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마사이족들도 우리를 환영 했다. 고유의 민속음악과 춤은 사냥 가기전에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상율
환영대회가 끝나자 제롬 부와나우시 의장은 우리 일행을 오찬에 초대했다. 오찬장인 사우스 비치 리조트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탁 트인 인도양 하얀 모래밭에는 비키니스타일의 백인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마치 남국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오찬에는 시, 구청 간부들도 대거 참여했다. 우리 일행에게 모두 화려한 여름용 민속 의상 한 벌씩을 선물하기도 했다. 융숭한 접대였다. 이 자리에서 임창환 원장은 미모의 병원 수간호사 쥬디를 여수에 초청 6개월간의 의료 연수를 시켜주겠다고 제안했고 병원장은 이를 수락하고 의장은 고맙다는 인사를 곁들였다. 의료진은 즉석에서 공동으로 연수 후원에 참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탄자니아에서 10년을 활동한 이진섭 목사도 처음 보는 일이라면서 2007년 앰뷸런스 1대, 발전기 1대, 전기가설비 3만 불, 의료봉사 활동, 문화공연 등 파격적인 지원에도 별 반응이 없었던 이들이 이토록 열렬한 환영을 보이는 것은 여수 지구촌 사랑나눔회의 진정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당시 오현섭 시장이 기증식에서 "어린이의 코 묻은 돈에서부터 노인의 쌈짓돈까지 온 시민의 성금으로 이 같은 봉사를 하게 된 것"이라고 했던 의미를 두 번째 봉사활동에서 확인하고 감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바리 자아수부하"(안녕하세요), "하바라이 지오니"(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스와힐리어가 익숙해질 즈음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여수 지구촌 사랑 나눔회의 봉사활동은 비즈브웨니 병원과 인근 부락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앰뷸런스는 벽촌까지 달려가 응급환자를 수송, 생명을 살리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었다. 오늘도 Donated By Yeosu Global Charity Association S. Korea라는 마크가 선명한 앰뷸런스는 사이렌 소리를 울리면서 다르에살렘의 시가지를 누비고 있다. 병원의 환경도 더욱 개선됐고 환자 대기실에는 TV가 설치됐다. 텅 비었던 약국은 뒤늦게 받은 약품으로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당시 의사들이 기증했던 의료기구들도 잘 보관하고 있었다. 필요한 의료 기구를 주문하면 즉시 찾아 건넬 정도로 관리가 능숙하다.
후진국에서 흔히 발생하는 도난, 분실의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됐다. 직원들의 환자 관리도 질서를 지키게 하는 등 한층 개량화 되었다. 특히 병원에 대한 신뢰도 높아 찾는 환자들이 날로 늘고 있다. 덩달아 인근 마을의 모습도 활력이 넘친다. 주변에 집들이 들어서고 벽돌 공장도 있다. 키간보니 포구와 병원 사이에 마을버스가 운행되고 병원 앞에는 과일과 음료수, 식사를 파는 노점상도 자리 잡고 있다. 있다. 이 일대가 국가 계획으로 신도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신도시 건설이 완료되면 비즈브웨니 병원은 그 중심에 있게 돼 앞으로의 성장은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탄자니아도 변하고 있었다. 1961년 독립한 탄자니아는 북한과의 수교를 통해 쌀 재배법을 배웠고 5호, 10호 제를 운영했으며 지금도 그대로다. 한때 북한 주민 2000여 명까지 살았지만 1995년 다당제도를 도입하고 대통령 5년제의 정치제도와 더불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영향권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경제 성장률 2005년 6.8%, 2006년 6% 등 평균 5%대로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는 나라다. 그러나 올해 공직자 봉급 100% 인상으로 물가도 두 배로 뛰어 2년 전보다 서민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봉급 뒷날 대형 마트에는 쇼핑객으로 붐볐다. 최근 도입된 바자지 삼륜차가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바자지는 인도의 삼륜차 회사 이름으로 이곳에서는 삼륜차의 고유 명사로 쓰이고 있다. 후진기어까지 있어 자동차와 다를 바 없지만 차체가 가벼워 사고가 빈발하고 교통체증도 유발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탄자니아는 한국에 대해서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키칸보니 포구의 검표원이 "반기문, 반기문" 하면서 웃음을 짓는다. 화답을 하자 코리아라면서 엄지손을 치켜든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사무부총장에 탄자니아 여성 외무장관인 아샤-로스 미기로를 지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탄자니아의 다루살렘에는 이곳저곳에서 한국의 흔적이 묻어 나온다. 이곳의 교민은 약 200여 명, 대부분이 선교 활동에 종사하고 있지만 일부는 현지에서 사진관, 식당, 약품도매, 무역업에 활동하고 있다. 최근 시중에 한국의 이월 상품인 옷과 모자, 가방 등을 시중에 깔아 도로변의 옷가게들이 성업을 하고 있다. OO 산악회의 모자, OO유치원의 가방, OO 조기축구회의 셔츠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중 2002 한일 월드컵 때 우리 응원단 붉은 악마가 입었던 빨간 셔츠가 단연 인기가 높았다. 여수시 봉산동 모 유치원의 이름이 새겨진 가방을 보고 한국과 탄자니아의 가까워진 거리를 느끼게 했다.
최근 교민 사회는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지난 16일 윤모 교민이 자택에서 살해됐기 때문이다. 손이 묶여 있고 둔기로 살해한 것으로 보아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으나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탄자니아에서 한국인 살해는 처음이어서 교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다르에살렘 공항에서 심병수 원장은 환송 나온 이진섭 목사에게 조용히 100불을 건넸다. 탄자니아 봉사 활동에 나서기 전 근우회 여수 지부 회원이 찾아와 좋은 일에 써달라고 맡긴 돈이다. 진료중 안과 환자 가운데 이 돈이면 개안수술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미처 그 환자를 찾지 못해 이 목사에게 대신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로써 4일간의 봉사 활동은 모두 마친 것이다. 11일간의 일정이지만 가고 오고 4일을 제외하고 짧은 봉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쉬웠다. 아루사공과대학 전산실 30대, 다르에살렘 공무원 교육원 50대, 비즈브웨니 병원 15대의 컴퓨터 설치를 현지에서 활동하는 코이카(KOICA)에 위탁하고, 의약품은 비즈브웨니 병원에 전달토록 조치했다. 병원으로서는 의료진들이 휴대 약으로 진료하였고 얼마 후 약품 전량을 수령할 수 있음으로 의약품을 즉시 찾지 못한 것이 도리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덧붙이는 글 | 남해안 신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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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닥다리 기자임. 80년 해직후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밥벌이 하는 평범한 사람. 쓸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것에 대하여 뛸뜻이 기뻐하는 그런 사람. 하지만 항상 새로워질려고 노력하는 편임. 21세기는 세대를 초월하여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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