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민주화 이전 좌파는 구세대, 그 이후는 신세대다. 구세대는 완전히 가고 신세대가 왔다. 그것이 오늘날의 진보정당들이다."
유성호
- 좌파를 규정하는 기준 중 하나로 국가개입을 들고 있는데, 보수우파 정권도 끊임없이 국가개입을 하고 있지 않나? "보수파는 시장이 실패하거나 시장의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할 때만 국가에 개입한다. 지금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비상시기이지 않나. 다만 하이에크 등 시장근본주의는 찬성하지 않는다. 원칙은 시장의 기능에 맡기되 시장이 기능을 못할 때는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파는 공동체주의이고 보수파는 자유주의다. 그런데 박세일 같은 사람은 '공동체적 자유주의'라고 걸 내놓았다. 극우파가 아닌 중도 우파인 셈이다. 그런 식으로 (좌우파나 보수-진보가) 수렴하는 것이다. 자유냐 평등이냐, 성장이냐 분배냐 등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중요하다.
북한에 온건하고 유화적이고 친북적이거나 종북적이면 대체로 좌파인데, 요즘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는 북한에 비판적이다. 말하자면 친북좌파도 있고 반북적인 좌파도 있는 것이다."
- 해방 이전과 이후 진보세력에 어떤 차이가 있나?"차이는 없다. 맨 처음 좌파세력, 사회주의세력이 나온 때가 1910년대다. 이들이 1920년대에 비밀리에 조선공산당을 만들었다. 하지만 1929년에 해산됐고, 이후 조선공산당 재건사업이 이루어졌다.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박헌영이다. 1930년대 이후부터 해방될 때까지 공산주의자가 제일 많이 탄압을 받았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모이기 시작했다. 좌파들이 먼저 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해방 전 진보세력의) 맥을 박헌영이 이었다. 박헌영의 이상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 한국 진보세력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때가 해방을 전후한 시기였던 것 같다."미 군정에서도 조사했는데, 공산주의보다 사회주의 지지자가 더 많았을 것이다. 1940∼50년대면 세계 공산주의가 피크(peak)에 올라 있을 때다. 소련의 국제적 지위도 피크였다. 1930년대 후반에 앙드레 지드가 소련을 갔다 와서 '소련은 사회주의 이상이 아니라 스탈린 독재국가'라는 내용이 담긴 책을 썼다.
유럽은 좌파가 강해서, 이 책을 나오자 '지드가 파시스트에 매수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책이 일본에서 번역돼 한국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한국 (좌파)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준 건 아니다. 그들은 볼셰비키혁명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이 책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 한국의 진보세력(특히 합법적 진보정당)은 1960년대 이후 대체로 침체기에 들어간 것 같은데. "1948년 8월 정부가 수립된 이후 공산주의는 불법화됐다. 1956년에서야 진보당이 나왔다. 물론 그전에는 조소항의 사회당이 있었다. 사회당은 정부 수립 이후 창당된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었다. 이승만 박사는 사회당 창당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이승만은 축사에서 '공산당과 싸우는 나라에서는 사회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익정당 일색인 마당에 사회당이 생긴다니 반갑고, 더구나 조소앙 선생이 이 당을 한다니 반갑다'고 말했다.
그런데 조소앙은 6·25 때 납치됐고 사회당도 소멸했다. 그런데 전쟁을 당하고 나니까 사회주의를 공산당으로 보게 됐다. 1950년대 말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 정당이 많이 나왔다. 이동화라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있었는데 그는 진보당과 혁신당의 강령을 기초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정당은 반스탈린이다. 프랑크푸르트선언의 영향을 받아서 반공적인 것이다.
그리고 1980년 광주사태가 나니까 반미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과거에 사회민주주의나 민주사회주의 했던 사람들은 88년 총선에서 다 떨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좌파정당이 만들어졌다. 87년 민주화 이전 좌파는 구세대, 그 이후는 신세대다. 구세대는 완전히 가고 신세대가 왔다. 그것이 오늘날의 진보정당들이다."
