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같이 큰 인명사고가 날 것만 같아..."

쌍용자동차 파업현장을 찾은 시민들

등록 2009.07.21 10:48수정 2009.07.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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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끊겼다. 의약품은 물론 물과 가스도 끊겼다. 쌍용차 노조에 대한 '고사 작전'이다.

 

쌍용자동차 사측은 지난 17일부터는 노조 측에 음식을 나르는 부식 차량 출입을 전면 통제했고, 의약품 반입도 막고 있다. 20일부터는 급기야 물과 가스 공급도 중단시켰다.

 

사측은 "범법자들에게 인도주의를 이야기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며 노조를 비난했고, 노조측은 확성기 방송을 통해 "우린 목숨 걸고 끝까지 싸운다"며 결의를 다졌다.

 

수많은 경찰병력, 불타는 타이어, 큰 소리의 경고방송, 낮게 나는 경찰헬기. 현장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분위기다.

 

지난 20일, 평택 쌍용차 공장 현장에는 100여 명의 시민들이 찾아와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다. 대규모 단체로서가 아닌 삼삼오오 모여 온 시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 사람들은 왜 시원한 생수 하나 살 곳 없는 이곳에 와서 하루 종일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것일까? 시민 몇몇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행되다 풀려나온 '김아무개씨'

 

"인도에 계신 시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이곳은 작전 지역입니다. 이곳에 계시면 위험하오니 삼거리가 있는 곳까지 철수해주시기 바랍니다."

 

확성기를 든 경찰간부가 시민들을 향해 경고방송을 했고, 이어 등장한 경찰 방송차의 경고방송은 귀가 아플 정도로 큰 음량이었다.

 

"도로교통법 위반입니다. 철수해주십시오."

 

시민들은 "인도에 있는 게 무슨 죄냐"며 경찰에게 항의했다. 이 때 인도 바로 앞 도로에 앉아서 인도에 걸터앉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던 2~3명의 시민들 뒤통수 쪽에서 경찰간부의 명령이 떨어졌다. "도로교통법 위반, 현행범으로 체포해."

 

순식간의 일이었다. 경찰들이 몰려와 도로에 앉아 있던 한 시민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본 일부 시민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경찰의 연행을 막아섰다.

 

경찰에 끌려가던 시민은 결국 경찰의 손을 뿌리치며 인도로 빠져나갔고 인도에 선 시민, 도로에 선 경찰 사이에선 실랑이가 벌어졌다. 현행범을 검거해 가겠다는 경찰 간부의 말에 한 시민은 "도로교통법 몇 조를 위반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며 반박했고 "폭력경찰 물러나라"는 구호가 제창되었다.

 

 무리한 진압이라며 경찰에 항의하고 있는 쌍용차 노조 가족 및 시민들.
무리한 진압이라며 경찰에 항의하고 있는 쌍용차 노조 가족 및 시민들.이대암
무리한 진압이라며 경찰에 항의하고 있는 쌍용차 노조 가족 및 시민들. ⓒ 이대암

경찰 호송차량 앞에까지 연행되다 가까스로 풀려난 김아무개(29)씨.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 그를 찾아갔다.

 

그는 "그냥 인도 옆에 내려와 앉아서 동료들과 얘기하며 담배나 피고 있었다. 구호를 외치거나 경찰을 향해 뭐라 하지도 않았다"며 무리하게 연행을 시도한 경찰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일반시민에겐 경찰의 연행이 큰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데도 김아무개씨는 "잡혀가도 상관없다", "시민의 권리를 알고 있기에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언론의 왜곡보도가 워낙 많기에 쌍용자동차 파업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서 왔다", "여기서 보고 느낀 것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며 현장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

 

나홀로 무언의 항의자 '최순민씨'

 

 경찰이 인도를 봉쇄하며 시민들을 몰아세우자, 홀로 인도에 걸터앉아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는 최순민씨.
경찰이 인도를 봉쇄하며 시민들을 몰아세우자, 홀로 인도에 걸터앉아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는 최순민씨.이대암
경찰이 인도를 봉쇄하며 시민들을 몰아세우자, 홀로 인도에 걸터앉아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는 최순민씨. ⓒ 이대암

 

'도로교통법 위반'을 내세우며 시민들에게 철수 경고방송을 한 경찰은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인도를 완전히 봉쇄했다. 점차 다가오는 경찰병력에 밀려 시민들은 인도의 안쪽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이때 한 시민이 눈에 확 띄었다. 그는 코앞에까지 경찰이 다가왔음에도 홀로 인도에 걸터앉아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었다. "극렬 저항, 불법행위하는 사람은 눈여겨봤다가 상황발생시 연행하라"는 경찰의 경고 방송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결국 계속되는 경찰의 경고에 그 또한 인도 안쪽으로 물러났지만 일부 시민들은 그의 행동에 갈채를 보냈다.

 

무언의 항의자는 바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노조원 최순민(32)씨.

 

그는 "아무리 공권력이 무섭더라도 침해할 수 없는 국민의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인도에 걸터앉아 있던 이유를 밝혔다.

 

쌍용자동차 노조에 연대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는 그는 "같이 밥 먹고 농담하고 땀 흘리던 사람들인데…"라며 쌍용자동차 직원들이 노조측과 사측으로 나뉘어 반목하는 현상이 너무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먼 지방에서 올라온 평범한 주부 '황수진씨'

 

 경찰이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공장 진입로의 인도를 완전히 봉쇄했다.
경찰이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공장 진입로의 인도를 완전히 봉쇄했다. 이대암
경찰이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공장 진입로의 인도를 완전히 봉쇄했다. ⓒ 이대암

경찰이 아예 인도로 올라섰다. 경찰들은 쌍용자동차 정문으로 향하는 인도를 막아섰다.

 

"넘어갈 수 없나요?"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충남 아산에서 올라온 평범한 주부라고 밝힌 황수진씨는 "이웃이 걱정되어 나온 시민들이 무슨 죄가 있냐"며 경찰의 통제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먹고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다", "용산같이 큰 인명사고가 날 것만 같아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은 마음이다"며 아산에서 평택까지 올라온 이유를 밝혔다.

 

노조원 가족들이 머무는 천막을 찾아가 노조원 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는 그녀는 "부인들이 여기저기서 흐느끼고 있었고 많이 지쳐보였다", "남인데도 가슴이 콱 미어지는데 가족들은 오죽하겠냐"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서 그녀는 "정부나 국회 모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장에 직접 와보기라도 해야 하지 않나. 책임져야 할 사람들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덧붙이는 글 | 이대암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 기자입니다.

2009.07.21 10:48ⓒ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대암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 기자입니다.
#쌍용자동차 #평택 #경찰연행 #쌍용차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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