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사립고 지정 최소 기준은 5% 기준의 10%도 안 되는 0.2~0.3%의 재정능력을 가진 학교들이 갑자기 20배로 뻥튀기해서 재정부담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이 지금까지는 왜 학교에 돈을 내놓지 않고 국민의 혈세를 축냈을까?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
김행수
자율형사립고 신청학교 중 영일고(0.2%), 충암고(0.3%), 대성고(0.3%)를 비롯하여 대원여고, 정신여고, 장훈고, 인창고 등 7개교는 재단전입금이 등록금 수입의 1%도 안 된다. 이를 지정조건 충족 비율(100% 기준)로 환산하면 영일고 4.1%, 충암고 6.2%, 대성고 5.6%, 대원여고 8.8%, 정신여고 8.7% 등 10%에도 못 미친다. 최소 기준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10~20배 수입을 늘려 재정을 부담한단 말인가? 백보 양보해서 재정 부담을 진짜로 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는 학교에 투자 안 하고 어디에 돈을 숨겨놓았던 것인가?
언론 보도를 보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가 "자사고 선정에 있어서 재단전입금 비율 5%(총 등록금 대비)는 무조건 충족돼야 한다. 현재까지 5% 미만인 학교도 자구책을 마련한다는 각서를 제출하면 자사고로 선정될 수 있다"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지금까지의 재정 능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앞으로 재정부담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어제까지 법인에 돈이 없어서 법정전입금도 못 내고 1년에 겨우 몇 백만원에서 몇 천만원 부담하던 학교들에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수백억이 떨어지고, 땅에서 수십억을 주울 계획이 생긴다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자율형사립고 신청을 위한 최소이자 유일한 조건은 재단전입금의 비율이 등록금 수입의 5% 이상이라는 것이다. 자립형사립고의 등록금을 현재의 3배로 가정하면 현재 재단전입금 기준을 충족시키는 학교는 신청 33교 중 39%인 13개밖에 안 되고, 나머지 61%는 최소 조건 미달이다.
이들 13개 학교도 강남구 등 2개 이상인 자치구를 제외하면 서울 25개 자치구 중 고작 10개 자치구(강남구, 서초구, 강동구, 노원구, 중구, 동작구, 관악구, 종로구, 강북구, 동대문구)에만 자율형사립고 지정조건을 충족시키는 학교가 있고, 나머지 15개의 자치구(금천구, 성북구, 도봉구, 중랑구, 용산구, 강서구, 은평구, 광진구, 송파구, 영등포구, 서대문구, 마포구, 양천구, 성동구, 구로구)에는 지정조건을 충족시키는 신청 학교가 없다.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확연히 구분되는 상황이다.
2007년을 기준으로 재단전입금 5% 기준을 만족시키는 학교는 13개이지만, 이 중엔 100주년 기념 행사라든지 대규모 학교 시설 공사 등 특별한 사정에 의해 이 해에만 재단 전입금이 많고 평년에는 이에 못 미치는 학교들도 많다. 즉, 안정적으로 재단전입금 5%를 댈 수 있는 학교는 이보다 훨씬 적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 재정 부담능력을 따지지 않고 서류상의 조건으로만 심사한다면 33개의 신청 학교 중 25~30개가 최종적으로 선정된다고 하니 경쟁률도 1.1~1.2 대 1밖에 되지 않는다. 대학입시 경쟁률로 따지면 거저먹기나 다름없다.
자율형사립고 선정과정에 국민은 없다 이미 외국어고와 특목고,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등 과목별로 특성화된 특목고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인문계 고등학교인 자율형사립고가 과목별로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글로벌 리더를 양성한다는 명분으로 영어 수업 시간 늘리고, 학부모들과 성적 상위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하여 수학과 국어 같은 과목들의 수업시수를 늘리고 체육, 음악, 미술 같은 과목의 수업시수를 줄이는 교육과정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교원수급에 지장이 없는 수준에서 생색내기로 몇 개의 과목을 끼워넣기 하는 수준에서 교육과정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자율형사립고 선정 심사 기준이 현재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계획서이기 때문에 재정운영 계획도, 교육과정 운영 계획도 모두 페이퍼상에만 존재하는 그들만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학교에서 장밋빛 전망을 가지고 화려하게 치장된 재정운영과 교육과정 계획을 제출하였고 심사위원들은 이 문서들을 열심히 심사할 것이다.
자율형사립고 신청은 거의 예외 없이 이사회에서 먼저 결정하고 교장에게 지시하면 교사들에게 통보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 학부모나 학생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일반 국민의 의견 역시 무시되고 있다.
2008년 10월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7.8%가 자율형 사립고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다. 올해 2009년 4월 참교육연구소가 수도권지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60.3%가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자율형사립고 추진에는 국민도 없고, 학부모도 없고, 학생도 없다. 오로지 이사장과 교장, 정치인들만이 있을 뿐이다.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한 학교의 이사장과 교장들이 교사들과 학생들, 학부모를 설득하여 어떻게 더 좋은 학교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돈 많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더 많이, 더 빨리 선점하기 위해서 정치권에 줄을 대어 자율형사립고에 지정될까를 고민하는 듯한, '교육은 없고 정치만 과잉'인 현 상황을 학생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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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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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자립도 1%도 안되면서 자사고? '간 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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