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9.06.27 17:42수정 2009.06.27 17:42
1773년 12월16일 모호크 인디안으로 가장한 미국인들이 보스턴항에 정박한 영국 동(東)인도회사 선박에 잠입해 차(茶)상자들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것이 미국 독립혁명으로 이어지는 유명한 '보스턴 티 파티'사건이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1740∼80)가 가을수확에서 세금 내고 남은 식량이 부족한 농민들 실상을 보고 받자 "빵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 했다는 소문이 혁명의 불씨가 됐고 그녀는 단두대에 올라야 했다. (한국경제, 2005/12/29)
종합부동산세로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해 준 것은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일깨웠을 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재정이 바닥나고 90조에 가까운 세수를 충당하기 위해 결국 정부는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려 한다. 이제 이명박 정부의 조세정책은 그 실체를 드러냈다. 특히 서민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조세정책이 불러올 파국은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말해준다.
조세저항운동의 역사는 오래된 것이다. 경제, 특히 서민들의 먹거리와 관련된 문제는 언제나 직접적 행동으로 나타나곤 했다. 위키피디아의 '조세저항(Tax Resistance)' 항목에는 1세기부터 시작된 다양한 형태의 조세저항 운동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간디의 독립운동에서 프랑스 혁명, 영국의 시민 전쟁과 미국의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불평등한 조세정책은 언제나 직접적인 시민행동에 의해 견제받아 왔다. 경제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정치적 구호와 함께 발산한다. 언제나 직접적인 원인은 경제적인 이유였다. 정치적 구호는 그 다음이다. 정치적 구호는 운동의 정당화를 위해 사용된다. 경제적 불평등의 시기에는 언제나 정치적 혼란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 분명 놀라운 경제성장이 있었다. 하지만 김재규의 배신을 불러온 부마사태에 잘못된 조세정책이 주요 원인으로 작동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먼저 박정희 정부는 조국의 근대화를 위한 재원 마련의 수단으로서 소득세와 소비세를 동시에 증가시키는 전무후무한 작업을 했다. 즉, 종합소득세제를 도입해서 소득세 세입을 확대했고, 부가가치세제를 도입해서 거래의 투명화를 통한 소비세의 증가를 꾀했던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엄청난 사회적 저항이 있을 법 했지만, 그 당시는 워낙(?) 행정권이 강했던 시절이어서 외관상으로는 무사히 정착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 저항이 안으로 스며들어서 박정희 대통령의 주요 지지기반이었던 자영사업자들이 등을 돌리게 됐고, 이는 부마사태의 원인 중의 하나이었으며, 이 사태가 결국 10·26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있다(세정신문, 2009/06/26)
부마사태의 시위대는 세무서를 공격했다. 분명 시위대는 민주화를 구호로 내걸었지만, 그 이면에 조세정책에 대한 불만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서민과 중산층, 그리고 자영업자들을 움직이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위기감이다.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의 몰락을 자초했던 그 과오를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주요 지지층이었던 자영업자들이 정권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것이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명박 정권을 지지했던 도시중산층은 2009년 1월 추산으로 전인구의 49.9%다. 2005년 57.5%였던 중산층이 꾸준히 감소한 결과다. 중산층에서 이탈한 인구는 모두 비정규직으로 흘러들어갔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비정규직은 869만에 이른다. 게다가 2008년 11월 이후 두 달 동안에만 자영업자 42만명이 도산했다. 자영업자의 수는 약 558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자영업자들이 도시중산층보다 더욱 빠르게 몰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생계비도 벌지 못하고 세금 낼 돈도 없는 412만의 영세자영업자들과, 이명박 정부 들어 파산위기로 내몰린 146만의 도시 중산층, 이들이 현 정부를 탄생시켰던 주동력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필자는 뭔가 데자뷰를 감지하는데 정부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6월 22일 한국개발연구원 토론회에서 고영선 부장은 "세제개편으로 인한 국세수입 감소규모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총 98조9천억원에 달해 상당한 노력 없이는 2013년까지 균형재정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이 토론회의 목적은 이렇게 펑크난 세수를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 시작으로 이미 정부는 기습적으로 전기세를 인상했다. 하지만 정부가 진정 인상을 바라는 세금은 따로 있다. 2007년 한해에만 41조를 징수한 부가가치세다.
하지만 부가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 부가세 면제대상 대폭 축소 등 비과세 감면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장 부가세 세율을 올리지는 않겠지만, 감면대상부터 대폭 줄여나가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동안 부가세 면제 혜택을 받아온 이들이 주로 농어민, 중소기업 등이었다는 점에서 실제로 이를 강행하려할 경우 거센 저항은 불을 보듯 훤하다. (뷰스앤뉴스, 2009/06/23)
이준구 교수도 자신의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이러한 정부의 불평등한 조세정책에 대해 쓴 소리로 비판했다.
나는 세금을 더 거두려고 애를 쓰기 전에 쓸모없는 지출부터 줄이는 것이 순리라고 믿는다. 몇 조원 정도는 우습다고 생각될 정도로 확장 일변도의 재정기조를 유지해 온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만 하더라도 예산을 슬금슬금 얼마나 올려 왔는지 모른다. 이런 방만한 재정기조를 그대로 둔 채 서민들의 조세부담만 늘리면 누가 이를 달갑게 받아들이겠는가?(프레시안, 2009/06/23)
분명 이명박 정부는 궁지에 몰렸다. 삽 한자루 들고 근시안적으로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무려 22조에 가까운 세금을 쏟아 붇고나니 이제 정부 재정악화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미 깍아준 부자들의 세금을 다시 돌려받을 수도 없다. 이명박 정부가 부자들에게 감면해준 그 세금 덕에 다시금 버블세븐 지역의 부동산은 춤을 추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재정기획부에 역사공부를 좀 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국민 선전에 달통한 인물들은 좀 있어서 대통령을 이끌고 매일매일 서민들을 찾아다니는 짓은 잘해도, 정부 정책이 역사적 위기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건 잘 모르는 모양이다. 나경원 의원이 직접 시인한 것처럼 서민생활과 별 밀접한 관련도 없는 미디어법은 강행처리하겠다면서, 비정규직법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는 안중에도 없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남은 임기 3년반, 그 시기 동안만 어떻게든 넘겨보려고, 그리고 그 이후는 언론으로 국민의 눈과 입을 막아버리는 것으로 또다시 5년을 넘기겠다고 그렇게 버티시는 중이다.
그런데 이제 국민이 그리 무지하지 않다. 아니 따로 대단한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경제활동은 먹고 자는 문제와 직결되므로, 몸으로 느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급격한 시민운동과 혁명의 기저에 조세정책과 같은 경제적 불평등이 놓여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말이지 나는 이명박 정부를 돕고 싶어 죽겠다. 아무리 언론을 장악한다고 해도 부자들을 위한 경제정책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몸으로 깨닫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쑈'에만 집중하고 계신다. 보이지 않는 가보다. 서서히 정권을 죄어오는 국민들의 분노가. 비폭력운동의 창시자 마하트마 간디가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열심히 역사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다.
세금납부를 거부하는 것은 정부를 무너뜨리는 가장 빠른 길이다.
덧붙이는 글 | 부자감면, 서민말살의 조세정책에 항의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져버리는 일입니다. 이는 보수와 진보를 가릴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어쩔 수 없다면서 속으로는 부자들을 위한답시고 엄청난 세금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조세저항운동은 정당한 시민의 권리입니다.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http://heterosis.tistory.com/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2009.06.27 17:42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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