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에 갇힌 강사들 "나 어떡해?"

[보따리강사 이야기 13] 비정규직 보호법 속에도 없는 시간강사들

등록 2009.07.03 17:17수정 2009.07.0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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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학교에서 무슨 연락 받지 않았나요?
무슨 연락?
비정규직 강사들을 무더기로 해고한다고 하던데….

어느덧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갔다. 이제부터 견디기 힘든 '하궁기(강의가 없는 여름방학)'다. 그런데 올해는 바위처럼 무거운 화두까지 겹쳐 복잡한 심경을 더욱 짓누른다. 주범은 비정규직법이다. 이미 종강을 했거나 종강을 앞둔 시간강사들은 불안한 위치를 확인하느라 전화기가 불이 나는 요즘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정규적 근로자들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정치권이 한가한 대치국면을 벌이고 있는 사이 대학과 연구실에서 짐 싼 비정규직이 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가장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와 재취업의 기로에서 이중고통에 울고 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잠을 못 이룬다는 이들도 더러 있다.

해고될 비정규직 규모를 놓고 정부와 여·야, 언론까지 가세해 입씨름을 하고 있는 사이에 숨죽이며 떨고 있는 근로자들 사이엔 대학사회에서 늘 찬밥 신세인 시간강사들, 7만여 지식근로자들도 포함됐다. 비정규직 고착화는 비정규교수 양산으로 재미를 본 대학들에겐 그들을 더욱 말랑말랑하게 주무를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듯하다.

박사학위소지 시간강사들, 비정규직 보호법 있으나 마나?

a 대학강사들은 어디로... 시간강사의 교원법적지위 회복을 위한 고등교육법개정안 상정을 위한  비정규교수들의 국회 앞 천막시위가 660일을 넘기고 있다. 이들은 최근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를 결성했다.

대학강사들은 어디로... 시간강사의 교원법적지위 회복을 위한 고등교육법개정안 상정을 위한 비정규교수들의 국회 앞 천막시위가 660일을 넘기고 있다. 이들은 최근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를 결성했다. ⓒ 이명옥


이들을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이 있다. 자본 편향적이면서 학자티를 유별나게 내는 일부 비양심적인 전임교수들의 병적인 노조기피와 비난일색의 논리가 언론의 지면과 영상에 소개될 때마다 시간강사들의 고통지수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한다. 강단에서 그들과 똑같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교원신분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시간강사들이 숨죽이며 떨고 있지만 어디에다 하소연할 곳도 없다.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에게 배운 졸업생들이 매년 수만 명씩 사회로 나서고 있지만 정작 가르친 이들은 일용직도, 임시직도, 교원도 아닌 대학사회에서 유령(?)으로 불리우고 있다. '유령 부조리극'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미안함과 두려움이 뒤섞인다. 더구나 박사학위소지 시간강사들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있으나 마나하기 때문에 더욱 아찔하다. 애써 초연한척 하고 있지만 좌불안석이다.


그래서다. 냉철히 상황을 점검해 볼 때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구체적인 삶의 위기이자 지속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다. 바로 그런 점에서 그동안 정부와 국회는 얼마나 큰 직무유기를 범했는지를 국민의 이름으로 추궁해야 마땅하다. 더 이상 경제난을 빌미로 사용기간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현실적이지 못할뿐더러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특히 비정규직 교수, 교수 아닌 교수는 어제 오늘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 간 지속돼 온 해묵은 문제다. 지금도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 교수들이 텐트를 치고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를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660일째를 넘기고 있지만 국회와 교육과학기술부, 대학은 전혀 관심 밖이다.   


그들의 직무유기는 바로 그들 코 앞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교육부에 시간강사의 차별 시정과 법적 지위 개선을 권고했지만 별다른 대책마련 없이 5년이 흘렀다. 당시 인권위는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게, 대학 시간강사에 대한 근무 조건, 신분보장, 보수 및 그 밖의 물적 급부 등에 있어서의 차별적 지위를 개선할 것을 권고한다"고 주문했다.

온데간데 없는 2004년 인권위 권고안, 누구 책임?

그러나 5년 동안 대학사회에서 교양과목의 절반가량을 강의하면서도 교원의 신분에서는 제외돼 온 시간강사들의 지위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2006년과 2007년 당시 민노당 최순영 의원과 열린우리당 이상민 의원,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현 교과부 차관) 등이 대학 강사에게 교원지위를 부여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인권위의 권고를 받은 정부는 뚜렷한 개선안을 내놓지 못했다. 18대 국회에서도 이상민(자유선진당) 의원이 교원지위 문제를 대표발의 했지만 논의되지 못한 채 시간강사 문제는 결국 비정규직법에 갇히고 말았다.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비정규직 보호법 속엔 박사학위가 있는 시간강사나 연구원 등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아 문제가 더욱 꼬여만 가는 양태다.

비정규직이면서도 이들은 비정규직 보호법 적용을 받지 못하도록 한 우스꽝스런 모순이 지금까지 지속돼 온 것이다. 노동부는 당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안을 마련하면서 '박사학위 보유자가 해당 분야에 종사할 때는 법 적용에서 제외 된다'는 조항을 두었다. 시간강사의 기간제법 적용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됐다.

