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편향성은 참여정부 때 임명된 인적 구성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중략) 인적 청산이 시급하다. 이런 인권위의 존재 이유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헤럴드경제> 11일자 사설 '균형 잃은 인권위, 존재 이유 있나')
"촛불집회 때 전·의경의 인권을 전혀 고려치 않은 권고안을 내놓아 빈축을 샀었다. 치우친 행보를 계속 고집한다면 인권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11일자 사설 '인권위는 죽창에 의경이 실명해도 괜찮다는 건가')
"인권위가 우리 실정을 도외시한 채 불법 폭력시위를 부추기는 듯한 입장 표명을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일보> 10일자 '이런 국가인권위원회 필요한가')
"드러내놓고 불법과 폭력을 거들기에 이르렀다. 이런 인권위를 두고 한 해 200억원 혈세를 쓸 이유가 없다는 게 우리 판단이다." (<문화일보> 10일자 사설 '집시법=적법시위 보호법'인지도 모르는 인권위')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잇따라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비정규직보호법 등 민감한 정부법안과 정책에 대해 비판적 의견표명을 하고 있다. 우익성향 단체와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균형감각을 상실했다"고 주장하며 '인권위 죽이기'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조직이 21% 축소된 인권위로서는 조직 재개편이나 예산 감축 등의 위기 상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인권위 관계자들은 "(조직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적 계산은 하지 않는다"면서 "지난 정권에서도 할 말을 했고,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만 달라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의견 표명 실무를 맡았던 김형완 인권정책과장은 "오히려 이전 정부에서는 더 자주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인권위가 태도를 바꿔선 안 된다"면서 "조직 축소 이후 위축된 분위기가 있지만, 최후의 1인이 남더라도 할 일은 한다"고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
보수언론들 "이런 인권위에 혈세 쓸 이유 없다"
가장 첨예한 사안은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집회의 자유 문제. 안경환 인권위원장은 지난 3일 "집회시위의 개최 여부 자체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좌우하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일침을 가했고, 9일에는 인권위 전체 명의로 한나라당 의원들의 집시법 개정안 중 '복면금지 규정' 등을 놓고 삭제 의견을 표명했다.
다음날인 10일부터 보수언론들은 '인권위 무용론'을 들고 나섰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에도 인권위는 "시위대 폭력에 대해서는 법적인 조사권한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언론들은 다시 한번 '편향성'을 주장하며 "전·의경 인권에는 눈을 감았다"고 비난했다.
11일 오후에는 라이트코리아·납북자가족모임 등 10여 개 우익단체들이 국가인권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가 불법시위대 편을 들어줬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인권위의 추모활동 역시 정부 여당으로서는 불편한 대목이다.
지난달 28일 인권위는 서울광장에 위치한 건물 외벽에 노 전 대통령 추모 현수막을 걸었고, 이달 1일에는 홈페이지 '휴먼레터'에 노 전 대통령의 인권 관련 발언을 소개했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청와대 행정관이 '현수막의 의도가 뭐냐'고 전화하더라"고 전했다.
사회적 파장은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10일 오전 인권위는 비정규직보호법에 대해서도 "기간 연장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양산시킬 것"이라면서 정부 개정안에 제동을 걸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즉각 환영 논평을 냈지만, <문화일보>는 11일자 사설에서 "(기간연장이 시급한데 국회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국가인권위도 비정규직 개정 반대 결정문을 국회에 보냈으니 그 상임위에 그 인권위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인권위 "조직 축소됐다고 알아서 길 수 있나"
이 같은 최근 활동에 대해 인권위 측은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면서 "국제법 기준에 따라서 본연의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 추모 현수막 등도 국민장 의례에 맞춘 것이고 전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서 튀는 행보는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이명재 홍보협력과장은 "집시법 관련 의견표명이 단호한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된 최근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면서 "현재 조직 상황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인권에 대해 말을 안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번 집시법 의견표명 배경에 대해 김형완 인권정책과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집시법을 검토했는데 여야가 법안처리를 유보했고 그 뒤 조직 축소 때문에 업무가 잘 안 됐다"고 "법안이 상정되는 6월 국회에 맞춰서 의견을 낸 것이고, 집회 자유가 침해받는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정책 담당자별로 언론과 입법동향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현안에 따라 정책권고나 의견표명 등을 한다. 김형완 과장은 "예전에는 대통령이 인권을 강조하다보니 국회나 정부 부처가 법안에 대한 검토회신을 요청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올해 '독립투쟁'을 거치면서 거의 요청이 없다"고 말했다.
김형완 과장은 "조직 축소 때문에 아직도 업무가 마비되고 구성원의 트라우마도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이번 의견표명에 정치적 계산은 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일로 인권위 예산을 깎거나 한다면 소아병적 발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조직이 축소되면 인권위가 달라질 줄 알았던 저쪽(정부 여당)은 지금 당황할지도 모르겠다"면서 "이후 국회 심의에서 인권위 예산을 손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 역시 "그렇다고 인권위가 (반인권적) 집시법·비정규직법을 나 몰라라 할 수 있나, 그게 더 이상한 일"이라면서 원칙을 강조했다. 보수언론들의 공세에 대해서도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번 조직 축소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인권위 독립성의 중요성도 확인하고 인권 후퇴를 체감했다"면서 "그런 일로 움츠러들어 알아서 기거나 코드를 맞출 수는 없지 않냐"고 강조했다.
인권단체 "10월 이후 더 어렵다, 원칙 지켜야 한다"
인권운동단체들은 인권위의 이 같은 움직임을 지지하고 있다. 박진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인권위가 당연한 도리를 하고 있다, 예전보다 (의견표명 등이) 빨라지고 내용도 명료해졌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박 활동가는 "정치적 이유보다는 우리 사회 인권이 벼랑 끝에 내몰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오는 10월 안경환 위원장이 퇴임하고 뉴라이트 인사가 취임한다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그때까지 원칙적인 모습을 보여야 인권위 활동의 분명한 바로미터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인권위는 앞으로도 "본연의 업무대로" 정부정책에 대한 쓴 소리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김형완 과장은 "사형제 폐지 문제나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오기 전 인권의 눈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도시정비법·인터넷실명제도 다룰 예정"이라면서 "인원은 줄어들었는데 할 일이 많아서 어렵게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9.06.12 10:02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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