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비닐하우스 등 철거대상인 무허가건물에 사는 주민들도 30일 이상 생활의 근거지로 거주할 목적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이라면 주민등록전입신고 자격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현재 무허가건축물에 거주하면서 관할 행정청에 의해 주민등록이 거부된 주민들 상당수는 주민등록전입신고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전입신고가 가능해 주민생활의 편익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서울의 대표적인 비닐하우스촌인 서울 서초구 양재2동 212번지 '잔디마을'은 1984년경부터 이주민들이 농막을 개조하거나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생활하면서 형성됐다. 잔디마을은 현재 20세대가 살고 있는데 2007년 6월 잔디마을 일대가 장기전세임대주택 예정지로 용도 전환됐다.
서OO(48)씨는 1994년 9월부터 잔디마을에 이사해 가족과 함께 살아 왔다. 서씨의 집은 판자 패널에 보온용 담요와 비닐을 덮어 만든 것으로 부엌과 방 2개, 세면장을 합해 약 10평 정도인데 전기와 수도시설,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등 주방시설도 설치돼 있다.
그런데 2007년 4월 서씨가 양재2동에 세대주 자격으로 본인 및 가족들의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했으나, 동사무소가 "이 사건 건축물은 건축물로서의 기본조차도 갖추지 못한 무허가 불법 가설물로 즉시 철거대상일 뿐만 아니라, 잔디마을 일대는 장기전세임대주택 예정지로 전입신고를 수리할 경우 임대주택 건설을 위한 보상이나 투기 조장 등의 문제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이에 대해 서씨는 "전입신고가 되지 않아 자녀들의 학교 입학이나 우편 송달 등과 관련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잔디마을에 사는 대부분의 주민들도 인근 빌라나 단독주택에 사는 주민들에게 부탁해 위장전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녀들 교육문제나 건강보험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고 주장했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신동승 부장판사)는 2007년 11월 서씨가 서울시 서초구 양재2동을 상대로 낸 주민등록전입신고수리거부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주민등록법은 주민의 거주관계 등 인구의 동태를 항상 명확하게 파악해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행정사무를 적정하게 처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피고의 주장과 같이 투기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며, 투기나 전입신고에 따른 이주대책 요구 등을 방지하기 위해 전입신고를 거부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동사무소가 항소했고, 서울고법 제5행정부(재판장 조용호 부장판사)는 지난해 6월 1심과 같이 서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가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거부할 경우 거부당한 자들은 주민등록에 따라 부여되는 여러 공법상의 이익들을 향유할 수 없게 되거나 공법관계에 의한 법률효과를 부여받지 못하게 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주민등록법을 위반해 실제 거주하지도 않는 곳에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할 수 밖에 없어, 결국 피고를 비롯한 행정관청이 주민등록 위장전입과 같은 불법을 조장하고 주민들을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이용훈 대법원장, 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1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속칭 '잔디마을' 비닐하우스촌에 사는 서씨가 양재2동사무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주민등록전입신고를 행정청이 거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는 자칫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거주 및 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주민등록법의 입법목적의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가 주장하는 문제점인 투기나 이주대책 요구 등의 의도를 갖고 있는지 여부, 무허가건물 관리 등의 사유는 주민등록법이 아닌 다른 법률로 규율돼야 하고, 전입신고의 수리 여부를 심사하는 단계에서는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원고가 이 사건 거주를 생활의 근거지로 삼아 10년 이상 거주해 온 사실이 인정된다"며 "따라서 투기나 이주대책 요구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전입신고를 거부하는 것은 주민등록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 등에 비춰 허용될 수 없다고 봐 이 사건 처분을 취소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