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대역에서 잠시 숨을 고른 기차는 춘천을 향해 힘차게 달려 갑니다.
김종성
일흔 살 먹은 문화재 간이역 화랑대 후문을 지키고 있는 젊은 헌병들이 보일 즈음 높다랗고 뾰족한 지붕이 인상적인 화랑대 기차역이 숨은 듯이 정말 고요하게 서있습니다. 지나가는 기차는 많으나 화랑대역에 정차를 하는 기차는 하루에 7번뿐이니 사람들도 별로 없고 그래서 더 한적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 눈에 봐도 간이역이라고 부를 만한 아담하고 소박한 역사(驛舍)가 이렇게 서울속에 존재하고 있다니 숨은 보석을 발견한 마냥 기쁜 마음이 앞섭니다. 1939년에 지어져 일흔 살이 되었으니 동네로 치면 재개발 대상의 허름한 건물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철도공사가 고맙기까지 하네요. 역사 자체도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보존가치가 커 2006년 12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300호로 지정되기도 했답니다.
문을 열고 역안에 들어가니 굳이 기차표를 사지 않아도 된다는 듯, 오랜만에 손님이 들어와서 심심했는데 반갑다는 듯 저를 바라보는 직원분의 표정이 편안합니다. 그야말로 소박함이 물씬 묻어나는 매표소이자 대합실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와 둥근 탁자가 쉬어 가라고 늘어서 있는데 그 모양이 참 푸근하고 나름 고풍스러워 한 번 앉아보게 하네요.
역장님이 그림을 좋아하는지 벽 곳곳의 빈 공간에 기차역과 아이들이 그려져 있는 작품들이 걸려 있습니다. 그림은 젬병이지만 사진을 즐겨 찍는 저로서는 이 기차역의 사계절을 사진으로 찍어 액자로 만들어 기증하고 싶어집니다. 그런 생각을 직원분에게 농담삼아 얘기해 보았더니 잘 찍어서 한 번 보여 달라고 웃으시는데 꼭 해봐야 겠습니다.
밖에 유월의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그런지 역사 안이 더욱 포근하고 편안한 휴식처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에어콘도 설치하지 않은 작은 대합실이 이런 날씨에 덥기는커녕 시원하기만 합니다. 나무창틀로 된 창들이 밖이 다 보이도록 커서 채광이 좋고 통풍이 잘되어서 그런 것 같네요.
대합실 나무 의자에 혼자 앉아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 읽다 보니 지금 내가 서울에 있는 게 맞나 문득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심심할라치면 창밖으로 청량리역을 오가는 기차들이 지나갑니다.
청량리에서 춘천가는 기차를 가끔 탔는데 왜 화랑대역을 미처 몰랐을까. 간이역의 존재란 그런 것 같습니다. 크고 화려하고 세련되지 못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어 소중한 우리들 같은 존재.
내년 2010년에 경춘선이 전철화가 되면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운명의 간이역이라 그런지 올 가을에도 겨울에도 찾아가 기억속에, 추억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은 기차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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