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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생이 된 아들녀석이 여름방학을 맞아 요즘 집에 와 있다. 나는 녀석에게 '과외'든 뭐든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아보라는 말을 했지만, 노모께서 대뜸 반대를 하셨다. 그까짓 용돈 몇 푼 벌자고 고생하고 시간 축내지 말고 그저 공부만 하라는 말씀이었다. 아직은 우리 집에서 노인네의 말씀이 가장 엄한 덕분에 녀석은 편하고 자유롭게 생활한다. 공부는 하지 않고 만날 놀기만 한다는 할머니의 타박도 들으면서….
엊그제(2일) 아들녀석의 학교 친구들 네 명이 태안을 찾았다. 그들을 위해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 해변의 한 민박집에 예약을 해놓았다. 그리고 2일 오후 5시쯤 아들녀석을 포함한 다섯 명의 대학교 1학년생들을 내 승합차로 20분 거리인 그곳까지 태워다 주었다.
2차선 도로를 저속으로 달리면서, 왕복 1시간 정도 시간을 쓰고 수고하는 일에 '본전'을 빼고 싶은 생각으로 앳된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먼저 "지난달 21일 너희 학교 노천극장에서 열기로 했던 '노무현 콘서트'를 결국 열지 못한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운을 떼었다. 아무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너희들 그 사실을 알고는 있니?"라고 묻자, 알고들 있다고 했다. "그럼, 그 사실이 그 학교 학생들로서 창피스럽지 않니?"라고 묻자 역시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너희 학교 학부모로서 그 사실을 대단히 섭섭하고 창피스럽게 생각한다. 전에는 내 아들이 너희 학교에 입학한 것을 은근히 자랑을 했다. 그러나 '노무현 콘서트'가 너희 학교에서 열리지 못하고 성공회대학으로 간 그 사건이 있은 다음부터는 누구에게도 일체 내 아들이 너희 학교에 들어간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너희 학교는 결코 명문일 수 없는 학교다. 누구와 얘기할 때 내 아들녀석과 학교 얘기가 나오게 되면 '명문이기는커녕 비겁한 학교'라는 말을 한다. 앞으로 오래 그런 말을 하고 살 거다."
그리고 나는 운전을 하면서 다소 큰 소리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대략 이런 얘기였다.
"총장이라는 사람과 학교 운영자들은 시야가 협소하고 비겁한 사람들이다. 오늘만 생각하고 내일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열려는 행사를 막은 이유가, 그 명분이 너무도 빈약했다. 그 행사를 불허함으로써 현실에 안주하고 영합하는 나약하고 비겁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물론 그 행사를 불허하게 만든 외압이 있었을 것이다. 그 외압에 굴하지 않고 그 행사를 열도록 했다면 학교의 자존심과 명예를 크게 살렸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것은 훗날 학교의 명성을 더욱 빛내주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과 수많은 국민들이 간절히 원했던 장소 사용을 불허하고, 교문에다가 학교 버스로 '명박산성' 같은 '차벽'까지 만들어 행사 준비를 막았던 것은 학생들과 수많은 국민들에게 뼈아픔을 안겨주고 원성을 자아내는 일이 되어 큰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그것은 훗날 매우 큰 불명예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정치권의 외압보다도 총장이나 운영진 내부의 보수성, 수구적 가치관들이 더 많이 작용하여 노천극장 사용이 불허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학을 이끌어갈 지성적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오늘만 볼 줄 알고 오늘의 이기와 타산에만 민감할 뿐 내일을 보는 눈, 창조적 가치관과 기상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만약 정부로부터 가해지는 압력이 그런 결과를 빚었다면, 그런 행사 하나도 수용하지 못하고 '바람이 분다'라는 행사 슬로건 자체에 겁을 먹는 현 정권의 자신 없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되고, '내일의 바람'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상아탑 '사각모'들의 좁은 시야와 단견, 비겁한 안일무사주의를 고스란히 노정한 것일 수밖에 없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일부 대학원생들의 항의도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만약 노천극장에서 그 행사가 열려 공부에 지장이 발생한다면 형사 고발을 하겠다는 말까지 그들 입에서 나왔다는 말도 들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고 슬프다. 하룻밤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그 행사 때문에 그동안 오래 해온 공부에 지장이 생긴다면 어지간히 머리 나쁜 녀석들이 사법시험 공부를 하는 모양이다. 그 녀석들이 그런 정신을 가지고 공부를 해서 요행히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벼슬을 하게 된다면, '권력의 개'가 될 확률이 크다. 사법정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출세만을 쫓아 '권력의 개' 노릇에 최선을 다하는 졸장부들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 학교는 명문대학이라는 그 겉치장을 버려야 한다. 명문이라는 것은 자존심과 시대정신을 껴안고 내일을 투시하며 창조성을 지닐 때 지닐 수 있는 말이지, 머리 좋은 얼간이들도 많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 하나로 명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건 진정한 명문이 아니다.
나는 이제부터 너희 학교를 명문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많은 사람들이 별 거 아닌 걸로 생각하고 또 금방 잊겠지만, 너희 학교 노천극장에서 '노무현 콘서트'가 열리지 못한 사실, '명박산성'을 상징하는 '차벽'까지 교문에다가 설치하고 끝내 그 행사를 무산시킨 너희 학교의 처사는 내 아들이 그 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아니 내가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너희 학교가 명문이라고? 웃기지 마라. 어디 가서 명문이라고 우쭐거리지도 말고, 우월감 따위도 갖지 마라. 너희 학교는 명문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고, 너희는 부끄러운 학교의 학생들일 뿐이다."
아들녀석은 이미 밥상머리에서 나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친구들과 함께 또 한번 듣는 셈이었다. 녀석은 친구들에게 미안한 기색이기도 했다. 앳된 대학교 1학년생들은 그저 듣기만 할 뿐이었다. 크게 공감하거나 감동하는 기색들은 '아직'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아직은 온전히 이해하기도 어려울 터였다.
대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지난해 '기름과의 전쟁' 때 얼마나 많이도 다녔던 길인가!) 30분 정도 저속으로 달리면서, 나는 제법 본전을 뺀 기분이었다. 공감이나 이해 차원을 떠나 그들이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것만도 실은 고마운 일이었다.
이윽고 파도초등학교 바로 앞, 예약을 한 민박집 마당에 도착했다. 민박집 주인은 내가 잘 아는(내 글을 많이 읽은) 30대 여성이었다. 나는 방통대 공부를 하는 30대 후반인 그 이에게 작은 소리로 "창피스러운 학교 아이들 데리고 와서 미안해요"라는 말을 했다.
내 말뜻을 알아차린 그녀는 "그 학교, 개신교 학교잖아요"라는 말을 했다. 정말 개신교 학교여서 그런가? 나는 괜한 의문을 삼키며, '개신교 천국'으로 말미암아 알게 모르게, 이렇게 저렇게 '지옥'이 되어 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기분이었다.
2009.07.04 12:29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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