"왜 해방 직후 들어선 정권이 이승만 정권이었겠나?"- 최대 관심사가 "한국 진보세력이 어떤 역사적 이유로 인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형성되었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라고 했다. 먼저 '한국 진보세력의 현재'를 어떻게 진단하는가?"진보세력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국가의 정통성에 회의적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해방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0% 이상이 공산주의 등 좌파를 지지하지만 들어선 정권은 이승만 정권이다. 그 당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었는데 안 일어났다. 브루킹스도 '배반된 혁명'이라고 했다. 민중의 의사는 달랐던 것이다.
진보세력은 대체로 수정주의적 역사관과 종속이론을 가지고 있다. 특히 종속이론은 우리가 미국 경제에 종속됐다는 게 아니라 체제 자체가 미국에 종속되도록 만들어졌다고 보는 시각이다. 영구히 평등할 수 없는 체제를 만들어놨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병직 교수는 그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자동차산업을 보라. 군사·안보분야에서 미국이 압도적이긴 하지만, 한미간에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나. 이것이 종속이론의 한계다. 군사적으로 보면 일본도 미국에 의존하고 있지 않나. 이걸 국제적으로 '상호의존'이라고 한다. 결국 수정주의 역사관과 종속이론을 합치니 한국이 식민지국가밖에 안된다. 독립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의) 진보세력은 광주사태로부터 생겨났다. 이들은 미국이 광주사태를 승인했다고 본다. 80년대의 좌파운동은 자생적인 것도 있지만 실제로 북한의 지도와 지원 등이 있었다고 본다. 이후 일부 운동가는 북한에도 갔다 왔지 않나. 수정주의 역사관과 종속이론이 합쳐 나중에 주사파로 발전했다.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좌파, 진보파는 한국발전전략을 내놔야 하는데 그걸 안 한다."
- 그런 한국진보세력의 현재를 형성한 '역사적 배경(이유)'은 무엇인가?"광주항쟁과 권위주의 통치로 인한 것이다. 더 근원적인 것은 한반도 분단이다. 우리나라 좌파는 분단과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좌파의 국가관과 세계관이 형성됐다."
- 해방 이후 탄생과 소멸 등을 거듭해온 한국 진보세력의 특징은 무엇인가?"박헌영 등 혁명적 좌파세력은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했지만, 온건한 좌파세력에는 상당한 공로가 있다. 한민당의 송진우는 '보수-진보 두 정당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보수의 원조가 그렇게 말했다. 그 한민당과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 하지만 보수-진보 양당체제는 실현되지 않았다. "전쟁이 났다. 피비린내나는 이념대결을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나. 그래서 생래적으로 (좌파에) 저항의식이 있다. 진보세력, 좌파세력도 국가를 인정해야 한다. 애국적이어야 한다. 2차 대전 당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는 다 모여라'고 했지만 전혀 모이지 않았다. 다 애국적으로 돼 버렸다."
- 한국 진보세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선진국처럼 사회민주주의나 민주사회주의로 나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안에서 복지정책을 추진하거나 인간해방 투쟁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진보좌파세력도 선진화해야 한다. 선진화되고 대안이 있는 진보, 발전프로그램이 있는 진보가 되어야 한다.
최근 뉴민주당 플랜 읽어보니까 김근태 등 진보파가 볼 때 한나라당 2중대라고밖에 할 수 없겠더라. 중도개혁이냐 진보개혁이냐에서 진보개혁이 졌다. 집권을 하기 위해 중도개혁으로 한 것이다."
- 왜 한국 진보세력은 선진화되지 못하고 새로운 진보적 대안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고 생각하나?"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인물난 아닌가 싶다. 진보정당에서 슈퍼급 인사가 나와야 한다. 인재가 모여야 한다. 또 국민이 신뢰를 해야 하는데 신뢰를 안 한다. 민주노동당은 이명박 정권 타도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말로야 할 수 있지만 당의 방침으로 합법적 정부를 타도하겠다는 것이 타당한가?"
- 지난 노무현 정권 때 보수우파 인사들도 정권타도 주장을 자주 하지 않았나? "기억이 잘 안난다. 최고는 탄핵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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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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