엄중경고와 유감을 표하는 선에서 흐지부지 넘어가고 있다"며 "이 같은 사태에 자진사퇴하지 않고 사법부에서 묵인한다면 민주주의 정신에 금이 가는 것을 팔짱끼고 지켜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학생회는 "만약 신 대법관이 자진사퇴하지 않는다면 그의 잘못이 사법부 내의 흠으로 끝나지 않고 민주주의 기본정신을 해하는 행위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앞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원칙을 침해하는 더 큰 문제를 계속해서 발생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더욱이 소장 판사들과 일선 변호사들이 사법개혁과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가운데 그가 자진사퇴하지 않는다면 5차 사법파동을 불러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며 "국민의 여론과 야당의 압력에 의해 탄핵되기 전에 자진 사퇴해 사법부의 독립성과 민주주의의 평등과 독립의 원칙을 더 이상 훼손시키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고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보수단체] "노무현 낙하산 이용훈 대법원장 즉각 퇴진" "박시환 대법관 퇴진"
한편, 보수국민연합과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227개 참여 보수단체 회원 140여 명은 이날 대법원 청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무현 낙하산 이용훈 대법원장은 즉각 퇴진하고, 사법부 파동 조장하는 박시환 대법관은 즉각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근 사법부는 지난해 무법천지로 만든 불법촛불 난동세력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에 대해 법에 따라서 당당하게 재판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상 사법행정절차에 따라 철저히 재판하려고 한 신영철 대법관을 인민재판식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온 국민들은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불법적인 '떼법'의 집단행동을 통해 사법부 질서를 파괴하는 행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노무현 낙하산 이용훈 대법원장은 부끄러움을 알고 즉각 퇴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무엇보다 좌파정권과 고락을 같이한 이 대법원장은 현 정권과 괴리감을 감안해서라도 남은 임기에 연연하지 말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명예롭게 퇴진하는 것이 그동안 우리법연구회 소장 판사들과 짜고 사법부를 떼법 파동으로 조장한 책임을 사법부 역사 앞에 사죄하는 길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신 대법관이 촛불재판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실추된 사법부의 명예를 회복하자면서 인민재판식 여론몰이를 벌이고 있는 박시환 대법관을 비롯한 소장 판사들은 오히려 법관의 명예를 더욱 실추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떼법은 스스로 국민들의 신뢰를 더욱 무너뜨리는 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법부의 독립을 주장하면서도 우리법연구회 등 소장 판사들 스스로 소신 있는 신 대법관의 엄중한 촛불재판을 빌미 삼아 불법적인 집단행동으로 재판의 독립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사법부의 혼란을 획책하는 심각한 사태이며, 이러한 사법부 파동을 조장하는 박시환 대법관은 대국민 사죄를 하고 즉각 퇴진할 것을 촉구한다"고 외쳤다.
또 "무엇보다 국민들은 질서를 무시한 판사들의 집단행동으로 떼법천지가 된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사법부의 오랜 악습과 관행 등 구조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대법원장을 비롯한 소장 판사들이 모든 죄를 신 대법관에게만 뒤집어씌우고 재판과 인사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태를 결코 국민들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그러면서 "노무현 낙하산 이용훈 대법원장은 즉각 퇴진하라" "사법부 파동 조장하는 박시환 대법관 즉각 물러나라" "사법부 근간 흔드는 좌경떼법판사 몰아내자" "불법촛불 난동세력 비호 우리법연구회, 민변, 민생민주국민회의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연신 외쳤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자유시민연대도 성명을 통해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대법관 박시환은 젊은 법관들을 선동하지 말라"며 "국회는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는 정치법관 박시환을 탄핵소추하고, 사태를 방치한 이용훈 대법원장은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박 대법관은 2차, 3차, 4차 사법파동 논쟁을 야기한 핵심 인물이며, 법원 내 특정이념을 선호하는 진보성향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주도적으로 만든 자이고, 또 2003년 대법관 인선에서 탈락하자 불만을 품고 법원에 사표를 지고 2005년 노무현 정권에 의해 대법관이 된 자"라며 "동료 대법관을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언론플레이가 과연 사법권독립에 도움이 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 대법원장은 더 이상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지 말고, 적법한 사법행정권을 행사한 신영철 대법관의 거취와 관련해 소신 있는 입장을 표명해야 하고 여론과 특정 진보성향 판사들의 눈치를 보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2009.05.22 22:19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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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와 대립한 연세대 총학 "신 대법관 사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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