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 전철 구리역에 내려서 왕숙천을 따라 달리다 사릉역에 찾아 갔습니다. 지도에 이웃역인 금곡역은 나오는데 사릉역은 안나오네요.
NHN
간이역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역무원이 지키는 간이역과 그렇지 않는 간이역이지요. 간이역이라는 같은 이름을 지녔지만 직접 마주하면 둘의 느낌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존재합니다. 섬으로 치면 사람이 사는 섬과 무인도의 느낌이랄까요.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에 있는 사릉역은 경춘선 기차역 중에 기차의 정차 횟수가 가장 적은 무인도 같은 간이역입니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엔 키 작은 소나무 하나 ♪' 라는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작고 소박한 역이지요.
사릉역은 퇴계원역과 금곡역 사이에 있는 경춘선 무궁화호 전용 기차역으로 1939년에 태어났습니다. 개통 이후 한 번도 보통역으로 승격되지 못한 단출한 역이지만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시골역 같은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간이역입니다. 얼마 안 있어 경춘선이 전철화 되면 칠십년간의 긴 세월을 뒤로 하고 사라질 운명이기도 하구요.
간이역 이름치고는 좀 특별해서 '사릉'을 검색해 보았더니 어린 나이에 권력다툼에 희생된 조선시대 6대 임금인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가 묻힌 곳이네요. 15살에 왕비로 책봉되어 당시 14살의 남편인 단종과 일 년밖에 같이 지내지 못한 비운의 정순왕후 송씨 (세종22년 1440년 ~ 중종16년 1521년) 마음 속에 비명에 간 단종을 생각하며 긴 세월을 살았을 것이라 여겨 무덤의 이름도 사릉(思陵)이라고 지었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사릉역 또한 분위기도 무척 차분하고 간이역 특유의 고요함 속에 앉아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사색에 빠지게 합니다.
사릉역에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려고 지도를 보니 왕숙천이라는 오래된 역사가 느껴지는 이름의 하천에서 가깝더군요. 왕숙천(王宿川)은 한자 이름 그대로 왕이 묵었던 곳이랍니다. 하천의 상류인 진접읍 팔야리에서 태조 이성계가 여드레를 묵은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세조를 광릉에 장사 지낸 후 왕이 잠든 곳이라고 해서 왕숙천이라고 이름지었다는 설도 있으니 조선의 왕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물줄기임은 틀림이 없네요.
그러고 보니 광릉 수목원으로 유명한 세조의 무덤 광릉도 왕숙천 상류에 있고, 태조 이성계의 무덤을 포함하여 아홉기의 무덤이 있는 동구릉도 왕숙천 가까이에 있네요. 가히 조선 왕들의 사연으로 가득한 왕들의 하천으로 불릴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