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할 일 삼종세트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꺼내놓고, 밥상을 차리고 구두까지 닦아야 하는 정신 없는 아침이다
김윤혜
"보름 정도 네가 아빠 좀 챙겨드려"
"보름이나!! 안 돼. 절대 못 해! 내가 어떻게! 그리고 집에서 나 혼자 심심해서 어떻게 살아, 차도 없고, 아무 데도 못 가는데!"
"어디 갈 새도 없을 거다"
엄마는 이토록 쿨하게, 불안하지도 않은지 내게 아빠를 떡 하니 맡겨 놓고 잔뜩 신이 나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사주에 역마살이라도 잔뜩 낀 건지, 십 년이 넘도록 독일, 영국, 그리스 등 유럽 각지를 돌며 주재 생활을 하는 아빠를 따라, 똑같이 십 년 넘게 말도 안 통하는 외국 생활을 한 엄마다. 이렇게 이 년에 한 번 꼴로 한국에 가는 것이, 엄마에게는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기회다. 게다가 이번에는 다 큰 딸이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됐던 건지, 보름'씩이나' 집을 비우기로 했다.
나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영어도 안 통하는 아테네에서, 지리조차 몰라 혼자 시내에도 나갈 줄 모르는 상태로 보름씩이나 혼자 집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하루 종일 컴퓨터만 붙잡고 늘어져 있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우울증에 걸려버릴 거라고, 엄마를 협박했다.
그러나 "살림"을 시작한 지 이틀만에 주부의 하루는 너무나도 짧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디 나갈 새도 없을 것"이라던 엄마의 말이 완벽하게 현실화되었다. 청소라도 해야 하는 날이면 드라마 한 편 볼 새도 없었다. 장 보러 갔다가 잠깐 쇼핑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나들이다.
그제는 마른 걸레질과 색깔 있는 옷 빨래를 하루에 해야 하는 날이었다.
"딸님~ 엄마 심심해서 전화했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변이 시끌시끌한 걸 보니 아직 밖인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네 시. 아직 안방과 동생 방 걸레질도 못 했고, 빨래도 돌려야 하고, 아빠가 돌아오기 전에 두부 부침도 하고 불고기도 데워놔야 하는데.
"엄마, 나 바빠 죽겠어."
"뭐 하는데~"
"걸레질 하고 있었어. 빨래도 돌려야 되고 밥도 해야 돼. 끊어!"
엄마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한참을 정신 없이 웃더니 전화를 끊었다. 주부가 돼버린 딸의 모습이 재미있나 보다. 그 날은, 아빠 저녁 식사를 차려드리고, 와이셔츠 여섯 벌 다림질까지 한 후에야 끝이 났다. 침대에 누우니 손목이 다 시큰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