제기된 첫 번째 문제는, 법 시행을 앞두고 2007년 6월 11일 제정된 시행령에서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법 제4조 제1항의 예외를 정하면서 '박사 학위(외국에서 수여받은 박사 학위를 포함한다)를 소지하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를 포함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박사학위 자체가 직장에서의 지위와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님에도 학위 취득만을 이유로 비정규직 기간 제한의 보호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 없고, 특히 '전문직 특례'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취업에 있어서 전문적 지위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인데, 현실적으로 연구소 등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이나 시간강사들은 대부분 박사학위 소지자이지만 이들의 근로조건이 그다지 높지 않고, 충분한 교섭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이 제기되었으나 법안 그대로 의결되었다.

교과부, 대학눈치 보며 강사 처우개선 소홀히 하더니...

a 시간강사 중 박사는 비정규직보호법 예외? 교과부의 시간강사 현황자료.

시간강사 중 박사는 비정규직보호법 예외? 교과부의 시간강사 현황자료. ⓒ 교과부


이 바람에 대학사회 비정규직 교수들 사이에는 이상한 기류가 형성됐다. 특히 똑같은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교수가 아닌 교수들, 7만여 비정규직 교수들은 비정규직법에 의해 '학군분리'를 당하는 기상천외한 일이 발생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기업에서 행하는 '직군분리'와 그 성격이 비슷하다. 박사급 시간강사와 비박사급 시간강사들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교과부가 지난해 국감 중 내놓은 '시간강사 현황' 자료에 의하면 2008년도 전국 대학의 시간강사 중에는 석사 이하가 41.6%, 박사수료 12.6%, 박사학위자가 39.5%로 나타났다. 비정규직법이 적용된다면 전국 7만여 비정규직 시간강사들 중 박사학위자를 제외한 절반 이상이 해고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이 때문에 국내박사들의 취업난과 고급인력 해외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국내박사들이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해외박사 실태는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어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 같은 상황임에도 이명박 정부 들어 교과부가 시간강사 처우개선 방안을 지난 4월 처음으로 제시했지만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교과부는 △시간강사가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협의 △시간강사 수업 비율 및 강의료 수준 대학정보공시 포함 △전임교원 확보에 따른 대학의 재정부담을 고려해 교육전담교원과 연구교원 제도 적극 활용 등 세 가지 방안을 우선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교과부가 제시한 시간강사 개선방안은 결국, 대학이 재정 부담을 떠안게 돼 실효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들이었다. 또 시간강사 수업비율 공시 또한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이미 각 대학마다 '교원강의 담당 비율'을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강사는 노동자로서 2007년에서야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 근로자라면 근로계약을 하고 4대 보험을 제공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제서야 강사들에게 4대 보험가입 운운하는 교과부 처사는 형식에 그치고 있음을 드러낸 단면이다. 교과부가 4대 보험 가입만으로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다 한 것으로 여기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시간강사들, 그 권리를 어디서 보장받을 수 있을까?

문제는 강사의 신분 불안이 강의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땜질식 강의배정과 연구실부재 등으로 사실상 주체적이며 독립적인 강의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는 학습권과 교육권 침해, 더 나아가 지식 한국사회의 대학교육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대학들은 돈이 없다는 핑계로 고등교육법 개정을 완강히 반대한다.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성균관대 및 성공회대 분회 홈페이지 등에는 "강의실에서 '교수'로 존재를 드러내며 그 역할을 충실히 하는 강사들은 그들의 권리를 어디서 보장받을 수 있을까? 고등교육법에서 찬밥 신세인 대학강사는 이리 밀리고 저리 떠돌다 덜컥 비정규직법에 갇힌 신세가 됐다"는 이러한 내용의 글들이 올라 시선을 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그들의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이 법이 시행 2년이 지난 시점에서 발 빠르게 대응한 곳이 바로 대학이라는 것이다.

2년을 초과하여 사용하는 경우 정규직으로 본다는 (동법 4조 2항) 규정과 전문적 지식, 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로 (동법 4조 5호)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해당분야에 종사하는 경우 (동법 시행령 3조 1호) 사용기간 예외 조항을 내세워 박사학위 미소지자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다.

달리 말해 대학은 법의 목적엔 관심 없고 법 규정 적용을 회피할 방법 찾기에 급급하다. 박사학위자를 무기한 비정규직 강사로 쓸 수 있다니. 그렇다면 돈이 없다고 늘 아우성대는 대학들로서는 강사들보다 훨씬 돈이 더 들어가는 전임교수를 뽑을 필요도 없다는 말 아닌가? 교수초빙 공고를 낼 필요도 없이 값싼 박사급 시간강사를 우선 채용하는 대학이 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러한 걱정이 기우가 아니라는 것은 그동안 관행에서 읽힌다. 이곳저곳에서 강의하니 별 문제 없고 강사들은 헐값에 '뺑뺑이' 돌릴 수 있다고 자신해 왔던 대학 본부의 오랜 습성을 비추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대학교육을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학 경영, 행정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한 교육의 질이 나아질 수 없다.

결국, 대학 시간강사 문제는 원점으로 귀결된다. 시간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는 것만이 그런 맞지도 않는 법을 무리하게 적용하여 빚는 불의, 갈등, 모순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이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교원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얌전히 앉아서 기다린다고 누가 해결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학 비정규 교수들의 권익 운동과 학부모의 수업권 문제를 뛰어 넘어 고등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등교육법 개정에 나서도록 지속적으로 촉구해야 한다.
#시간강사 #비정규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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