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왔더니 유원지 입구가 몰라보게 변했더군요. 말끔하게 단장된 도로와 숲이 우거진 주변 산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밤나무와 벚나무들이 맑은 공기를 내뿜으며 가슴을 탁 뜨이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다투고는 홧김에 집을 나와 1시간 넘게 걸어와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사색에 빠지기도 하고, 숲을 쳐다보며 심호흡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던 젊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속상한 마음을 음주·가무로 풀지 않고, 자연에 하소연하고 도움을 받다니, 장하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은파유원지까지는 왕복 8km가 넘는 거리인데요. 먼 거리를 걷도록 원인제공을 했던 아내는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 참 좋다! 저기서 사진 하나 찍을까?"라며 넝쿨장미 숲으로 달려가더군요. 꼭 어린애 같았습니다.
한쪽에서는 신혼으로 보이는 부부가 은파유원지를 배경으로 사랑하는 아이 기념사진 찍기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한쪽 눈을 감고 파인더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는데요. 옆에서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아내는 총감독이고 남편은 카메라감독 같았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장면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저는, 새치기하듯 뒤로 살짝 돌아가서 한 컷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촬영을 끝내고 이동하는 남편에게 다가가 사정을 얘기하고 사진을 보내주겠으니 이메일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고맙다며 아내 이메일을 알려주기에 받아왔습니다.
오늘 아침에야 사진 작업을 해서 약속대로 메일로 보내주었는데요. 카메라 10대를 가지고 있어도 본인들은 찍을 수 없는 장면이니 기뻐할 상대방을 상상만 해도 마음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것도 일종의 나눔이고 베풂이니까요.
은파유원지 매운탕집 유래
은파유원지의 매운탕집은 70년대 중반으로 올라갑니다. 지긋지긋한 보릿고개를 넘기고 살림이 조금씩 여유를 갖게 되니까,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고, 보리밥과 시래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의 입맛과 정서를 알아챈 당시 30대 초반의 아주머니 한 분이 물가에 집을 지어놓고 저수지에서 잡히는 쏘가리와 민물 새우에 시래기를 넣고 매운탕을 끓여 검정콩이 들어간 돌솥밥과 함께 팔았던 게 시초입니다. 지금도 전처럼 성업중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간판도 없이 영업을 했지요. 그런데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님이 늘어나면서 1년 전부터 시래기를 처마에 매달아 말려 두었다가 사용할 정도가 되니까, 이곳저곳에 하나씩 생겨났고, 지금은 간판을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옛날에는 맛으로 승부를 걸었는데, 요즘은 건물 크기와 분위기로 승부를 건다는 겁니다.
쏘가리매운탕은 30분, 닭백숙은 1시간 가까이 기다리는 게 기본인데요. 옛날에는 예약하지 않고 가서 음식이 나오는 동안 고스톱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계속 고스톱을 쳐도 괜찮았고, 저녁까지 사먹는 손님도 많았는데요. 식당 건물이 대형화되면서 그런 풍경을 보기가 어렵더군요.
보약 중의 보약 '쏘가리매운탕'
민물고기의 황제로 불리며 위를 튼튼하게 하고 기력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쏘가리는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매운탕을 끓여먹었다고 합니다. 특히 개나 닭 대신 쏘가리매운탕으로 복날을 보낸 사람들도 많았다니 몸에 좋은 진미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보약이라고 하면 굉장히 비싸고 귀한 것으로 여기기 쉬운데요. 저는 쏘가리매운탕처럼 좋아하는 사람과 즐거운 마음으로 맛있게 먹고, 소화가 잘되고, 기분 좋게 배설하는 음식이 몸에 가장 좋은 보약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입맛뿐 아니라 눈과 코를 즐겁게 해주는 음식은 맛을 배가시켜 먹는 시간을 행복하게 하는데요. 주변경관이 뛰어나고 반찬이 깔끔하게 나오는 '뽕나무집' 쏘가리매운탕이 딱 그 짝이더군요.
뽕나무집은 상량문이 적힌 대들보와 서까래가 보이고 천정이 높아 시원한 2층 한옥입니다. 고풍스럽게 보이는 건물에 반찬도 맛깔스러운데요. 매운탕이 나오기 전에 맛보는 부침개와 버섯탕은 별미 중의 별미입니다.
들깻가루와 민물 새우가 듬뿍 들어간 국물은 칼칼하고 담백한데요. 고소한 맛과 시원한 맛이 함께 어울리면서 식욕을 돋워주고, 시래기와 새우가 입에서 씹힐 때의 촉감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먹고서 두 시간 정도 지나면서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으니까요.
어른 엄지손가락만 한 굵기의 쏘가리를 발라 먹는 재미도 쏠쏠한데요. 살은 부드러우면서 고소하고 탄력이 있습니다. 가시가 억세기는 하지만, 잔가시가 없고, 다른 물고기에 비해 살이 많고 소화도 잘되지요.
방앗간에서 금방 꺼내온 햅쌀로 지은 것처럼 밥이 차지고 검정콩을 씹는 재미가 또 다른 별미인 돌솥밥과 고소한 누룽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2인분을 시키면 세 공기량의 밥이 지어 나오는데요. 누님에게 누룽지를 긁어달라고 조르던 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펄펄 끓인 누룽지와 숭늉을 후룩 후룩 마시면서 남은 시래기와 함께 집어먹는 꼴뚜기젓 무침은 식사를 개운하게 마무리해주고, 그 순간은 세상 모든 근심·걱정이 땀과 함께 날아가 버리는 것 같으니 보약 중의 보약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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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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