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노년의 즐거움>에 소개된 '알베르트 슈바이처'
또한 '노(老)'자가 들어간 말 중에서 노쇠(老衰), 노병(老病), 노후(老朽), 노물(老物), 노둔(老鈍), 노약(老弱) 같은 반길 수 없는 말들과 노성(老成), 노련(老鍊), 노숙(老熟) 노사(老師), 노장(老丈), 노실(老實) 같은 쌍수를 들어 반길만한 말들 통해 들려주는 노년의 미덕들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노숙, 나이든 보람. 노현, 노년의 현명함. 노당익장, 노년의 당당함. 이런 글 제목에서도 저절로 저자가 삶의 지향으로 삼고 있는 노년의 가치들이 배어나온다.
저자가 옛 이야기를 곁들여 능숙하게 펼쳐 놓는 노년 이야기는 노년을 늘어나는 노인 인구의 숫자와 의료비 증가, 부양 부담으로만 생각해 계산기를 두드리는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노인이란 존재는 정말 문제적 인간을 뜻하는 것인가. 노년기라는 것은 결국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다른 세대에게 짐만 되는 시기인가.
그러면서 동시에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정한 노년, 당당한 노년, 외로움을 넘어서는 노년을 강조하며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이것은 전적으로 칠십 대 후반의 저자가 몸소 체험하고 느낀 데서 나온 것이어서 그 어느 지침보다 실질적이다.
이 지침은 '행복한 노년을 위한 5금과 5권'이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는데, 소제목 그대로를 적어서 책상 앞에 붙여놓고 싶다.
먼저 '노년이라서 더 삼가고 가리고 멀리해야 할 일' 다섯 가지(5금)이다. 1
금 잔소리와 군소리를 삼가라. 2금 노하지 마라. 3금 기죽는 소리 하지 마라. 4금 노탐을 부리지 마라. 5금 어제를 돌아보지 마라. 이어서 노년에 해봄 직한 일들, 해보면 보람 있는 일들, 마음에 내키는 일들(5권)이다.
1권 유유자적, 큰 강물이 흐르듯 차분하라. 2권 달관, 두루두루 관대하라. 3권 소식, 소탈한 식사가 천하의 맛이다. 4권 사색, 머리와 가슴으로 세상의 이치를 헤아려라. 5권 운동, 자주 많이 움직여라. 내가 어르신들 앞에서 강의를 할 때면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명심하고 실천해야 할 일 몇 가지를 정리해서 말씀드리곤 하는데, 그 중에는 '누구나 노력을 통해 잘 늙을 수 있다'는 게 들어있다.
똑똑한 사람은 똑똑하게 늙고, 건강한 사람은 건강하게 늙고, 그러면 억울하지 않겠느냐. 주름이 늘어나고 몸이 쇠약해지고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은 나이 들어가면서 공통적으로 나타는 것인데 그래도 누구나 노력을 하면 좀 더 잘, 제대로 나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른다. 그러니 일단 노력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뭐 이런 내용이다.
그런데 이번에 김열규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천재는 이렇게 노년에 대한 사유에서도 천재성을 발휘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노년 책들 중 일부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루고 우아하게 현직에서 물러난 노년들이 심심파적으로 써나간 신변잡기류여서 은근히 유감이었다.
물론 평범함 속에서 스며나오는 경험과 지혜도 소중하지만, 책이라는 옷을 입고 책방에 나와 다수에게 얼굴을 보일 때는 그 지점을 조금은 넘어서는 깊이와 통찰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또 아직 노년을 살아보지 못하고 노년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나같은 중년과의 차이점이기도 할 것이고.
중간 중간 신문 기사를 인용한 글은 그 밀도가 좀 떨어지는 듯해서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어나가는 것은 중년인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니 '노년'에 '즐거움'을 붙인 책 제목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소년이든,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년이든 삶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일, 그것은 우리 삶의 궁극적 목표 중 하나임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김열규 교수가 팔십, 구십이 되었을 때는 또 어떤 이야기를 막힘없이 풀어놓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