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토)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인터넷 포털에서 당신이 입원했다는 기사 제목을 봤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검찰 수사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나보다 했습니다.
그러다 오전10시쯤 부모님을 보기 위해 본가 들렀습니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저에게 아버지는 침통한 목소리로 당신이 운명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싸해지면서 온 몸에 피가 증발해 버리는 듯 했습니다. 우두커니 선 채로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속보를 멍하니 지켜봤습니다. TV에서는 당신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이윽고 유서가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TV와 인터넷에는 당신의 죽음을 확인해 주는 기사들이 넘쳐났지만 그래도 저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모진 시련과 역경을 정면으로 돌파해왔고, 실패와 좌절 앞에서는 특유의 근성으로 다시 일어서왔던 당신이었기에 저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온 몸에 피가 증발해 버리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TV에서 당신이 잠든 관이 옮겨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깊은 고뇌와 슬픔으로 써 내려갔을 당신의 유서를 확인하면서 이것이 현실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졸렬한 방법으로 당신이 쌓아 올린 것들을 하나 둘씩 허물어뜨린 이명박 정권, 재벌총수 앞에서는 한 없이 너그러우면서도 당신에게는 비열하리만치 가혹했던 검찰, 그리고 그런 정권과 검찰을 감싸며 당신에게 칼을 꽂았던 보수언론 등 당신을 죽음으로 내 몰았던 이들과 비정한 현실에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일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화가 나고 원망스러운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허망하게 스러져서는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002년 당시 저는 정치를 몰랐습니다.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며 냉소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당신을 알게 되었고, 여느 정치인과 다른 당신의 정치 역정을 보면서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당신이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정치가 주는 큰 감동을 처음으로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구세력들이 당신을 탄핵하려 할 때도 그랬습니다. 저는 분노했고 당신을 지키기 위해 뜨거운 열정으로 촛불을 밝혔습니다. 비단 저뿐만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수많은 이들이 당신을 통해 벅찬 감동을 맛보았고, 당신에게 열정적으로 희망을 걸었습니다.
당신 스스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는 증거가 되고 싶다'고 했듯이 저를 비롯한 많은 보통사람들 역시 그래 주길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진정한 보통사람들의 상징이자 대표선수였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쓰러져서는 안 될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버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가슴 뜨거운 사람이 기득권에 빌붙지 않고, 야합하지 않고 끝까지 대항했을 때 맞이하게 되는 최후를 보는 듯해 가슴이 미어집니다. 벌겋게 달아오른 두 눈에서 슬픔과 노여움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애써 부여잡고 있던 희망의 끈을 이제 그만 놓고 싶어집니다. 결국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절망이 엄습합니다.
당신은 함부로 쓰러져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다시 하염없이 TV 뉴스를 바라봅니다. 당신을 위해 눈물 흘리는 이들이 보입니다. 조문객이 수 십 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들이 토해내는 통곡이 마치 '사자후' 같습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한 당신의 마지막 말을 곱씹어 봅니다. 끝과 시작이 맞닿아 있듯 지금 울려 퍼지는 절망적인 통곡 역시 새로운 희망을 싹 틔우기 위한 전주곡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이들의 뜨거운 눈물이 지쳐가고 차가워져 가던 제 가슴을 다시 데웁니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을 결코 헛되지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투지가 솟아오릅니다.
결국 당신은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던져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뜨거울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하늘에서 편안히 잠드소서.
2009.05.26 11:23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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