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머리에 앉아 무슨 일이든 하려 했으나, 도무지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무심코 신문을 들춰봐도, TV를 틀어도,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검색해 보려 해도 온통 눈으로 마음으로 보이고 들리는 것은 그의 참혹한 서거에 대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몹시 우울했습니다. 아무리 다른 짓거리로 마음을 달래보려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얕은 잠으로 밤새 뒤척이다 아침녘에 깨어난 이후 나는 내내 집안에서 서성거렸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마침내 참다 참다 못 참겠는지 나더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성이지 말고 덕수궁 분향소에라도 다녀오세요. 어서요!"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내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집밖을 나서 시청 앞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덜컹거리는 차체의 요동이 내게 전해와 마음은 토할 것처럼 울렁거렸고, 거칠게 흔들거렸습니다.
님은 떠나가시며 남긴 유서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생각을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하셨습니다. 님께서 겪은 고통과 괴로움이 허공의 바람을 타고 내게 몰래 전이되었는지 나 역시 같은 증세가 나타나는 듯 온 종일 숨 가쁘고 무기력했습니다.
며칠 전 5월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다음날, 나는 집 근처에 시민들이 마련한 분향소에 들러 서둘러 조문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심정으로 헐레벌떡 경황없는 조문을 했습니다. 그런 까닭인지 그저 심장만이 요동칠 뿐 눈물도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난감하고 당혹스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있고 난 며칠 후, 나는 오늘 버스에서 내려 시청 앞 덕수궁 대한문 마당에 다시 섰습니다. 애국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그를 애도하고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추모의 마당에 왔습니다. 계절을 망각한 채 봄을 넘어선 한여름 같은 뜨거운 햇볕은 광장을 덮치고 있었습니다. 그 광장에 슬픔을 참지 못하는 가녀린 신음과 분노를 억제하는 시민들의 잔잔한 통곡이 자욱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커다란 태극기가 내걸린 추모마당 분향소 주변은 조문을 하러 온 수많은 시민들로 넘쳐났습니다. 백발이 성한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아주머니, 아저씨, 교복을 입은 학생들, 어린 아이들까지...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엄숙한 추모의 물결이 넘쳤습니다.
덕수궁 돌담 옆으로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 조문행렬은 차분하고도 정연한 모습이었습니다. 무려 3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분향을 하고 조문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흐트러지지 않아 보였고, 애틋한 슬픔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슬픔과 분노가 혼합되어 그 누구도 차마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고조된 감정의 격랑이 출렁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