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새벽에 찾은 강화도 전등사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으로 일컬어지는 섬

등록 2009.06.27 10:42수정 2009.06.2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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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19일-21일)에 '9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기초강좌'를 받고 왔다. 19일 저녁 7시30분 서울을 출발, 8시 조금 넘어 강화도 오마이스쿨에 도착하니까 맛깔스러운 감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夏至)를 이틀 앞두고 너스레를 떨며 먹는 감자 맛은 어린 시절 추억까지 곁들여져 일품이었다.

 

작년 1월 '1기 시민기자기초강좌'를 수료하고, 6월에는 '시민기자대회'에 참가해서인지 학교주변 경관과 건물이 친숙하게 다가왔고, 식당 아주머니·아저씨도 반가웠으며, 처음 만나는 수강생들과도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던 같다.  

 

2박3일 동안 지낼 방으로 가서 짐을 풀고 강당에 모여, '가슴이 움직여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오연호 대표 기자의 강의와 자신을 소개하는 친교 시간을 갖고 침실로 돌아왔다.

 

공식일정을 마치고 잠시 대화의 자리가 만들어졌는데, 우리를 반겨주었던 최진석 본부장이 강화도에 담긴 역사를 설명하며 삼랑성(정족산성)과 전등사의 새벽 산책길이 좋다고 해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가자고 약속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촬영한 오마이스쿨 운동장. 촉촉하게 내린 비로 주변 나무들이 더욱 생기가 돋는 것 같았다.
새벽에 촬영한 오마이스쿨 운동장. 촉촉하게 내린 비로 주변 나무들이 더욱 생기가 돋는 것 같았다. 조종안
새벽에 촬영한 오마이스쿨 운동장. 촉촉하게 내린 비로 주변 나무들이 더욱 생기가 돋는 것 같았다. ⓒ 조종안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는데 날씨가 좋아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운동장이 촉촉해질 정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학교가 파하고 돌아오며 비를 맞으면서도 급우들과 신나게 장난질을 하던 학창시절이 떠올라, 우중 등산도 운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출발한다는 연락이 와서 허겁지겁 뛰어나갔다.

 

강좌 두 번째 날을 맞는 수강생들은 마음이 통하는 지우(知友)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호기심에 찬 표정들이었다. 등산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비가 내리는데도 모두 상쾌한 표정이었는데, 최 본부장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강화도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전등사 입구에 도착했다.

 

삼랑성(정족산성)을 향해서

 

 조선 말기(1866년)에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 함대를 물리쳤다는 정족산성(삼랑성)에서 내려다본 강화도는 마음을 차분하게 했는데, 역사의 숨결이 잠든 섬이어서 그런지 비안개가 짙게 덮인 봉우리들이 신령스럽게 느껴졌다.
조선 말기(1866년)에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 함대를 물리쳤다는 정족산성(삼랑성)에서 내려다본 강화도는 마음을 차분하게 했는데, 역사의 숨결이 잠든 섬이어서 그런지 비안개가 짙게 덮인 봉우리들이 신령스럽게 느껴졌다. 조종안
조선 말기(1866년)에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 함대를 물리쳤다는 정족산성(삼랑성)에서 내려다본 강화도는 마음을 차분하게 했는데, 역사의 숨결이 잠든 섬이어서 그런지 비안개가 짙게 덮인 봉우리들이 신령스럽게 느껴졌다. ⓒ 조종안

 

최 본부장이 준비해온 우산을 받고 삼랑성-정족산-마니산-전등사로 이어지는 산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무이파리에 고인 물이 비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뿌려대는 비탈길에서는 우산도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맑은 공기와 풀잎 향이 그윽한 산길은 마음을 풍족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삼랑성을 끼고 마니산을 향해 오르다가 지쳐 잠시 숨을 고르며 내려다보는 비안개 자욱한 강화도는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것 같았다. 초여름에 접어든 신록의 영향 때문일까, 비를 흠뻑 맞은 이파리들이 풀냄새를 가득 머금고 발산하는 생기가 내 몸으로 파고드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상에 오르니까 "아~좋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금방이라도 시(詩) 한 구절이 읊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섬 강화도, 묵향이 그윽하게 느껴지는 섬 강화도, 비안개 자욱한 바다·하늘 산, 산, 산···."으로 끝나버려 문장력이 부족한 나 자신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그날 산행은 몸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음이 앞서 따라나서긴 했는데, 전과 달리 조금만 올라도 무릎의 힘이 빠지고, 숨이 막히는 현상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미끄러운 산길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내려올 때도 얼마나 조심했는지 모른다.

 

강화도 역사를 진지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설명해주는 최 본부장 안내를 받아 동료 수강생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강행했던 그날 산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여운을 남겨주었다. 평소 산을 좋아해서 그런지, 산행 도중에 느끼고 배운 것만으로 2박3일의 기초강좌 반절은 마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강화도는 선사시대 고인돌부터 단군왕검의 얼이 서린 마니산, 고려 때 대몽항쟁과 팔만대장경 조성, 선조의 사랑을 받던 영창대군의 억울한 죽음과 강화도령으로 불리는 철종의 비극, 서양 나라들과 처음 전투를 벌였던 '병인양요'에 이르기까지 섬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역사의 섬 강화도에서 새벽에 산야의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시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받은 기(氣)는 강의를 마치는 날까지 효과를 발휘한 것 같다. 빡빡하게 짜인 강의 시간이 즐겁기만 했고, 헤어지는 시간까지 상쾌했으니까 말이다. 다녀온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내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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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안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6.27 10:42ⓒ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강화도 #오마이스쿨 #전등사 #삼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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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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