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프리재즈(Free Jazz)를 논하기 이전에, '예술은 일종의 사기행위'라는 논리에 맞서, 이 장르가 가지는 존재의 이유에 관한 선과 별개의 가치에 대한 선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음악이 가지는 포괄적인 예술성과 내재된 이념성이 존재한다고 해서 프리재즈는 그들 스스로가 가지는 고유한 음악적 장르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우선 전제한다. 예컨데 프리재즈는 '대중음악'이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철저하게 비대중적인 음악이, 알고보면 '대중음악'이라는 아이러니한 진실은, 왜 우리가 -즉 대중들이 왜 프리재즈란 음악을 그렇게나 언짢게 마주했는가에 대한 물음에 최소한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대중음악이 전부 다 '대중 친화적'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대중 친화적인 음악'이 대중음악 전체를 대표하지도 않는다. 다만, 대중음악의 경쟁력은 '대중 친화적'일 때 발현된다는 것인데, 요약하자면 음악이 대중 친화적으로 존재할 필요성은 없지만, 대중음악은 결과적으로 대중 친화적일 때 발전되고 그 생명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할 진실은 그 '대중성'이라는 잣대가 계량적 수치로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몇 백만 장 이상 나가면 '대중적', 그 이하로 나가면 '비대중적'이라고 하는 잣대는 애초에 없다. 따라서 60년대 이후 완성된 프리재즈가 지금까지도 소수지만 뮤지션들에게 탄생되고 청자들과 소통되는 이유도, 적지만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들이 분명 존재했다는 것이고 그 것이 프리재즈가 기본적으로 '대중음악'의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하나의 근거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존재의 이유도 반증한다.
아울러 여기서 우리는 과연 프리재즈라는 음악이 소수의 대중들에게만 통용된다고 해서 그 가치성이 떨어지는가에 대한 문제에도 봉착한다. 그것은 앞서 언급했듯 대중음악의 경쟁력은 대중 친화적일 때 발현된다고 한다면, 그 반대의 논리에서 비대중적인 대중음악은 그 가치가 여타의 장르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파생적인 의문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난 꽤나 단호한 어조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을 비롯한 다른 예술의 가치성은 사실 대중의 인기도와는 독립적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수용자가 창조자의 결과물을 느낄 때 생성되는 일종의 창의력 혹은 공감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확대된다고 한다면, 그러한 측면에서 사람의 고막에서 완성되지 아니하고 수용자의 머릿속에서 완성을 바라는 프리재즈의 특수성은 그 예술의 기본적인 가치에 매우 충실한 장르라 아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가치에 대한 논쟁만큼은, 적어도 프리재즈라는 장르는 꽤 자유롭지 아니한가 생각한다.
그들 장르에 있어 '진보'의 형태는?
그렇다면 프리재즈란 장르는 현재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에 대한 발전성을 논해보자.
프리재즈는 사실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음악의 필수적인 요소인 '구성'을 두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조성, 박자, 형식을 배제한 채 그야말로 자유스러운 즉흥(improvisation)을 추구한다. 그것은 1949년 레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의 창조 이후, 오넷 콜맨(Ornette Coleman)과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에릭 돌피(Eric Dolphy)을 거치며 발전해온 프리재즈 음악이 가지는 커다란 특징 중에 하나다. 그러나 이 무형식의 개념은, 그 존재 자체로 하나의 형식을 가지는 아이러니를 가진다.
예를 들면 누드 비치(Nude Beach)다. 그곳은 아무런 제약도 없으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자연을 만끽하는 곳이다. 인간의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아무런 여과없이 보이는 장소이고, 인간의 자유스러움으로 일련의 사회적인 통념을 과감하게 배척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 곳에 들어가기 위해선 하나의 약속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아무것도 입지 않아야 한다'는 또 하나의 암묵적인 '법칙'이다. 법칙을 배제하는 법칙이 존재하는 곳. 그곳이 바로 누드 비치이고, 프리재즈다.
