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를 비롯한 역대 한국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한 외국인 친구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 한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을 보았다고 했다. 임기 내내 기쁨과 슬픔, 분노와 연민, 고뇌와 결단을 누구라도 알 수 있게 표현하던 이가 삶을 떠난 얼굴이 평화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바위 위에 서서 서성였을 마지막 시간에 그의 마음에 오갔을 많은 것들, 차마 떠나가기 어려웠을 사람들이며 햇살과 바람을 생각하면 그의 외로움이 애처롭다. 죽음 앞에서 담배 하나 피워 물고 싶어 했다니, 마지막 순간에 담배를 하나 피워 물었다던 체 게바라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던 고 윤한봉 선생이 후보 시절의 그이를 만나고 난 뒤, "노무현씨가 당선된다면 그것은 혁명이다"고 했다는데, 정치인 노무현이 얼마나 고결한 이상과 견결한 투지에 차 있는 사람인지를 알아본 탓이었을 것이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해서, 써준 원고나 겨우 읽을 줄 알고 하나 마나한 말 밖에 할 줄 모르던 이들과 달리, 그는 한국과 한민족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깊은 성찰 뒤에 나오는 말을 했다.
유럽 등지의 적잖은 해외교민들이 그 솔직,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면모, 살아 있는 생각과 명료한 표현력을 자랑스러워했다. 외국에 살아도 더 이상 '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인 중에 보기 드물게 유머를 구사하는 능력은 그의 풍요로운 인간성을 보여주지만, 이 땅의 좀스럽고 야비한 세력은 하루도 쉬지 않고 그를 진흙밭으로 끌어내리려 하였다.
97년 무렵, 체게바라 사후 30년이 되어 그가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볼리비아 산악지대를 취재한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의 기자는 흥미로운 사실을 전하고 있다. 정부군의 포로가 된 즉시 재판도 없이 사살되었던 이 혁명가가 그 지역 인디오들의 수호성자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이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의사이기도 했던 체게바라는 의료시설이 없는 그곳에서 위급한 환자들, 특히 산모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낭떠러지로 미끌어지는 차에 실려 있던 한 여성이 체게바라 성인을 부르며 기도를 올리는 순간 차가 멈추고 자기들이 목숨을 건졌다고 이야기하는 모습도 기자는 적고 있다. 현실의 역사에서 당장은 실패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가 이룩하려고 한 것이 정의이고 진실인 한 그의 삶에 대한 기억 자체가 새로운 힘으로 현실에 작용해 오는 것이니, 정의로운 분노와 혁명의 상징이 된 그가 민중에게는 주술적 힘까지 갖는 모양이다.
부엉이바위 위에 서서 산과 들을 바라보던 그가 문득 이 세상을 떠나려는 순간, 나는 그의 영혼에 날개가 돋아났으리라고 상상한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처음 보는 아주 크고 상서로운 새, 푸르스름한 여명의 깃털을 가지고 한반도 위를 천천히 선회하다 이따금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와 나는 새가 되어 지금 날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큰 파도로 출렁거릴 리가 없을 것이다. 촛불의 파도가 잦아들었을 때는 물때를 몰랐다. 이제 두 번째 파도가 다시 이니, 지금은 역사의 썰물이 아니라 밀물인 줄을 알겠다. 그 파도 위로 한 마리 거대한 새가 날아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지역 주간신문<시민의소리>에 같이 실린 칼럼입니다. 최권행씨는 서울대 불문학 교수입니다.
2009.05.29 11:39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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