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분향소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남소연
[최종신 10신: 25일 밤 9시 50분] 뜨거운 땡볕도 아랑곳 않고 추모 이어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3일째가 되는 25일. 공식 분향소가 설치된 서울역 광장과 서울역사박물관에는 날이 저물도록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밤 9시 현재 서울역 분향소에는 8300명이,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에는 6638명이 찾아와 고인을 추모했다. 아직도 시민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분향소가 24시간 동안 계속 열리는 만큼 서울 정부 분향소를 방문한 분향객들의 수는 1만5천 명을 훌쩍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조문객들은 특정 연령대나 계층을 넘어섰다. 양복을 입은 직장인과 한복 차림의 노인,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등이 나란히 노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시시때때로 오열과 통곡 소리가 터져나왔지만, 분향은 별다른 구호 없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최고 기온이 29℃까지 올라간 뜨거운 땡볕 아래서도 시민들은 차분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이날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었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불공정한 정치적 보복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밤 늦게 가족과 함께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를 방문한 장아무개(38)씨는 "치사하게 개인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수사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께서 본인에게만 힘겨움이 안겨졌다면 싸우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분답게 가족과 측근들의 힘겨움을 자기가 모두 안고 떠나신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신을 알게 돼 행복"... 19권 채운 추모의 글시민들의 애끓는 심정은 분향소 곳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서울역 분향소 한켠에 매달린 하얀색·노란색 리본에는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는 글귀가 적혔다.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를 방문한 시민들은 무려 19개의 추모방명록에 "님께서 가신 바보의 길, 누군가 또 길을 가면 버팀목이 되겠습니다", "당신을 알게 되어서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등의 '추모사'를 헌정했다.
한편, 서울역 앞 분향소는 일반 시민들이 주를 이뤘고, 서울역사박물관 앞 분향소에는 정계 인사들도 조문을 했다.
봉하마을에서 박대를 받았던 한승수 국무총리와 박근혜·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정치검찰'이라는 비난을 듣고있는 임채진 검찰총장도 서울역사박물관 앞 분향소에서는 조문을 할 수 있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이강국 헌법소장, 캐서린 스티븐슨 주한 미국대사 등도 잇따라 분향소를 찾았다. 반면 서울역 앞 분향소에는 민주당 의원들만 상주 역할로 분향소를 지키면서 시민들을 맞았는데, 한켠에는 '한나라당 조문 반대'라는 피켓이 내걸리기도 했다.
[9신 - 서울역사박물관] 이상득 "명복을 빌 수밖에 없다"저녁 7시 퇴근시간을 넘기자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시민들의 행렬은 어느 새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부터 서울역사박물관 광장 끝까지 약 150m 넘게 이어져 있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를 방문한 분향객의 수는 4836명이다.
어린 아들·딸들의 손을 잡고 나온 아주머니부터, 일터에서 나온 직장인들, 수업을 마치고 나온 여고생들까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의 염을 올리고 있다.
북가좌동에서 10살, 7살, 5살 난 아들·딸과 함께 나온 김경화(36)씨는 "아직까지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믿어지지 않는다"며 "노 전 대통령께서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간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분향소가 어디이든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진 않다"며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서민 대통령이었던 만큼 서민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시청 앞 서울광장을 여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11살 난 아들과 함께 분향을 마치고 나온 고연선(45)씨는 눈물이 채 마르지 않았다.
고씨는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는 뭐라고 말도 못할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며 "그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계속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 전 대통령께서 하시고 싶었던 말씀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 국민장을 치르는 동안 누가 죄인이냐 따지지 말고 그 뜻을 되새긴다면 노 전 대통령께서 세상은 떠나셨지만 가슴 속에서 살아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씨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벌을 주는 이유는 실수를 깨우치고 다시 바르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벌이 그를 넘어 한 개인을 압도해버리는 보복의 의미가 돼선 안 된다"고 검찰 수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