따라서 재즈 연주자들은 프리재즈를 연주할 때는 스스로를 과감히 던져버려야 하는 일종의 과단성이 필요하다. 쭈뼛거리며 자신의 국부를 가린다거나 새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주위만 서성거려서는, 그곳에 적응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 존재 자체의 가치에서 편승하지도 못하는 겁쟁이가 될 뿐이다. 따라서 대충 이 지점에서 대중들이 가지는 프리재즈에 대한 반감은 극대화되며, 밖에서 볼 때 상식적인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피아노에 대한 대중의 열광도 반대로 극대화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소리의 극한, 표현의 극한을 보여주며 통념에 반대하고 극단의 진보성을 말하는 프리재즈는 이제 소리의 창조에서 만큼은 막다른 벽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소리의 표현에 있어 그 극한의 표현은, 이제 음악의 감상의 범주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프리재즈의 진보성은 역으로 프리재즈가 앞으로 나갈 길에 대한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하게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러시아 세르게이 쿠료힌 페스티발(Sergei Kuryokhin Memorial Festival)에서의 그들의 아방가르드적 표현형식을 보라.
따라서 프리재즈는 어느순간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 보는 것이다. 거기서 그들은 앞만보고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달려왔다면, 이제는 그들이 지나온 이 머나먼 길에서 옆과 뒤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점이 프리재즈가 재즈의 지엽적 장르에서 이제는 당당하게 독립된 커다란 하나의 줄기로 발전하는 순간의 출발이며,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도 바로 그것이다.
물론 당연하지만, 그 전까지의 연주자들이 일률적인 스타일로 누드비치에서 재즈와 프리를 연주하진 않았다. 세실 테일러(Cecil Taylor)와 돈 풀렌(Don Pullen)은 벗을 땐 완전히 다 벗어던지는 케이스였고, 키스 자렛은 작은 수영복을 입은 채 바다속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인 플레이(in-play)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혹자는 선라(Sun Ra)처럼 옷을 다 벗어던지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알몸인 채로 기괴한 퍼포먼스까지 서슴없이 감행하는 케이스도 있었으며, 야마시타 요스케(Yosuke Yamashita)처럼 위험천만한 수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키스 티펫(Keith Tippet)처럼 적당한 선에서 우아하게 끊는 케이스가 있는가하면 미샤 멩겔베르그(Misha Mengelberg)나 알렉산더 폰 슐리펜바흐(Alexander von Schlippenbach)와 같이 꽤 호화롭게 즐기는 쪽도 있었다.
그리고 이젠 이러한 아티스트들의 과거, 그리고 현재의 다양한 행보와 결합하여, '프리'라는 대전제의 움직임 자체에 변화를 이야기하는 곳에 나의 관심은 집중된다. 이것은 연주자들에 시간흐름에 의한 세대교체로 이루어지거나, 음악적 연주방법만의 변화로서만 이루어지는 변화는 아니다. 그것은 프리재즈의 출발이 그러했듯, 일종의 '의식변화'이다.
지엽적 '가지'가 아닌, 거대한 '줄기'로써의 진보
그래서인지 최근에 프리재즈 연주자들은 '프리'에 자신의 음악을 한정시키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아까 언급했던 '누드 비치의 무법칙의 법칙'마저도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60년대의 '미국의 프리' 정서가 과연 현재에도 초국가적으로 발전을 얘기하는 재즈씬에서 그대로 통용되는가 하는 스스로의 물음이다. 결국 이러한 물음은 프리재즈 내에서의 발전을 말하게 되고, 그러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빌리 뱅(Billy Bang)의 표현대로 프리재즈의 '내부구조'의 개념이 도출되기 시작하고 '구성즉흥'이라는 말도 회자되기 시작한다. 또한 이쯤되면 프리재즈에서의 자유형식이란 과거의 이념과 영원을 다루는 추상적 목표를 향해가는 질주가 아니라, 여타의 음악과의 조건없는 결합이나 목표없는 여정을 의미한다고 정의하는 것이 나는 옳다고도 본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프리, 그 자체가 음악의 테마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목표없는 테마는 다양한 결합과 형식을 낳게 했고, 덕분에 '프리'를 위한 '프리재즈'는, 더 이상 '프리'에 얽매이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서는 약속을 하고, 구성을 만들며, 주제를 변화하고, 지역적 색감을 차용하기도 한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프리재즈는 그야말로 자유로움 속에 내던져진 것이며, 이것이 사실 진정한 프리재즈의 참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이 지금 이 순간 펼쳐진 일은 아니며, 그 이전부터 꾸준히 회자되고 통용되었던 개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움직임이 최근에 꽤나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나에게 꽤 고무적인 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최근의 기억속의 재천, 미연의 <Dreams from The Ancestor>가 각인되어 있음을 또한 기억한다.
결국 프리재즈에서의 발전과 진보는 너무나도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될 시장이 마련되었다. 이것이 내가 프리재즈가 장르의 파생이 아닌 장르의 주체로 보는 이유이며,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욱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가슴네트워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6.15 20:07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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