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초심' 과 '첫마음'
2008년, 2003년, 1998년, 1993년, 1988년에 대통령 자리에 오른 분들이 있습니다. 1988년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까지 헤아려 보자면, 어느 분께서 '처음 대통령 자리에 서던 때 마음'을 지켰을까 싶어 궁금하지만, 어떻게 보면 모두들 '첫마음'을 지킨 셈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입으로는, 또 말로는 어찌어찌 우리 귀에 달짝지근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내놓았을는지 모르나, 마음속 깊이 우러난 말은 아니요 몸이 먼저 보여주는 말은 아니었으니, 그분들 나름대로 '첫마음'을 지켰다고 자랑스레 생각하지 않으랴 싶곤 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대통령 자리에 오른 분들뿐 아니라 공직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분들도 매한가지이지 싶습니다. 겉으로는 민주와 평화와 자유와 평등과 통일을 이야기한달지라도, 누가 누리는 민주요 어떠한 평화이며 어떻게 꾸리는 자유이고 누구와 누구를 잇는 평등이며 어찌 어깨동무하는 통일인가 하는 대목에서 슬기롭고 아름다운 쪽으로 걸어가지 못한다면, 이와 같이 뒤틀린 첫마음을 끝마음으로 이어간다고 하는 일은 몹시 슬프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2008년에 대통령 자리에 오른 분께서는 '서울-부산 물길잇기(한반도 대운하)'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이 '첫마음'이 되지 않겠습니까. 온나라 갈아엎기(토목공사)가 그분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첫마음'이 아니온지요.
돌아가신 옛 대통령 한 분도, 또 여러 차례 쓴맛을 보다가 대통령이 되셨던 다른 한 분도, 우리 생각과 마음을 옥죌 뿐 아니라 억누르고 짓밟고 괴롭히던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않으셨습니다. 국가보안법 하나 없애 주기를 바라며 표를 몰아 주고 국회의원까지 시켰음에도, 대통령 자리에 앉았던 분뿐 아니라 국회의원 금뱃지를 달았던 분들마저도 이 나쁜법을 쓰레기통에 넣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이분들로서는 '국가보안법 몰아내기'가 당신들 첫마음이 아니었을는지 모릅니다. 표를 얻고자 우리 마음을 사려고 내뱉은 말이었는지 모르고, 이런 법이야 있건 없건 '경제 살리기'하고는 그리 끈이 안 이어져 있으리라 여겼는지 모릅니다.
┌ 초심(初心) : 처음에 먹은 마음
└ 첫마음 : x
생각을 거두고 국어사전을 들춥니다. 국어사전에는 '초심' 한 마디만 실어 놓을 뿐, '첫마음'은 실어 놓지 않습니다. "처음에 먹은 마음"이라 하여 '초심'이라 하는데, 처음에 먹은 마음이니 말 그대로 '처음마음'이 아닌가 싶고, 한 글자 줄인 같은 뜻 낱말로 '첫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 처음마음 / 첫마음
├ 처음처럼 / 처음대로 / 처음같이
└ 처음 / 꽃등
술이름으로 태어나면서 널리 퍼지는 '처음처럼'이라는 말마디를 곱씹어 봅니다. '첫마음'과 '처음처럼'은 같은 말마디요 같은 이야기요 같은 말값이요 같은 생각바탕이라고 봅니다.
학교 교실 앞이나 뒤, 또는 우리 방 벽 한켠에 한자로 '初心'이라 적어 놓으면서 우리 스스로 더 슬기롭고 야무지게 튼튼하게 살아가고자 다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처음' 한 마디를 적어 놓으면서 우리 마음가짐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꽃등'이라는 낱말을 떠올려도 되고, '처음같이'나 '처음대로'나 '처음만큼'이나 '처음보다'나 '처음 그대로'나 '처음과 같'이라는 말씨를 헤아려도 됩니다.
┌ 첫마음 - 끝마음
└ 처음마음 - 마지막마음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처음을 슬기롭게 열듯 마지막도 슬기롭게 닫을 수 있기를. 처음 여는 삶을 알차게 열듯 마지막 삶을 뿌듯하게 닫을 수 있기를. 처음 펼치는 삶을 아름답게 가꾸듯 마지막 또한 아름다이 닫을 수 있기를.
첫마음이 끝마음이 되기를 꿈꾸면서, 내 첫마음이 자칫 엉뚱하거나 뒤틀리거나 못나거나 어지럽거나 엉망진창은 아닌가를 되짚어 줍니다. 첫마음과 끝마음이 하나이기를 바라면서, 내 첫마음이 설마 바보스럽거나 엉터리이거나 어줍잖거나 형편없거나 쓸데없지는 않았는가를 되돌아 봅니다.
ㄴ. '처음 마음'과 '첫마음'
..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쉽다. 두려움 없이 달렸던 처음 마음을 잃지 않고 우리가 떠들었던 것을 걸러내지 않고 기록해 놓아더라면 좋을 텐데 .. 《조원진,김양우-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삼인,2009) 106쪽
'기록(記錄)해'는 '적어'나 '적바림해'로 다듬습니다. "떠들었던 것을"은 "떠들었던 이야기를"이나 "떠들었던 생각을"로 손질합니다.
┌ 처음 마음을 (o)
└ 초심을 (x)
고등학교를 갓 마친 아이들이 고등학교 다닐 적을 떠올리며 '처음 마음'을 생각합니다. 그무렵부터 아이들 스스로 '처음 마음'을 알뜰히 지킬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뉘우칩니다. 이제 고작 스물을 넘긴 나이임에도 열일곱 풋풋하던 그때 왁자지껄 우당탕탕거리던 매무새를 그리며 '처음 마음'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을 되새깁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도 '처음 마음'을, 그러니까 '첫마음'을 고이 여기고 소담스레 돌보고 알뜰살뜰 가꾸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첫마음이 깨지거나 다치거나 바스라지지 않도록 어루만지면서 제 꿈을 지킬 수 있을까요.
부디 고운 첫마음을 고운 끝마음으로 마무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맑은 첫마음을 맑은 끝마음으로 마감할 수 있으면 반갑겠습니다. 기쁘게 살면서, 고단한 가시밭길도 기쁘게 걸으면서, 힘차게 살면서, 쓰디쓴 가싯길도 힘차게 헤치면서, 오늘 하루 어제 하루 이듬날 하루를 고마이 맞아들이는 열린 넋과 얼로 첫마음 싱그러이 보듬어 나간다면 기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9.06.01 10:59 | ⓒ 2009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